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요소수 부족, 중국만 바라봐야 하는 ‘벌거벗은 대한민국’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6 07:3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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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제철·조선 등 국내 전 산업계 초긴장…요소수 부족 사태에 물류대란 현실화 우려

요소수 때문에 전국이 난리다. 경유차는 요소수를 넣어야 운행할 수 있다. 차량 연료도 아닌 요소수가 화물차를 멈추게 하는 이유가 뭘까? ‘유로6 협약’에 따라 2015년 이후 생산된 216만6000여 대의 경유차에는 SCR(질소산화물 저감장치)이 붙어있다. SCR이 장착된 경유차는 요소수가 없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국내 요소수 재고로는 한 달도 버티기 힘들다. 우리나라에 요소수 원료의 90% 이상을 공급하는 중국이 수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전국 주요 항만에서는 벌써 물류대란이 시작됐다. 요소수를 쓰는 산업계도 비상사태다.

화물운송업계에 따르면, 부산항을 오가는 트럭 1만2000여 대 중 60%인 7200여 대는 요소수를 넣어야 운행이 가능한 경유차다. 시사저널이 11월8일 부산 신항과 북항 인근 주유소를 둘러본 결과 대부분 요소수가 바닥난 상태였다. 화물연대 컨테이너 위탁본부 관계자는 “요소수를 구하지 못한 화물차들은 세워놔야 하는 암담한 현실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항만업계는 요소수 부족 사태가 1주일 이상 지속되면 부산항이 멈춰서는 사상 초유의 ‘화물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천항·울산항·광양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정부가 하루빨리 요소수 수급에 나서지 않으면 수출입 물동량이 묶여 우리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항·울산항 인근 주유소들이 요소수 품절을 알리는 문구를 붙여놓고 있다.ⓒ
부산항·울산항 인근 주유소들이 요소수 품절을 알리는 문구를 붙여놓고 있다.ⓒ시사저널 박치현

조선업계 “모처럼 활기 되찾았는데…”

자동차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 5개 완성차 업체가 올해 생산한 자동차 257만6000여 대 중 25.4%(65만4000여 대)는 SCR이 부착된 경유차로 요소수를 넣어야 국내 출고와 수출이 가능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금 가지고 있는 요소수로 연말까지는 근근이 버틸 수 있지만, 요소수를 추가로 확보하지 못하면 내년부터는 경유차를 생산해도 팔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걱정했다. 부품 이송이나 차량 탁송 차량도 요소수를 구하지 못하면 운행을 중단해야 한다. 현대차 협력업체들도 좌불안석이다. 모기업의 요소수 부족 여파가 미칠 파장을 우려해서다. 기아차와 한국GM도 요소수 확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공급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제철공장도 질소산화물을 제거하는 데 쓰기 위해 요소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포스코는 현재 가지고 있는 요소수 재고로는 한 달을 버티기 힘들다. 다음 달까지 요소수 공급처를 찾지 못하면 공장 가동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한국전력도 화력발전에 필요한 요소수 재고가 충분치 않아 다각적인 대책을 검토 중이다. 울산석유화학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농도를 낮추기 위해 요소수를 사용하는데, 11월 말에는 비축량이 바닥나기 때문이다.

조선업계도 걱정이 태산이다. 선박 구조물이나 각종 기자재를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들이 요소수 부족으로 인해 운행이 중단되면서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대표 A씨는 “원자재를 운반할 트럭 구하기가 계속 힘들어지고 있는데, 물류대란의 신호탄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울산화물연대 관계자는 “대형 화물차는 많은 양의 요소수를 넣어야 하는데, 향후 1~2주가 운행 마지노선이 될 것 같다”고 예측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자재를 운반하는 화물차가 멈춰서면 선박 건조에 막대한 차질이 발생한다”며 “요소수 대란이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소수 부족 사태가 전 산업계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 대구상공회의소가 대구·경북 지역 262개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곳 중 8곳이 요소수 수급 불안으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수업뿐 아니라 건설업, 유통서비스업 등 전 업종에서 요소수 피해를 호소했다.

정부도 요소수 확보 총력전에 돌입했다. 러시아와 중동 등 다른 국가에서 안정적인 요소 공급처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요소수 없이도 질소산화물을 분해하는 대체 촉매제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중국이 요소 시장 문을 열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속수무책인 셈이다. 물류업계와 산업계는 ‘요소수 골든타임’을 한 달 정도로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 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요소수를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것”이라며 “중국에만 의존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달리 이웃 나라들은 잠잠하다. 김 교수는 “일본·유럽 등은 요소를 자체 생산하거나 수입 다변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이라도 수입선 다변화 통해 재고 물량 확보해야”

현재 국내에서 요소를 생산하는 업체는 한 곳도 없다. 롯데정밀화학은 2011년부터 요소 생산을 중단했다. 기술 문제가 아니라 값싼 중국산을 손쉽게 구해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게 화근이 됐다. 롯데정밀화학이 중국에서 요소를 들여와 생산하는 요소수는 연간 10만8000여 톤, 국내 유통량(21만7000여 톤)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롯데의 요소 재고량은 11월 말에 전량 소진된다. 중국에서 요소를 주지 않으면 12월부터는 요소수를 생산할 수 없게 된다. 롯데가 요소 생산을 포기하고 중국에 의존한 탓이다.

중국산 요소로 요소수를 만드는 국내 업체는 롯데정밀화학·KG케미칼·휴켐스·아톤산업 등이다. 이들 업체 역시 중국에서 원료를 주지 않으면 요소수를 만들 수 없다. 중국은 석탄에서 요소를 추출한다. 그런데 중국이 10월11일부터 요소 수출을 갑자기 중단했다. 자국 내 석탄 부족 때문이다. 최근 발전용 석탄도 모자라는 상황에 호주와의 ‘석탄 분쟁’까지 겹쳐 요소 생산이 크게 위축됐고, 수출제한 조치로 이어지면서 한국이 직격탄을 맞았다. 전문가들은 ‘요소수 대란의 비상시국’에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중국이 요소 수출을 재개하도록 외교력을 발휘하는 방법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지적한다. 강영훈 울산발전연구원 박사는 “지금이라도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재고 물량을 확보하고, 향후 안정적이고 근본적인 공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요소수를 구하지 못하면 물류대란은 불가피하고, 산업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될 조짐이다. 중국도 요소수가 부족한데 한국에 수출을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로선 중국이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는 방법뿐이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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