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경쟁적으로 ‘원전 부활’ 외치는 이유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3 11:00
  • 호수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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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유럽의 원자력발전…단계적 폐지 추진하던 기존 입장에서 급선회 배경 주목

유럽을 중심으로 한 가스 및 전력 가격 급등은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안전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퇴출됐거나 퇴출 예정이었던 원자력발전에 대해 최근 이를 다시 도입하거나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유럽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27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EU)을 하나의 국가로 간주한다면 유럽연합은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 수입국이다. 전체 사용 에너지의 55%를 수입하며, 연간 에너지 수입 비용은 3000억~3500억 유로에 이르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유럽연합은 전체 전력의 46%를 화석에너지를 통해 생산하고 있고, 26%는 원자력발전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수력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비중은 28%로 집계되고 있다. 27개 회원국 가운데 13개 국가에서 106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정도인 56기의 원자력발전소를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다.

ⓒEPA 연합
유럽을 중심으로 가스 및 전력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자력발전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사진은 독일의 한 원자력 발전소 모습ⓒEPA 연합

계속되는 전력난으로 원자력발전 ‘재조명’

유럽에서의 원자력발전은 에너지의 과도한 외부 의존도를 낮추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일정 부분 필요한 것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사용후 핵연료 처리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건설 비용 등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 인하로 더욱 가속화됐다.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독일이 2023년까지 원자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하면서 원자력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간주됐다. 세계 최고의 원자력 비중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기존 노후 원전의 폐쇄와 더불어 원전 비중 축소 및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전력수요의 대폭적인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면서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분위기는 조금씩 변화됐다. 석탄, 가스 등을 통해 이뤄지던 난방과 취사 등을 전기로 전환하고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은 신규 전력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함을 의미한다. 자연현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재생에너지 발전은 지속적인 공급을 요구하는 전력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게 됐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따라 2020년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원자력발전 신규 도입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비싸고 큰 가압형 경수로 대신 소규모에 설치 기간이 짧으면서도 안전성이 높아진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를 전력수요가 높은 곳에 설치한다는 계획은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다.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진행되던, SMR을 중심으로 한 원전 역할 재평가는 2021년 가스 가격 상승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가스화력발전소는 석탄화력발전이나 원자력발전에 비해 수요에 맞춰 가동을 시작하거나 출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메워주는 존재로 간주됐다. 천연가스 역시 화석연료이기는 하지만 석탄에 비해 대기오염물질 발생 비중이 훨씬 낮으며, 온실가스 역시 동일 열량을 기준으로 할 때 절반 이하 수준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루어질 때까지의 틈새를 메워주는 역할로는 충분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복한 동거는 풍력 약화에 따른 풍력발전 비중의 축소와 이를 상쇄하기 위한 천연가스 발전의 확대로 인한 가스 가격 폭등으로 그 취약성이 드러나게 됐다.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러시아의 움직임을 보면서 유럽연합은 새삼스럽게 에너지를 러시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과거 천연가스를 자급자족하던 영국은 2004년 이후 수입국으로 전환됐으며, 유럽 내부의 가스 공급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네덜란드 역시 지진 등의 이유로 가스 생산을 중단할 예정이어서 천연가스의 외부 의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원자력발전을 폐지하고 이를 가스화력발전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비용 상승을 우려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벨기에의 경우 전체 전력생산량의 4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이를 2025년까지 폐지하고 가스화력발전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가스 가격 상승으로 인해 강력한 반발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연립정부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자 최근 프랑스는 체코, 핀란드, 헝가리 등 10개국과 공동으로 원자력을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 옵션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별도로 10억 유로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차세대 원자로를 건설한다는 2030 의제를 발표하면서 원자력의 부활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영국 역시 기존 원자력발전소 입지를 중심으로 새롭게 개발되는 SMR 원전을 설치하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원자력 비중이 가장 높은 프랑스가 독일에 비해 1인당 이산화탄소 발생량과 전략요금 모두 낮은 현실은 원자력발전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 옵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간주되고 있다.

 

원전 찬반 논란에 대한 진지한 고민 필요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 모두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은 대규모 자본과 중앙집중식 통제를 통해 조성·가동됨으로써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의 소규모, 분산식 개념과는 상극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전력수요 자체의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가스화력의 용량 확대는 석탄화력 축소를 통해 얻어진 온실가스 감축분을 모두 되돌리며 장기적으로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원자력발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에너지원을 외부에 의존하고 있으며, 유럽연합과 달리 상호 전력망 연결도 불가능한 우리의 상황을 감안하면 탄소중립이라는 목표와 방향은 동일하지만 그 과정은 동일할 수 없음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원자력의 확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대규모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될 수 있는 입지는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곳에 모두 건설하더라도 결국 원전 단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양자택일이 아닌 상호공존과 역할 분담의 적절한 수준을 고민하는 것이 탄소중립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며 빠른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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