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특검’ 수용론, 여당에서 솔솔 나오는 이유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6 10: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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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층 ‘특검 찬성’이 70% 육박… “특검 수용으로 여론 달래고 넘어가야”
'김경수 드루킹 특검 트라우마'에 주저
野, 특검 도입에 '올인'하지만 '실효성' 떨어질 거란 우려도

야당은 지금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특별검사(특검)’ 도입에 대선 승부의 사활을 걸고 있다. 2년 만에 국회 앞에 다시 천막 농성장을 설치했고, ‘1일1특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여당은 특검 얘기라면 손사래부터 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는 야당의 특검 주장을 정략적 의도로 규정짓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역시 야당의 ‘시간끌기’ 작전에 따라줄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양측 모두 일방통행이다.

야당의 특검 압박과 여당의 단호한 거부. 이 평행선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진 후 한 달여 동안 대외적으로 나타난 여야의 스탠스다. 그러나 그 내면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특검을 둘러싼 여야의 셈법은 보이는 것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여당 일각에선 결국 특검 수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일말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특검을 받아야 하는지, 받는다면 언제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고민 앞에 놓여 있다. 한편 야당에선 자력으로 특검을 관철해낼 도리가 없어, 장외 여론전만 펼치는 데 대해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특검에 ‘올인’하는 전략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11월3일 국회 본청 앞에 설치된 대장동 게이트 특검 추진 천막투쟁본부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유인태 “특검 거부할 명분 약해”

민주당 일부에서 특검 수용 목소리가 나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단적인 이유는 ‘여론’이다. 최근 발표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특검에 ‘찬성한다’는 응답률은 60%를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선 본선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중도층’의 특검 찬성 응답률은 70%에 육박한다. 끝까지 팽팽한 승부가 예상되는 대선 레이스에서, 이처럼 확실한 여론의 경고를 여당이 끝까지 무시할 순 없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원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특검은 불가피하다. 검찰 수사가 난 이후에도 국민과 야당이 ‘못 믿겠다’ 하면 특검을 거부할 명분이 약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검 도입이 여당으로선 그리 나쁜 카드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일단 시간이 민주당 편이라는 것이다. 특검은 1999년 처음 도입된 이후 21년간 총 13차례 치러졌다. 여야가 특검 도입에 합의해 수사가 본격적으로 개시되기까지 평균 45.3일이 소요됐다. 김대중 정부 당시 실시된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78일까지 걸렸다. 대선까진 불과 4개월이 남았다. 당장 이달 중 여야가 특검 논의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특검법 통과와 특검 구성을 거쳐 수사에 들어가기까지는 사실상 해를 넘겨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시간의 지체’는 지금 여당 의원들이 특검에 반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특검 합의부터 구성까지, 대선 내내 온통 대장동 특검과 관련한 얘기로 도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책 등 다른 이슈로의 전환이 어려워진다. 야당의 특검 주장을 ‘정치적 의도’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과거 특검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특검 합의부터 출범, 수사 착수까지 대선 기간 전체를 잡아먹는 타임 테이블이다. 특검에서 누구 하나 부를 때마다 온통 화제가 쏠리고, 우리 당은 또 야권 인사 수사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할 텐데, 이는 국민에게 혐오감만 불러일으킬 처사다. 이런 여론은 집권 여당엔 더 큰 손해다. 야당의 특검 주장에 정략적 의도가 담겼다고 보는 이유”라고 말했다.

조금 다른 의견도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특검을 빨리 받든 늦게 받든, 아니면 끝내 받지 않든 대장동 이슈는 어차피 대선 당일까지 이어질 이슈다. 차라리 대승적으로 특검을 수용하면서 여론을 한번 달래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옵션”이라고 말했다.

ⓒ국회사진취재단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10월20일 국회 경기도청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든 피켓을 바라보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여전히 반대론 대세…“드루킹 특검처럼 될라”

더구나 이번의 경우, 특검 합의가 그 어느 때보다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역시 특검의 수사 범위에 당연히 포함시킬 계획이다. 2011년 윤 후보가 부산저축은행 수사 주임검사로서 대장동 대출 건을 부실 수사하면서 오늘날 대장동 개발사업의 종잣돈을 마련해준 의혹과 관련해서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11월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방송 토론에서 “특검은 검찰 수사를 보고 나서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대장동 특검 수사 대상 핵심은 윤석열”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당이 윤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특검을 별도로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야당의 계속되는 대장동 특검 요구를 고발 사주 특검 요구로 맞받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여권에선 윤 후보를 둘러싼 고발 사주 의혹의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손준성 보냄’의 고발장 사건 외에도, 윤석열 총장 당시 검찰이 ‘월성원전 1호기’와 관련해 야당에 관계자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 또한 커지는 분위기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초 해당 의혹에 대한 법무부 정식 조사를 지시했으며, 10월20일 “유의미한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검과 관련한 여러 셈법이 제기되는데도, 여전히 민주당 내에선 특검 수용에 부정적인 입장이 다수다. 그 진짜 이유는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른바 ‘드루킹 트라우마’다. 여당은 유력 대권주자였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구속시킨 허익범 특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더구나 지금의 이재명 후보는 대선을 4개월 앞둔 ‘대체 불가’ 민주당 후보다. 만에 하나 발생할 리스크까지 사전에 차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특검은 불안한 문 하나를 열어주는 것과 같다. 특검 수용을 주장해온 5선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혹시라도 뭐가 나올까 하는 불안함이 당 지도부에서 지금 특검을 거부하고 있는 핵심적 이유”라면서 “그럴수록 확실한 대선 승리와 뒤탈 차단을 위해 털고 가는 게 맞다. 떳떳하다면 빨리 특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걱정 때문에 여당이 특검을 수용하더라도 최대한 늦게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여당 내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소수 인사들도 “일단 검경 수사 결과가 어느 정도 나온 후 특검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사례가 거론되기도 한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대선 이틀 전인 12월1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상대 당(대통합민주신당)이 요구하는 특검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 수사 결과 무혐의가 났지만, 여론이 계속 들끓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여당에선 향후 검찰 수사 상황과 대선까지의 타임라인 등을 살피며 특검에 대한 가부(可否)를 조심스럽게 판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특검을 원하는 여론이 계속 커지거나 대선 경쟁에서 수세에 몰릴 경우, 특검 카드를 꺼내는 시기는 당겨질 가능성도 남아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월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는 문재인 대통 령에게 대장동 특검을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출범까지 구만리, 실효성도 의문

특검 도입을 줄곧 주장하고 있는 야당 역시 고민은 있다. 야당이 자력으로 아무것도 관철해낼 수 없다는 고질적인 답답함이 가장 크다. 시사저널과 통화한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과 관계자는 특검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결국 “모든 건 여당에 달렸다”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장외로 나가 여론전을 펼치는 것은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다.

시간에 대한 조바심도 야당의 몫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특검 합의는 그 어떤 특검 때보다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검이 출범해 대선 전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려면 속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유상범 의원은 통화에서 “여당은 검찰 수사 결과부터 지켜본 후에 특검 얘길 꺼내라 하는데, 이미 검찰 수사는 지켜볼 만큼 지켜본 것 아닌가. 부실수사 논란까지 나오는 상황인데 지금 특검을 논의해야지, 언제 하겠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검찰이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들을 구속해 수사하고 있는 지금, 특검 논의가 시작되면 오히려 수사 흐름에 혼선을 주고 시간만 허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김기현 원내대표를 비롯해 야당에선 비교적 준비 기간이 짧은 ‘상설특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상설특검은 개별적 특검법을 만드는 과정을 건너뛰고 곧장 특검을 가동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이를 통해 이르면 최소 8일 내 특검이 임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국회 의결 또는 법무부 장관의 결정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쉽지 않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상설특검적 역할을 하라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어놓은 것 아닌가. 검찰 수사가 신뢰를 잃었을 때, 상설특검처럼 수사를 맡기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공수처”라며 야당의 상설특검 주장을 일축했다.

 

‘야권 인사 연루’ 논쟁 포함돼 전선 흐려질 수도

무엇보다 특검이 어렵사리 출범한다 하더라도 이재명 후보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을 거란 관측이 많다. 관건은 결국 이 후보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느냐인데, 입증이 까다로울 것이란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도 “이 후보가 고의로 성남시에 손해를 입히고 사익을 추구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특검에서도 대선 구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결과를 밝혀내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더구나 ‘여당 대선후보’에 대한 배임 입증은 더더욱 확실해야 한다는 부담이 특검 내에서도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 후보를 몰아세우려는 야당의 계획과 달리, 국민의힘 연루가 논쟁에 포함되면서 자칫 전선이 흐릿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특검에 ‘올인’하고 있는 지금 야당의 전략이 다소 위험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기에서도 2007년 대선 당시 BBK 특검 사례가 언급된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은 경쟁자 이명박 후보에 대해 대선 막판까지 BBK 특검만 물고 늘어지며 이 후보의 도덕성을 공격했다. 그 외의 이슈나 비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내진 못했고, 대선 승부를 흔들지 못했다.

이번 대선후보들 역시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나 눈높이가 높지 않다. 따라서 대장동 특검의 ‘약발’ 또한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장동 건은 국민이 가장 분노하는 부동산 관련 건이며, 본인이 설계자라고 했던 이재명 후보의 행정 능력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2007년 때와는 다르게 여야 간 승부가 팽팽하다는 것도 야당이 기대하는 부분이다. 끊임없이 여론전을 펼치며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외치는 행보가 현재 야당의 유일책이자 최선책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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