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대란’에 신음하는 글로벌 기업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28 11:00
  • 호수 1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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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훼손·물류대란·그린플레이션 합쳐진 결과
수출기업 수익성 옥죄는 변수 될 수도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원유와 가스, 석탄, 철광석 등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급 부족은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가는 이미 배럴당 80달러를 넘어 90달러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덩달아 석유화학 원료의 가격도 뛰고 있다. LNG의 가격 상승은 전기요금 인상과 직결된다. 도시가스 가격도 인상 압력을 받고 있다. 철광석 가격은 1년 사이에 두 배로 뛰었다. 톤당 100달러를 넘지 않던 가격이 지금은 200달러 이상으로 올랐다.

중국과 유럽 등에서 확산하고 있는 전력 부족 현상은 전기 사용량이 많은 금속제련 산업에도 타격을 줬다. 니켈과 구리, 리튬 등 산업적 중요도가 높은 15개 광물의 가격을 지수화한 한국광물자원공사의 광물종합지수(Mindex)는 사상 처음으로 3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지난해 10월과 비교할 때 1년 사이에 두 배로 뛰어오른 수치다.

ⓒ시사저널 최준필
10월21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종별 가격이 붙어있다. 최근 국제유가가 7년 만에 최고치로 급등하면서 국내 유가도 큰 폭의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국제유가 90달러대 진입 ‘초읽기’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코로나 백신 보급에 따른 경기 회복세다. 경기 회복으로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원자재 시장은 실물경제를 반영한다. 특히 유가 상승은 경기 회복과 확장 국면 진입에 대한 증거라고 한다. 과거부터 국제유가와 미국의 산업생산지표는 동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늘어난 수요에 비해 공급망이 아직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백신 접종이 확산하고, 각국 정부의 경기 회복 정책으로 시장 수요는 빠르게 증가했지만, 공급 속도는 수요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공급망 차질의 원인은 여전히 코로나19다. 동남아시아에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한 것도 글로벌 공급망의 속도를 더욱 떨어뜨렸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하루 확진자가 1만 명을 넘으면서 공장 조업 중단이나 폐쇄 조치가 내려졌다.

베트남은 신발, 의류, 휴대폰 등의 생산기지고, 태국은 아세안의 자동차 수출 중심지다. 말레이시아에는 주요 반도체 기업 50여 곳의 패키징, 테스트 라인이 집중돼 있다. 생산과 선적 성수기여야 하는 시점에 이 지역 공장들은 이미 3개월간 문을 닫아야 했다. 부분적으로 생산을 재개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정상적으로 가동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올해 초부터 심해진 물류대란도 여전하다. 미국에서는 항만 인력과 트럭 운전사가 부족해 하역과 운송이 모두 지연되고 있다. 미국에서의 항만 적체는 전 세계적으로 선박과 컨테이너 부족을 유발하고 해운 운임을 급격하게 올려놓고 있다. 해상운송 항로의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역대 최고치다.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을 제대로 팔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아마존이 아예 화물기 구매를 검토하는 것도, 코카콜라가 벌크선을 전세로 빌린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요즘 인기 있는 신차를 사려면 할인을 기대할 게 아니라 오히려 웃돈을 얹어줘야 할까.

미국의 유통업체들도 급하다. 연중 가장 큰 대목인 11월 추수감사절 블랙프라이데이부터 연말 연휴 시즌용 제품들이 선적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공급망 문제는 당분간 나아지기 어렵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미국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역시 악화하는 공급망으로 인해 유럽에서도 인플레이션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자재 대란의 또 다른 이유는 공급망보다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문제다.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저탄소 녹색경제로의 전환이다. 화석연료에 의존한 기존 체제에서 탈피해 새로운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막대한 규모의 신규 투자와 이에 따른 수요 증가가 발생하고 있다. 친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은 친환경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관련 원자재 등 자원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생산은 줄어들면서 해당 자원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그린플레이션’도 원자재 가격 상승 부추겨

발전용 원료인 석탄 가격이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호주산 유연탄은 올해 초 톤당 100달러대에서 400달러 수준으로 급등했다. 환경규제 강화로 석탄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발전용 석탄 수요 증가가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광물 자원의 가격 급등은 탈탄소 정책 추진으로 인한 관련 산업의 수요 증가 때문이다. 전기차에는 기존 차량보다 6배나 많은 광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과 흑연은 배터리의 성능과 수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재생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도 기존 화력발전보다 10배 가까이 많은 광물 자원이 필요하다. 이들 금속의 공급 부족으로 2차전지, 전기차 등 친환경 제품의 생산원가도 올라가고 있다.

중국의 전력난도 석탄 수출국인 호주와의 갈등 때문이라기보다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탄소중립 정책의 결과로 보는 것이 현실에 더 부합한다. 실제로 수입 석탄이 중국 석탄 총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하다. 중국의 동북 3성과 남동부 공업 벨트에 위치한 많은 공장이 조업을 중단하고 있는 것도 역시 중국 정부의 에너지 소비 제한 정책 때문이다.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은 코로나 백신 보급 이후 경기 회복으로 수요는 늘어났지만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그린플레이션 현상이 겹쳤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가운데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는 큰 문제가 아니다. 공급망 차질은 시간이 조금 걸릴 뿐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그린플레이션 현상은 다르다.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 어떻든 원자재 가격 상승은 기업의 생산원가를 높인다. 기업은 생산비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든가, 아니면 수익성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기업이 생산비 상승분을 100% 제품 가격 인상에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수출입은행 조사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우리나라 수출기업 수익은 평균 7.1% 감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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