[이재명 인터뷰⑤] “욕설 사건,  인생에서 가장 후회…가족들 고통 컸다”
  • 구민주·김종일·이원석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0 13: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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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층 인터뷰 | 이재명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이재명이 말하는 ‘인간 이재명’ “난 꼰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꼰대’”
“경기동부연합 이석기씨는 한 번도 본 적 없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9월8일 경기도청 회의실에서 시사저널과 120분간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긴 인터뷰가 막바지로 향하면서 이 후보는 점점 ‘정치인 이재명’ ‘대권주자 이재명’이 아닌 ‘아들 이재명’ ‘아버지 이재명’ ‘사람 이재명’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최근 아들에게 자주 듣고 있는 조언부터 가슴에 꽂힌 국민의 ‘한마디’까지 진솔하게 밝혔다.

특히 이 지사는 자신의 가장 아픈 부분이자 질긴 꼬리표인 이른바 ‘욕설 사건’에 대한 풀스토리와 심경을 스스로 먼저 꺼내 놓았다. 그 과정에서 아쉬움·후회·그리움 등의 감정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이 후보는 “사정은 있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며 “물릴 수 있다면 물리고 싶은 후회의 기억”이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번 대선에선 특히 청년세대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하나.

“세대 간의 차이를 이해 못 하고 자기가 살아온 삶을 다음 세대에게 강요하면 꼰대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이를 인정한다. 스스로 ‘꼰대가 안 되려고 노력하는 꼰대’라고 정의하고 싶다(웃음).”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세 개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결과는 운명에 맡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아들들에게도 늘 역지사지를 가르쳤다. ‘네가 나라면’ ‘네가 엄마라면’ ‘네가 형이라면’. 요즘엔 아들의 조언을 많이 들으려고 한다. 아들은 주로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하는데 그중 ‘코스프레’를 하지 말라고 가장 자주 말한다. 한마디로 억지 연출해 보이지 말라는 거다. ‘우리도 그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림 만들어 ‘척’하는 것 안 하려 한다.”
 

“가족들, 정치 근처도 못 오게 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주로 어머니와 함께했던 순간이 행복하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어머니 손을 잡고 공장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저를 매우 애틋하게 생각하셨다. 형제 중 제가 가장 어린 나이부터 공장에 나갔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어머니는 제 손을 잡고 공장에 데려다주셨다. 가슴 아프셨을 것이다. 그런데 전 밤낮없이 일하기 바빴던 어머니와 손잡고 걸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터라 그저 행복했다.”

반대로 후회하는 장면 하나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욕설 사건 아니겠나. 전 권력자의 친인척이 어떤 유혹에 처할 수 있는지를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족들을 정치 현장 근처에도 못 오게 했다. 지금 제 친인척 중 아무도 근처에 없지 않나. 그런데 형님은 시민운동을 하며 제게 정책 제안을 하고 인사 의견을 쏟아냈다. 그래서 ‘그건 측근 비리다’ ‘시정 개입’이라며 단칼에 끊었다. 그러자 형님은 직접 공무원들에게 연락해 지시하기 시작했다. 전 공무원들에게 ‘형님 지시 하나라도 들어주면 중징계를 하겠다’고 했다. 계속 들어주지 않으니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하더라. 그래도 만나주지 않았다. 결국 형님은 어머니를 찾아갔다. 제게 전화하지 않으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했다. 제 아내가 찾아가 ‘형님 병원에 가보시라’ ‘가서 약만 타 먹어도 좋아질 거다’ 설득했는데 듣지 않았다. 거기에서 욕설 사건이 시작됐다.”

그래서 사건은 언제 터졌나.

“문제가 된 욕설 표현은 형님이 어머니에게 한 것이었고, 이후 제가 그 얘길 듣고 형수에게 ‘당신이라면 그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겠냐’고 화를 내면서 그 표현을 입에 담게 됐다. 형님은 그 후 어머니를 때리기도 했고, 결국 경찰에 잡혔다. 그 과정에서 형님 내외가 녹취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형님이 자신에게 찾아와 용서를 빌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녹취를 공개한다고 했고 전 ‘용서 못 한다. 그냥 까라’고 했다. 이런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후회는 남는다. 그 사건으로 우리 가족은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어머니는 형제간 화해하는 것도 못 보고 떠나셨다. 얼마나 한이 되셨을까. 형님도 돌아가셨다. 물릴 수 있다면 물리고 싶은 기억이다.”

이재명 후보가 8월21일 세종시 연기면 국회세종의사당 예정 부지를 찾아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상대의 과한 공격은 곧 반격의 기회”

‘인간 이재명’을 성장시킨 동력은 무엇이었나.

“비주류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기회가 많지 않았다. 위기는 흔했고 기회는 적었다. 그래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남들보다 체화돼 있다. 보통 사람들은 과도한 공격을 당하면 화를 내는데, 전 오히려 미소가 지어진다. 병법서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적이 자신들의 역량 이상으로 깊이 침투하면 그건 곧 섬멸의 기회라는 것. 상대의 과한 공격은 나의 반격의 기회다. 실제 공격을 과하게 당했을 때 이를 활용해 성장해 왔다.”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는 얘기인가.

“위기 속에 반드시 나쁜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적게나마 좋은 요소도 있다. 나쁜 측면을 통제하고 좋은 측면을 키우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실제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우리 성남시의 복지정책을 못 하게 하려고 재정을 삭감하길래, 광화문 농성을 했고 그로 인해 건강은 잃었지만 많은 것을 얻었다.”

대선후보로 성장한 것도 위기를 기회로 살린 건가.

“2015년 검찰에 소환됐던 일은 결국 지금의 대선후보가 된 출발점이다. 성남시장 당시 청소용역회사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줘야 하는 임금을 중간에서 떼어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청소노동자들끼리 만든 협동조합에 일을 주고 지원해 줬다. 그런데 이 조합 중 2명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다는 이유로 제가 종북에 자금을 제공했다며 검찰에서 부르더라. 이미 검찰에선 절 기소하려고 작정한 것 같길래, 조사받으러 들어가며 취재진 앞에서 작정하고 말했다. ‘제가 여기 일거리 준 게 종북이라면, 이 회사에 현금을 지원해준 박근혜 대통령은 ‘고정간첩’입니까’. 그 후 두 달 정도 지났나,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한국갤럽)에 1% 지지율로 이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찰은 사건에 대해 기소하지 않았고 3년이 지나서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성남을 근거지로 한 경기동부연합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전국을 돌며 많은 국민을 만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가 있다면 무엇인가.

“‘같이 좀 살자’는 말. 지방을 가면 다들 죽겠다고 한다. 인구는 줄고 산업은 피폐해지고. 비단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도는 1년에 18만 명씩 인구가 새로 유입되고 있다. 교통·교육 등의 문제가 심각해진다. 서둘러 분권화하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 모두가 산다. 국토균형발전은 더 이상 지방도시에 대한 배려의 차원만이 아니다. 저는 성남시장 때부터 균형발전을 강조하고 공공기관을 옮기는 일을 했다. 그래도 지지율 안 떨어졌다. 국민도 그것이 모두 더 잘살 수 있는 길임을 다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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