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와 평화의 상징 김포시 ‘조강’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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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개장한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남북 풍경 하나로 묶는 자연의 관대함 엿볼 수 있어
지난 10월7일 개장한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의 전시관. 예전 휴게소가 있던 장소다. ⓒ김지나
지난 10월7일 개장한 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의 전시관. 예전 휴게소가 있던 장소다. ⓒ김지나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이 개장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전망대 건물이 리모델링 공사로 폐쇄된 2016년 12월 이후 거의 5년 만이다. 적갈색 벽돌의 아담했던 옛 전망대는 사라지고 세련된 회백색 건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쓰였던 간이 휴게소는 ‘평화생태전시관’으로 바뀌었다. 전망대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소주제정원과 생태탐방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애기봉 전망대는 더 이상 없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이곳에서 보이는 풍경뿐이었다.

DMZ 접경지역에는 십 수 개의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마다 보이는 풍경에는 그 장소만의 이야기들이 서려 있기에 모든 전망대는 특별하다. 김포 애기봉에서는 남한 지역과 북한 지역이 동시에 보인다.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 둘을 하나의 풍경으로 감싸 안는 자연의 관대함이다.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북한인지 남한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바다인듯 강인듯 광활한 한강 하구의 풍경은 한때 이 강변을 따라 번성했을 포구들과 분주한 선박들이 겹쳐 떠오르는 곳이다.

애기봉에서는 남한(우측)과 북한(좌측)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것이 한강하구, 즉 조강이다. ⓒ김지나
애기봉에서는 남한(우측)과 북한(좌측)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것이 한강하구, 즉 조강이다. ⓒ김지나

남북 민간인 교류 포용했던 ‘조강’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서 느껴지는 김포시의 비전은 대단했다. 특히 ‘조강(祖江)’이란 이름을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조강이 무엇인지, 어디인지 처음 듣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구간을 ‘조강’이라 불렀었다고 전해진다. 이 애기봉에서 보이는 것이 바로 조강이다.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이자 바다로 나아가는 이 풍요로운 젖줄을 끼고 수많은 포구와 시장이 생겨났었다. 오가는 배 한 척도 볼 수 없는 지금과는 정반대의 풍경이 이곳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조강이란 이름은 점차 잊히고 대신 ‘한강하구 중립수역’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조차도 생소한 이름이다. 좀 더 잘 알려진 DMZ(비무장지대)는 파주 임진강 부근에서 끝난다. 그럼 그곳에서부터 서쪽으로 이어지는 한강의 하구와 인근 지역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1953년 맺은 정전협정에서는 ‘쌍방의 민용 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고 돼 있다. 군사용이 아닌 민간인의 배는 한강 하구에서 운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후 합의서에서 남북 간은 서로 100m 이내로 접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민간인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돼있는 DMZ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관대한 조치인 셈이다.

그래서 조강은 ‘평화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김포시에 중요한 자원이다. 원칙적으로나마 민간선박의 항행을 허용하는 한강하구는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의 상징물로 해석되기에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한강하구’가 아니라 자유롭고 번영했던 ‘조강’을 되살리는 일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은 조강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전시들로 채워져, 평화문화도시 김포를 완성하기 위한 제 역할에 매우 충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강하구 혹은 조강은 김포시의 것만이 아니다. 조강리, 조강포 등 조강이란 명칭이 지도상에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는 것은 김포시 일대이지만, ‘강’을 의미하는 조강이 정확히 어디까지를 의미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은 강화도와 교동도를 지나 볼음도까지 이어진다. ‘평화의 상징’으로서 한강하구를 조강으로서 재해석하자면 파주 오두산 전망대에서 보이는 것도,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보이는 것도 조강일 것이다.

현재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생태탐방로, 소주제정원을 추가로 조성 중이다. ⓒ김지나
현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은 생태탐방로, 소주제정원을 추가로 조성 중이다. ⓒ김지나

누가 누가 북한과 가까운지 경쟁 중

보통 전망대에서의 경험은 비슷비슷하다. 전쟁과 분단, DMZ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안보와 평화를 강조하는 교육 영상 따위를 보는 식이다. 전망대가 중요한 지역 관광지가 되면서 전망대 타워가 얼마나 높은지, 북한과 얼마나 가까운지 서로 경쟁하듯 강조한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는 34m 높이의 전망 타워를 세웠고 도라전망대는 더 높고 더 북쪽과 가까운 지점에 80억원을 들여 신축전망대를 만들었다. 이번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은 국비와 도비, 시비까지 합쳐 400억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조강이 아우르는 지역이 얼마나 광활한지 생각해본다면 김포시에서 독점하듯 이 거대한 시설을 조성한 당위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의문이 든다.

DMZ와 한강하구 접경지역 일대에 많은 문화시설이 들어서고 있지만 전체 그림을 그리는 큐레이션은 없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 있는 ‘개성으로 가는 VR열차’는 애기봉이 아니라 도라산역에 있어야 더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조강을 주제로 한 콘텐츠도 파주, 김포, 강화, 교동 등 지역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역 간의 과도한 경쟁이나 유사한 콘텐츠가 반복되는 것을 막는 것 또한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식지 않도록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조강의 역사와 의미를 알리고 부활시키기 위한 보다 지혜로운 협력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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