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vs 하림의 끝없는 악연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8 10: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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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새 제재 두 번, 과징금만 179억원…하림, 공정위에 ‘괘씸죄’로 찍혔나

하림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연이어 철퇴를 맞았다. 사실상 한 달도 안 돼 두 번이나 공정위 제재를 받으면서, 179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하림은 이번 공정위 제재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불복하면 향후 2~3년간 법적 싸움 양상으로 번지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양측의 ‘악연’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공정위가 10월27일 하림그룹에 대해 계열사들이 올품(전 한국썸벧)을 부당하게 지원해 부당이익을 제공한 혐의로 시정명령과 총 48억8800만원의 과징금 등을 담은 제재안을 발표한 게 발단이었다. 올품은 하림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김홍국 하림 회장의 장남 김준영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 자회사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연합뉴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연합뉴스

‘경영 승계 준비하기 위해 올품에 부당지원’ 판단

하림그룹의 위반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고가 매입 △통행세 거래 △주식 저가 매각 등이다. 하림은 2012년부터 계열사 팜스코 등 5개사의 동물약품 구매 방식을 각자 구매에서 올품을 통해서만 통합 구매하는 것으로 변경해 준영씨에게 부당이익을 제공했다. 공정위는 이를 통해 올품이 지원받은 금액이 동물 약품 고가 매입 32억원, 사료첨가제 통행세 거래 11억원, 구올품 주식 저가 매각 27억원 등 약 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봤다.

하림이 올품에 일감을 몰아준 건 승계 자금 마련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공정위는 하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010년 8월19일 작성된 ‘회장님 보고자료, 한국썸벧 및 지분이동’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확보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김 회장의 장남인 준영씨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올품을 증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공정위는 이 문건을 토대로 하림이 경영 승계를 준비하려고 올품에 대한 부당지원을 했다고 판단했다.

현재 올품은 하림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다. 김 회장이 2012년 올품 지분 100%를 증여하면서 준영씨는 제일홀딩스(현 하림지주)의 최대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9월말 기준 올품이 가진 하림지주 지분은 4.36%다. 또 한국인베스트먼트(올품의 100% 자회사)를 통해 20.25%를 갖고 있다. 두 지분을 더하면 24.61%로, 김홍국 회장 지분(22.95%)보다 많다.

공정위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림 계열회사들이 올품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다. 올품에 일감을 몰아준 계열사들에 38억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올품의 경우 10억7900만원의 과징금이 책정됐다.

하림은 공정위로부터 담합 혐의로 수백억원의 과징금과 함께 검찰 고발도 당한 상태였다. 공정위는 지난 10월6일 하림과 올품에 삼계탕용 닭고기 담합 혐의로 검찰 고발 및 과징금 130억원을 부과했다. 한 달 사이에 무려 두 차례에 걸쳐 하림은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은 것이다. 이렇게 한 기업이 연이어 공정위 철퇴를 맞는 건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와 하림의 오랜 악연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에서 하림은 공정위의 1호 재벌 개혁 기업이었지만 다소 김이 빠졌다”며 “공정위의 궁극적인 목표는 김 회장에 대한 검찰 고발이었지만, 하림 측이 제기한 각종 행정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하면서 실패로 끝났다”고 귀띔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공정위, 김홍국 회장 검찰 고발에 실패

하림은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총 4차례 제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 심결법위반사실조회서에 따르면, 하림은 △육계위탁사육계약서상 불공정 약관조항에 대한 건(1997년) △기업결합신고 규정 위반행위에 대한 건(2002년) △특수관계인의 기업결합신고 규정 위반행위에 대한 건(2002년)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건(2018년) 등으로 과태료와 과징금을 물었다.

양측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것은 2017년부터다. 이듬해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했으며, 첫 대기업집단 직권조사 대상으로 하림을 지목했다. 팜스코 등 하림그룹 계열사 8곳이 김 회장의 장남 회사인 올품에 부당지원 행위를 했다는 혐의에서였다.

하림을 겨냥한 공정위 조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도가 높았다. 2017~18년까지 진행된 현장조사만 총 7차례에 달한다. 통상 공정위는 한 기업을 수사할 때 현장조사는 한두 차례 정도만 한다. 이 때문에 단시간에 한 대기업집단에 이렇게 많은 현장조사를 벌이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후 2018년 말 공정위는 조사를 마무리하고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 격)를 하림 측에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는 김 회장에 대한 고발 조치 의견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하림은 심사보고서에 활용된 각종 근거 자료를 보여 달라고 공정위에 자료 열람·복사를 요청했다. 이에 공정위는 하림이 요청한 자료에 타 기업 영업비밀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요청을 거부했다. 이후 하림 측은 ‘자료 열람·복사 거부 취소 청구 소송’ 등을 제기하면서 공정위를 물고 늘어졌다.

해당 소송에서 사실상 하림이 완승했다. 지난해 10월 공정위가 공개하지 않은 자료 일부를 하림에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러자 공정위는 해당 부분을 제외한 새 심사보고서를 냈다. 하림은 이 심사보고서에 대해서도 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올해 초 하림이 심의 절차를 문제 삼아 제기한 열람·복사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결국, 소송으로 공정위 심사는 마무리까지 총 4년이 소요된 것이다.

이 밖에도 공정위는 하림의 갑질 혐의에 대해 제재 조치를 했지만, 이 역시 대법원에서 뒤집히면서 체면을 구겼다. 공정위는 2018년 하림이 생닭 가격을 의도적으로 낮게 책정해 농가에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7억9000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하림 측은 공정위 처분이 부당하다며,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년간의 소송 끝에 대법원은 공정위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하림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하림이 공정위에 ‘괘씸죄’로 찍혔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들린다. 이에 대해 하림 관계자는 “현재 조사를 받는 기업 입장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 평가를 할 건 아닌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동안 공정위에서 조사한 사건과 관련해 회사 측은 충분히 소명했는데, 이와 같은 처분 결과가 나와 안타깝다”고 밝혔다.

연이은 소송 패소에 공정위 체면 구겨

질긴 악연이 종식될 수 있을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하림 측은 공정위의 이번 처분에 대해 입장문까지 발표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 처분을 인정하고 과징금을 낼 수도 있지만 불복할 가능성도 크다. 통상적으로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에는 2~3년이 소요된다. 법적 대응을 시작하면서 과징금에 대한 집행정지도 함께 신청할 가능성도 있다. 하림은 아직 공정위로부터 의결서를 받지 못한 상태다. 하림 관계자는 추후 공정위 의결서를 송달받으면 이를 검토해 향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림 2세 승계, 숨고르기 들어가나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제재로 후계 구도 정당성 훼손 우려

하림그룹이 부당지원으로 김홍국 회장 장남에게 지분을 넘긴 정황이 포착되면서 승계 작업은 당분간 멈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림은 이번 제재로 아들 준영씨에게 지배력을 이양하는 구도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업계에서는 준영씨가 무리하게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보다는 속도 조절을 하며 경영 경험을 쌓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림그룹은 2010년부터 경영 승계를 준비했다. 공정위가 하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회장님 보고자료, 한국썸벧(올품의 전신) 및 지분이동’(2010년 8월19일 작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子에 증여하는 방식은 (향후 子가 증여받을) 법인을 경유하는 것이 유리”하다면서 “K소유 법인(한국썸벧)에 증여하는 것이 미성년자인 子에 증여하는 것보다 과세 당국의 관심을 덜 유발시킬 수 있음(특히, 명의신탁 관련 의혹 일부 해소)”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나온 K는 김 회장, 子는 준영씨다.

준영씨는 하림지주 경영기획실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며 경영수업을 받다가 최근 사모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에 입사했다. 현재 투자 및 포트폴리오 관리 업무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림그룹과 JKL파트너스는 2015년 컨소시엄을 구성해 1조500억원을 들여 팬오션을 인수했다.

업계에서는 공정위 제재를 앞두고 준영씨가 회사를 옮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 제재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준영씨의 임원 승진 등을 추진하는 것은 김 회장에게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점에서다. 최근 김 회장이 신제품 라면 출시 미디어 간담회에 참석해 직접 라면을 조리할 정도로 대외 행보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준영씨는 사모펀드 회사에서 투자와 M&A 경험을 쌓으며 경영 수업을 받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해운협회 제공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부회장이 11월3일 ‘해운기업에 대한 공정위 이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해운협회 제공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해운사 담합 사건

‘과징금 폭탄’ 앞둔 해운업계, 공정위에 ‘선전포고’

현재 공정위와 각을 세우고 있는 곳은 하림그룹뿐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지난 5월 국내외 선사들에 운임 담합에 대한 과징금 8000억원을 부과한다는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공정위는 현재 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곗바늘을 2018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목재합판유통협회는 해운사들이 한국~동남아 노선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운임 담합을 한 것이 의심된다며, 공정위에 신고했다. 곧바로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한국~동남아 노선 취항 선사들이 2003년 10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122차례에 걸쳐 운임을 담합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해당 선사들이 담합으로 얻은 매출을 8조원으로 추산해 8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부과 대상은 HMM, 팬오션 등 국적 선사 12곳과 외국적 선사 11곳이다.

해운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공정위가 현실을 무시한 채 이제 막 되살아나는 해운업계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업계는 공정위가 조사하고 있는 해운사 간 운임 담합행위가 해운법에 근거한 합법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부회장도 11월3일 서울 소공로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정위 조사가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선사들의 경영활동에 큰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선박 발주 시기는 이미 놓쳤지만, 더 놓치면 (선사들이) 상당히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11~12월 내 어떻게라도 빨리 결정해 달라“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해수부의 감시·감독에 따라 적법한 과정에 따랐을 뿐이라며,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해양수산부의 감독을 받으며 40년 동안 공동행위를 해왔는데 이것이 잘못이라고 한다면 해수부를 징계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공정위가 소액이라도 과징금을 부과하면 무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끝까지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관련 사건이 최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장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10월2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해운사들의 담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히면서 공정위와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여야 위원들 역시 해수부의 손을 들어주며 공정위를 질타했다. 아울러 현재 법안소위에서 해운법에 따른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해운법 개정안’도 통과된 상황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해운법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 이상의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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