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인가, 진격의 거인인가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2 10:00
  • 호수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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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M&A 이면에 어른대는 재계의 눈물

올해 인수·합병(M&A) 업계의 최대 ‘빅딜’이 성사됐다. 1조6200억원에 육박하는 쌍용자동차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전기자동차 회사 에디슨모터스가 선정되면서다. 특히 쌍용차는 에디슨모터스보다 매출 규모로 따졌을 때 30배나 높아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 결과를 두고 ‘고래를 삼킨 새우’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이 자신보다 몸집이 큰 기업을 인수했다가 탈이 났다. 특히 오너의 과욕으로 무리하게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기업이 해체되기까지 하는 ‘흑역사’가 M&A업계에서 반복되고 있어 우려가 더하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연매출 900억원 회사가 3조원대 쌍용차 인수

실제로 지난 9월20일 에디슨모터스가 쌍용차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음에도 시장에서는 인수·합병이 무사히 완료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에디슨모터스는 지난해부터 1년 가까이 이어진 쌍용차 인수·합병 각축전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쌍용차 경영 정상화까지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먼저 자금 조달 능력이다. 에디슨모터스는 매각주간사인 EY한영회계법인에 제출한 인수제안서에 산업은행 대출을 통해 인수자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의 토지·건물 등 2조원대 자산을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은 9월22일 기자간담회에서 “쌍용차 인수와 정상화에 필요한 자금 1조4800억~1조6200억원 중 절반 정도인 7000억~8000억원을 산업은행에서 조달하겠다”며 “신용 지원도 아니고 쌍용차 자산을 담보로 대출해 달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될 것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강 회장의 발언에 즉각 반발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산업은행은 입장문을 통해 “현재까지 법원, 회사 또는 에디슨모터스로부터 어떠한 자금지원 요청도 받은 바 없다”며 “관련 협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지원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에디슨모터스의 쌍용차 인수가 첫발부터 어긋나고 있는 모습이다. 쌍용차 인수의 핵심 관건은 결국 자금이지만, 산업은행은 에디슨모터스에 대한 금융지원에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자금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는 만큼, 향후 에디슨모터스의 사업계획에 대한 충분한 입증과 검토를 거쳐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쌍용차의 부채도 에디슨모터스가 넘어야 할 산이다. 현재 쌍용차의 부채 규모는 7000억원이다. 회생절차와 별도로 인수 후 즉각 값아야 할 공익채권만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공급망 유지를 비롯해 전기차·신차 개발 등 자금이 계속 투입돼야 하는 가운데 경영 정상화까지 1조원이 넘게 필요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에디슨모터스의 인수자금 조달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무사히 경영 정상화를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사실 에디슨모터스가 산업은행으로부터 8000억원의 인수자금을 지원받는 건 불가능하다”며 “향후 에디슨모터스에 대한 특혜 논란에 휘말릴 수 있으며, 직권남용 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모펀드나 외부 투자자들을 통해 인수자금을 확보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에디슨모터스가 자신보다 규모가 수십 배나 큰 쌍용차를 무리하게 인수하려는 게 애초에 무리수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디슨모터스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25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매출은 898억원, 영업이익은 28억원, 당기순손실은 16억원이다. 반면 쌍용차 매출은 2조9297억원으로 에디슨모터스보다 32배나 많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렇듯 최근 중소·중견기업들이 자신보다 몸집이 큰 대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우여곡절 끝에 인수 예정자로 최종 선정됐지만, 인수 과정과 경영 정상화에서 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6월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지역 건설사 성정이다.  

성정은 법정관리 상태인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가운데 낮은 채권변제율을 제시해 채권단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스타항공이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회생계획안에 따르면, 성정이 조달한 변제자금 700억원 가운데 회생채권 변제에 배정된 자금은 모두 158억원으로 채권변제율은 약 3.68%에 그친다. 현재 이스타항공의 부채는 2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채권단은 채권변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시사저널 임준선

M&A 무리수 뒀다가 몰락한 금호·웅진

그런데도 성정은 추가 변제대금 납부는 어렵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성정 측은 채권단이 양보하지 않으면, 추가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인수자금 외에도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성정이 이스타항공 인수전에서 발을 빼는 초강수를 둘 수 있다는 말도 나돈다. 

이처럼 에디슨모터스도 인수 시작 단계부터 잡음이 나오고 있어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승자의 저주란 경쟁에서 이겼으나, 경쟁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이나 대가를 치르는 바람에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는 형상을 일컫는 말이다. M&A업계에서는 인수 기업이 피인수 기업과 시너지 효과가 나기는커녕 유동성 위기와 재정난 등을 초래해 모기업이 휘청이는 경우를 의미한다. 

특히 그동안 재계에서는 총수의 과욕으로 인수·합병에 뛰어들었다가 사실상 그룹이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한때 재계 10위권에 진입했던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대표적인 ‘승자의 저주’ 주인공이다. 현재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면서 중견기업으로 전락한 가운데 박 전 회장은 수천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박 전 회장의 몰락은 2006년 대우건설에 이은 2008년 대한통운 인수가 발단이 됐다. 인수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무리한 인수·합병을 추진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시장에 내놨다. 아울러 금호생명, 금호렌터카, 금호타이어 등 주요 계열사도 차례로 매각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도 사이가 틀어져 계열분리 수순을 밟게 됐다. 박 전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이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지만, 2013년 복귀해 그룹 재건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룹재건 과정에서도 무리한 시도가 이어졌고, 오히려 그룹의 상징인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19년에는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지만 너무 늦었다는 평가다. 현재 금호그룹에 남은 계열사는 금호고속과 금호산업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룹으로 부르기도 어려운 처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12월 그룹 컨트롤타워인 전략경영실을 폐지하면서 사실상 그룹 해체를 공식화했다. 

한때 대기업으로 성장했던 웅진그룹도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무너졌다. 2007년 웅진그룹은 론스타로부터 6600억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당시 극동건설의 매각가는 3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웅진그룹은 매각가의 2배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지급하면서 ‘고가 인수’ 논란을 빚었다. 

이후 웅진그룹 역시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난에 빠졌다. 웅진그룹은 극동건설 정상화를 위해 4400억원을 추가로 투입했지만 2012년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룹 핵심 계열사인 웅진코웨이도 잃게 됐다.

2019년 4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그룹 재건을 위해 6년 만에 코웨이를 다시 사들였다. 하지만 윤 회장은 인수 3개월 만에 코웨이를 또 뱉어내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코웨이 인수로 인한 높은 금융 비용과 재무 악화가 그 원인이었다. 애초에 윤 회장이 무리하게 코웨이를 인수한 탓에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게 재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성공적인 인수·합병은 새로운 성장동력 

물론, 기업 인수·합병에서 실패한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한화와 SK는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 기업들이다. 한화는 2015년 삼성의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삼성종합화학(현 한화임팩트) 등 방산과 화학 계열사를 잇달아 인수했다. 그 결과, 화학 계열사들은 한화의 캐시카우로 자리 잡았으며, 방산 계열사들은 한화의 미래 먹거리인 우주항공사업 진출을 위한 첨병이 됐다. 

SK는 2012년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4800억원에 인수했다. 2017년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1조원에 사들여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면서 글로벌 4위 반도체회사로 발돋움했다. 이들 기업은 적기에 그룹의 체질을 바꿀 대형 인수를 성사시키고 때론 과감한 매각으로 선택과 집중 공식을 만들어냈다. 재계에서는 이들 기업이 M&A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 성공적으로 외연을 넓혔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한화와 SK의 M&A를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대비하는 기업들
코로나 특수로 올 상반기 기업결합 건수만 489건

올 상반기 국내 기업들의 M&A(인수·합병) 실적이 금액 기준 221조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약 1.5배 높은 숫자로, 총 72조4000억원이 증가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기업들이 유망한 업종·회사에 공격적인 투자를 펼치면서 M&A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정거리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도 상반기 기업결합 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업결합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5건 늘어난 489건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424건보다 15.3% 증가한 수치다. 기업결합 금액은 72조4000억원 늘어난 221조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이 중 국내 기업에 의한 기업결합이 42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건(18.5%) 늘었다. 금액은 11조4000억원(60.4%) 증가한 30조2000억원이었다.

자산 5조원 이상 공시 대상 기업집단(대기업집단)에 의한 결합이 전체 증가세를 이끄는 추세를 보였다. 대기업집단에 의한 결합 건수는 196건으로 1년 전(105건)보다 87% 증가했고, 금액은 160.7% 늘어난 23조2000억원이었다. 특히 대기업집단에 의한 비계열사 간 결합이 145건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건수인 142건을 넘었다.

이는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공정위는 “계열사 간 결합(23.9%)보다는 비계열사와의 결합이 대다수(76.1%)로 나타나 수익 구조 다변화,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노력 등을 활발히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M&A 시장 역시 14년 만에 역대 최대치 거래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전체 M&A 거래 규모가 5조 달러(약 5826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07년 종전 최고 기록을 14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글로벌 M&A 시장 호황을 이끈 요소로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이어진 전대미문의 부양책과 유동성이 꼽힌다. 갈 곳 잃은 자금들은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갔고, 주식 활황을 이끌었던 개인투자자들의 낙관론은 기업 경영진뿐만 아니라 주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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