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둘러싸인 尹, 박지원 거듭 호출하는 속내는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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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넘어 靑 옭아매기…여권, 역공 차단하며 “본질 가리지 말라”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경선 예비후보 12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월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경선 예비후보 12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고발 사주'에 이어 '장모 대응 문건'까지 각종 의혹에 둘러싸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연일 박지원 국정원장을 링 위로 호출하고 있다. 검찰의 선거개입과 조직 사유화 논란에 국정원을 등장시켜 반격을 꾀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정보기관 수장으로 있는 박 원장이 이번 논란에 적극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판단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윤 전 총장 측이 '제보 사주' 의혹 판을 키워나가는 것은 박 원장을 넘어 문재인 정부까지 함께 겨냥하겠다는 전략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윤 전 총장 논란에 대한 엇갈린 발언이 쏟아지는데다 1차 컷오프 이후 경쟁후보 간 집중 견제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윤 전 총장이 의혹에 대한 구체적 해명 없이 현 정부 '공격 일변도'로 가는 것에 대한 반감이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원 넘어 청와대로 판 키우려는 野

국민의힘과 윤석열 캠프 측은 15일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박 원장 개입설에 힘을 실으며 추가 법적 대응에 돌입했다. 윤석열 캠프 내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는 이날 박 원장을 국정원법위반 및 공직선거법위반 등 혐의로 공수처에 추가 고발했다고 밝혔다. 

전날 박 원장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을 언급하며 경고한 것은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 부당 관여하고 국정원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란 이유에서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김기현·하태경·조태용·신원식 의원은 이날 오전 국가정보원을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최근 박 원장 발언을 보면 이성을 상실한 수준"이라며 "민주화 이후 대놓고 국정원이 정치개입 발언을 하는 초유의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가진 정보를 갖고 야당 정치인을 겁박하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 정치개입과 같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하태경(오른쪽 두번째 부터), 조태용 의원 등이 9월15일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을 항의 방문해 '국정원장 정치개입 즉각 중단하라, 책임지고 물러나라' 등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의힘 하태경(오른쪽 두번째 부터), 조태용 의원 등이 9월15일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을 항의 방문해 '국정원장 정치개입 즉각 중단하라, 책임지고 물러나라' 등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윤 전 총장 캠프 측과 국민의힘은 박 원장을 저격하는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 책임론도 함께 불 붙이고 있다. 박 원장과 조씨가 뉴스버스 제보 전날 만난 것 외에 야당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강제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되풀이 하는 모양새다. 

윤 전 총장으로서는 박 원장을 의혹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검찰발(發) 논란으로 인해 입을 타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발 사주 의혹의 진행 시점이 윤 전 총장이 재직 때여서 어떤 형태로든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데다, 검찰이 윤 전 총장 장모 사건에 대한 대응 문건까지 작성했다는 정황이 나오며 파급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향한 야권의 판 키우기는 내부에서 먼저 발목 잡힐 가능성도 있다.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 바람'을 업고 윤 전 총장을 위협하는 홍준표 의원과의 경쟁 구도가 큰 변수다.

홍 의원은 박 원장과 제보자 조씨 만남에 자신의 캠프 인사가 동석했다는 윤 전 총장 측 공격에 대해 "깜 안되는 초보 공격수"라고 깎아내리며 "그렇게 하면 (윤 전 총장) 스스로 자멸할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윤 전 총장 측은 박 원장에 대한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을 적시하면서도 자신을 향한 논란에 대해서는 '언론 대응을 위한 통상적인 업무로 파악됐다'며 선을 그었다.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서도 손준성 검사를 포함해 그 어떤 지시나 묵인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의혹 실체가 드러나면 그에 따라 사과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靑, 개입 선 긋기…여당은 국민의힘 '실언 때리기'

더불어민주당은 박 원장이 고발 사주 정국 전면에 등장하게 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야당의 '물타기' '논점 흐르기'로 일축하면서도 복잡한 속내가 감지되는 것은 박 원장의 적극적 대응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라는 공세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과 윤 전 총장이 박 원장을 자극하고 있지만, 맞대응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자칫 야당의 전략에 휘말려 버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박 원장이 언론을 통해 대응한 것은 야당의 정치공세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 측면이 있어보인다"면서도 "한번 공개적으로 경고했으니, 더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박 원장이 "잠자는 호랑이가 정치에 개입 안하겠다는데 왜 꼬리를 밟느냐"고 강력한 경고를 날린 만큼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추가 대응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청와대도 야권의 '참전' 도발을 차단하고 나섰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5일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청와대 개입 요구에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용하려는 것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고발 사주 의혹은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채 서로 정치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청와대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수사관들이 9월1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키맨'으로 지목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 세번째)가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수사관들이 9월1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키맨'으로 지목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 세번째)가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국정원장 배후설'을 맹폭하며 "윤석열 총장 재직 시절 대검을 흥신소, 사설 심부름센터로 전락시킨 검찰 공작, 검찰 농단"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전날 손준성 검사가 고발장을 작성해 김웅 의원에게 보냈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면서 오히려 김 의원에 표창장을 줘야 한다고 발언한 것에 집중 난타했다. 

김영배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이 국기문란 범죄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다는 것을 자백한 셈으로, 기본적 법 의식 조차 없는 소시오패스 같은 발언 앞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 도대체 뭐가 문제냐'라고 하면서 '유출'이 문제라고 했던 것과 똑같다"며 "'쿠데타가 무슨 문제냐,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던 군사 반란 주범들과 똑같다"고 성토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제보사주 프레임은 명백한 물타기로, 본질을 호도하는 정치적 행위"라며 "'검당 유착'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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