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말, 괴벨스가 떠오른다 [쓴소리 곧은 소리]
  •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kimchy53@naver.com)
  • 승인 2021.10.09 10:00
  • 호수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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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클수록 좋다”던 나치 선전상…추종자들은 리더의 거짓말도 믿고 싶어 해

동양 고전인 《논어》의 유명한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이에 대해 논어학교 교장 이한우는 습(習)이라는 동사 뒤의 지시대명사 之(지)에 대한 설명이 없음을 지적한다. 배우고 익히는 대상이 뭐냐는 것이다. 그는 “논어를 읽어보면 그것이 문질(文質)임을 알 수 있다. 문(文)은 사람의 말과 행동, 질(質)은 속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즉, 공자는 단순히 학문의 즐거움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어》의 마지막 문장은 ‘不知言 無以知人也(부지언 무이지인야)’이다.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역시 사람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이재명 후보가 10월3일 오후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인천 합동연설회(2차 슈퍼위크)에 참석해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이재명 후보가 10월3일 오후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인천 합동연설회(2차 슈퍼위크)에 참석해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성남시장 시절 트위터에 올렸던 막말의 충격

최근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한 정치인의 말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지지자들로부터 ‘사이다’라는 찬사를 듣는 그의 발언이 워낙 파격적이고 상식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 얘기다.

‘사이다’인지 ‘사카린’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지사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발언을 많이 했다. 인터넷에서 돌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형수와 통화하면서 “XX년”은 예사고 XX라는 부호를 사용하더라도 차마 활자로 옮길 수 없는 욕설들을 퍼부었다. 남의 집안 가정사를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걸 감안해서 듣는다 해도 이런 욕설에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재명은 성남시장 시절 트위터를 즐겨 사용했는데 자신에 대한 비판을 참지 않았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 “완전 또라이” “이 사람도 마약중독이나 정신질환자인 모양” “이분은 간질 있으신가 본데 누가 정신병원 좀 소개해 주세요” “귀 눈 처닫고 혼자 떠드는 인간” “화장실로 가서 대변기에 머리를 넣으세요” “쥐닭벌레에 해당하시나?”

욕설의 다양함과 창의성이 놀라울 지경이다.

 

대선후보 언어의 특징은 악마화와 엉뚱한 비유, 책임 전가

하지만 성남시장에서 경기지사가 되고, 다시 민주당 대선후보로 변신하면서 이재명은 다른 사람이 됐다. 말이 달라진 것이다. 경쟁 후보들이 아무리 공격해도 그는 더 이상 막말로 응수하지 않았다. 여배우 김부선씨와의 관계를 추궁당하자 “바지라도 내릴까요?”라고 대답한 정도가 유일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본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일까.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이라는 성남 대장동 토지 개발 사건이 터지고, 그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야당과 언론의 공세가 거세지자 그는 과거의 ‘사이다’ 혹은 ‘사카린’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대선후보답게 과거보다는 훨씬 세련돼졌다. 정치적 야심만큼 말도 진화한 셈이다.

그의 최근 발언들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악마화

자신을 공격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과감하게 악마로 단정하는 것이다. 이재명은 대장동 개발에 대해 “시민 몫을 포기할 수 없어 마귀의 기술과 돈을 빌리고 마귀와 몫을 나눠야 하는 민관 공동개발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 구조에서 토건업자들은 ‘마귀’고 자신은 어쩔 수 없는 피해자다. 마귀에게 판을 깔아준 게 자신의 측근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기만 하면 나의 어떤 행위도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귀와 싸운 대장동 사태는 “특혜를 준 게 아니라 특혜를 해소”한 것이고 “제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 칭찬을 받아야 할 일”로 둔갑한다.

마귀는 우리 편에도 있을 수 있다. 그는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면서 경쟁 후보인 이낙연을 겨냥했다. 어쩌면 ‘우리 편 마귀’가 더 미운지도 모른다.

둘째, 엉뚱한 비유와 논점 흐리기

이재명은 “노벨이 화약 발명하고 설계했다고 알카에다의 9·11 테러를 설계한 게 될 수는 없다” “한전 직원이 뇌물 받고 부정행위 하면 대통령이 사퇴하냐”고 항변했다.

논리적 연결성이 전혀 없으니 궤변이다. 백여 년 전 유럽인인 노벨이 중동의 알카에다와 무슨 상관인가. 한전 직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동규는 이재명 자신이 키운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전혀 상관없는 비유를 들어 상황을 얼버무리고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 책임 전가와 적반하장

이재명에게 대장동 사태는 ‘국민의힘 게이트’이고 국민의힘은 ‘장물을 나눠 가진 도둑’이다. 자신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 공익환수 사업’을 완수한 인물이다. 스스로 설계했다고 인정했고 측근이 주도한 사업에서 7000억원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는데도 “이재명의 유일한 방패는 청렴”이란다. 따라서 자신을 비판하는 기사는 ‘가짜뉴스’고 ‘이재명 죽이기’에 불과하다.

종합해 보자. 굳이 형수에 대한 욕설을 사례로 들지 않더라도 과거 이재명의 발언들은 거칠고, 인신 공격적이고, 야비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대선후보 이재명은 새로운 언어의 단계로 진입한 것 같다. 그의 발언들은 과감하고 단호하고 거침없다.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상대방에게 덮어씌우고, 현란한 비유를 통해 논점을 회피해 간다. 옳고 그름의 당위적 차원을 떠나 ‘정치와 말’이라는 측면에서 이재명은 달인의 수준에 도달한 듯하다.

권력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미국의 저술가 로버트 그린은 “대담하게 행동하면 약점을 감출 수 있다. 사람들은 대담한 이야기를 더 쉽게 믿고 그 안에 담긴 모순을 알아채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담하게 말하면 모순과 약점 감출 수 있을까

아무리 진실이라도 주저하면 의심받고, 아무리 거짓이어도 당당하면 믿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거짓은 클수록 좋다”던 독일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가 떠오른다.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는 지지자들은 리더의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걸 충성의 표시로 생각하고, 거짓말하는 리더를 용감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는 걸 지적한다.

이런 주장들은 적어도 정치지도자와 추종자들 사이에는 진실과 거짓이 일반인들의 기준과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이재명의 현란한 말솜씨는 추종자들을 언제까지 붙잡아둘 수 있을까. 이재명은 과연 누구인지, 공자에게 물으면 뭐라고 할까. 

김종혁은 누구

중앙일보에서 청와대 출입기자, 워싱턴 특파원과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그 뒤 JTBC에서 낮방송 《뉴스현장》의 앵커를 지냈다. 퇴사 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책을 썼다. 현재 방송 패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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