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나는 씨티은행, 멀어지는 ‘금융허브’의 꿈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0 07:3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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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글로벌 금융사들 한국 철수 ‘도미노’
금융 경쟁력 14위로 홍콩(3위), 싱가포르(4위)에 크게 뒤져

한국씨티은행이 국내 소매금융 시장에서 철수한다. 2004년 한미은행과 통합해 출범한 지 17년 만이다. 앞으로 기업금융을 중심으로 영업을 이어간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 사업 비중은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한국에서 소매금융 영업을 유지하는 외국계 은행은 SC제일은행이 유일한 상황이다.

사실 씨티은행은 그동안 국내 시중은행들과는 좀 다른 대접을 받아왔다. 다른 은행들에는 큰 문제 없이 통할 수 있는 관행과 창구지도는 잘 먹히지 않았다. 최근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씨티는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에 참여하지 않았다. 본사에 대한 많은 배당 때문에 국부 유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2018년과 2019년 씨티은행 배당 규모는 9994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금융 당국이 금융사를 대상으로 직접 배당 성향을 20%로 제한했는데, 한국씨티은행은 권고에 딱 맞춰 배당을 20%로 정했다. 이번의 경우처럼 다른 국내 은행이 지점을 닫고 영업을 포기하겠다고 하면 금융 당국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점포 하나를 줄이는 것도 은행연합회 자율규제란 형식으로 사전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

씨티그룹은 지난 4월 한국을 포함한 13개국에서 소비자 영업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한국시티은행 본점 창구 모습ⓒ뉴스1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철수, 결정적 이유는?

한국씨티은행의 국내 소매금융 철수 결정은 물론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당기순이익은 2018년 3074억원에서 2019년 2794억원, 지난해는 1878억원으로 줄었다. 특히 소매금융 부문의 순이익은 2018년 721억원, 2019년 365억원, 2020년 148억원으로 감소폭이 더 컸다. 총자산에서 순이익을 얼마나 올렸는지를 보여주는 총자산이익률(ROA)을 보면 씨티은행은 2.99%에 불과하다. 2019년의 4.05%에 비해 많이 악화됐다. 국내 은행들의 평균 수준인 5.88%에도 한참 못 미친다. 5%를 넘지 못하는 총자산이익률은 구태여 힘들게 사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한국씨티 입장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통폐합으로 덩치를 크게 키운 국내 토종은행들과의 경쟁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달력 배포조차 금지하는 미국 본사의 영업방침 역시 한국 시장에는 맞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글로벌 금융사의 한국 시장 철수가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다. 2013년 영국계 은행인 HSBC가 국내 소매금융 사업을 접고 떠났다. 2017년 골드만삭스와 영국의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스페인의 빌바오 비스카야(BBVA), 영국 바클레이스 등이 사업을 정리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스위스 UBS와 호주 맥쿼리가 철수했다. 은행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떠난 보험회사와 자산운용사도 많다. 네덜란드계 ING생명과 독일 알리안츠생명, 미국 푸르덴셜이 모두 한국 사업을 매각하고 철수한 회사들이다. 자산운용 업계에선 골드만삭스자산운용과 JP모건자산운용이 떠났다.

철수 이유는 대개 같다. 글로벌 금융기업의 의사결정은 한국만이 아닌 말 그대로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 차원에서 이뤄진다. 본사 입장에서는 한국에 계속 머무를 때 가능한 이익과 한국을 떠나 그만한 역량을 다른 곳에 투입해 얻을 수 있는 장기 이익을 비교하게 된다. 외국계 금융사들의 이탈은 순이익이 급감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뤄졌다. 씨티도 마찬가지다. 본사 입장에서는 어떤 지역이든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을 접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다. 한국 시장에 매력이 없다면, 굳이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들 외국계 금융사들의 실패를 오로지 한국 시장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원래 한국은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경쟁은 치열하고 고객의 요구 수준은 높다. 수익을 올리기는 힘든데 강한 규제와 세율 부담은 크다. 외국계 금융사가 국내 금융회사와 경쟁하려면 글로벌 네트워크나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한 신규 상품 도입과 새로운 시장 창출이 필요하지만, 진입은 어렵고 취급 상품엔 제한이 많다.

굳이 진출해 힘든 경쟁을 하며 미래를 바라보기에는 시장도 크지 않다. 글로벌 금융기업으로서는 특히 싱가포르나 홍콩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이 지적한 대로 우리는 홍콩과 싱가포르와 비교해 세금이 많고 노동시장도 경직돼 있다. 심지어 영어 사용 문제를 포함한 문화적 인프라도 좋지 않다. 지난 9월 발표된 비즈니스 환경을 포함해 세계 주요 도시들의 금융 경쟁력을 측정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를 보면 서울의 순위는 13위로 3위 홍콩이나 4위 싱가포르와는 비교가 어렵다.

그렇다고 세제와 고용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는 금융허브 추진전략을 세웠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아태지역본부를 집중적으로 유치해 한국을 홍콩과 싱가포르에 버금가는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키우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현 정부의 목표에 금융허브는 없다. 기본적으로 현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금융을 보는 시각부터 다르다. 정부가 생각하는 금융은 산업이라기보다는 공적인 기능을 우선해야 하는 사회적 기구다. 가계와 기업에 자금을 원활히 공급해 주는 것이 먼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경제가 타격을 받자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지원 대책이었다. 지금도 국회는 은행과 카드, 보험사가 1조원을 출연하는 내용의 서민금융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IFC 건물로만 남은 ‘금융허브’의 잔재

공공성에 대한 요구를 근거가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다. 제도적으로 면허가 필요한 은행업을 포함한 금융산업에는 특별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 더욱이 은행은 공적 지원이 담보된 예금을 기반으로 영업을 한다. 하지만 금융업도 수익을 내야 하는 비즈니스다. 그것도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이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못지않게 산업의 진흥도 필요하다. 결국, 숙제는 규제와 진흥의 균형이다.

금융산업은 변혁기를 맞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은행들은 앞으로 10년간 일자리 170만 개를 줄일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인력의 30%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노조가 반발하고, 당국이 견제하지만 2012년 7681개였던 국내 은행 점포가 지금은 6317개로 줄었다. 빅테크나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받고 있는 금융산업에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 의무는 어디까지 부여하는 것이 옳을까. 원래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동북아 금융허브 프로젝트의 목표 달성 시기는 2020년이었다. 현재 금융허브의 꿈은 여의도에 세워진 국제금융센터(IFC)라는 이름의 건물로만 남아있다. 그나마 국제금융센터에 들어가 있는 회사 셋 중 둘은 금융사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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