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고민, ‘불안감’ 줄였더니 ‘합니다’ 사라져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7 15:00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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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보유세·재난지원금 후퇴, ‘사이다’ 매력 반감
이재명 ‘중도 공략’, 이해찬-유시민 ‘지지층 결집’ 역할 분담

유능과 도덕성, 그리고 겸손한 태도.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지방선거 압승 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가 받았던 높은 지지는 한편으로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두려운 것”이라면서 이 세 가지를 참모들에게 당부했다. 당부는 공염불이 됐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유능’이 무너졌다. 조국 사태는 내로남불 논란을 가져오며 ‘도덕성’을 뒤흔들었다. 무너지고 흔들리는 두 축을 즉각 시정하지 않고, 강성 지지층만을 바라보며 ‘우린 옳다’는 자세를 견지하자 ‘오만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렇게 지금의 55대 35(정권교체 대 정권재창출 여론조사 수치)라는 대선 구도가 형성됐다.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와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핵심 그룹은 이런 상황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11월2일 선대위 공식 출범 이후 무너지고 흔들린 세 축을 복원하는 전략을 짰다. ‘임기 내 250만 호 공급’이라는 부동산 정책, 조국 사태에 대한 연이은 사과, “나는 문재인이 아니다”는 발언 등은 그런 전략적 판단의 결과였다.  

여기에 하나의 승부수가 얹어졌다. 중도 확장을 위해선 이 후보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재명은 합니다’의 속도 조절론 카드가 나온 것이다.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핵심 공약 후퇴는 이런 맥락에서 결정됐다. 최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적 유예 카드를 꺼낸 것도 마찬가지다. 공세에는 “국민이 반대하면 고집하지 않겠다” “(정치인 주장이) 국민의 뜻을 넘어서는 건 독재이자 폭압”이란 반대 논리를 세웠다. ‘국민의 뜻’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국민 요구에 귀를 열고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실용적 리더십을 부각시키겠다는 뜻으로, 문재인 리더십에 대한 우회적 비판도 내포하고 있다. 이 후보와 핵심 그룹의 집단적 판단이자 전략이었다. 

실제 효과는 있었다. 당내 경선 이후 ‘역(逆)컨벤션 효과’라는 초유의 지지율 역주행 흐름이 멈췄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선대위 구성 문제와 부인 김건희씨 리스크로 실점을 거듭한 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지지율은 다시금 초박빙 추세로 접어들었다. 민주당 선대위 내부에서는 본선 맞춤형 전략이 상당 부분 먹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회사진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 등 핵심 공약에서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신뢰’ ‘기반’ ‘방향’ 상실이라는 복병 만나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①신뢰(이재명은 ‘안’ 합니다) ②기반(흔들리는 집토끼) ③방향(사라진 ‘이재명다움’) 상실로 요약되는 세 가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신뢰 상실→기반 상실→방향 상실’은 흐름이 연결돼 있다. 잦은 정책 변경과 후퇴가 당초 의도했던 ‘유연성’이 아닌 ‘신뢰 상실’로 읽히자 전통적 지지 세력이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이 후보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아직 여론조사 지지율에선 뚜렷이 이런 현상이 표출되고 있지 않지만, 애써 중도층에서 끌어올린 점수를 까먹지는 않을까 이 후보 측은 고심이 깊다. 

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다. 당내에서는 잦은 말 바꾸기는 안정감과 신뢰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말 바꾸기’라는 야당의 공세를 언론이 보다 적극적으로 인용하는 모양새도 나타났다. 그러자 전통적 지지층 사이에서는 이 후보 측의 ‘스피커’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표출됐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이준석 당 대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등 여러 스피커가 동시 가동되는데 이 후보는 혼자 뛰고 있다는 지적이다. 불안이 불만으로 표출된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신뢰’라는 물음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점이다. 중도층 공략을 위해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전략을 구사해 지지율 상승을 가져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방식이 ‘이재명은 합니다’의 후퇴로 나타나면서 본연의 강점까지 같이 지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초선의원은 “본선에서 이 후보의 우클릭은 필수적인 행보였다”면서도 “지지층 사이에서 ‘그래서 이재명이 하겠다는 게 뭐야’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질문은 ‘구도’에서 지고 ‘인물’에서 이기려는 현 선거 상황에서 아주 좋지 않은 신호”라고 토로했다. 

민주당 선대위도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있다. 이 후보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11월21일 선대위 혁신 이후 중도 확장을 위해 달려왔는데, 그 과정에서 놓친 부분들을 점검하고 있다. 무엇보다 호남 지지율을 엄중히 보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 영향도 있지만, 산토끼 잡으러 갔다가 집토끼를 놓치지는 않을까 고민이 많다.”

‘몽골 기병’식 슬림형 선대위로 재편한 이 후보 측은 즉각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였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민주당 전통 지지층에 두 사람만큼 소구력 있는 스피커는 찾기 어렵다. 이 후보가 중도층 표심 공략에 중점을 둘 때, ‘이해찬-유시민’ 두 스피커는 집토끼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공중전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이 후보 측은 오히려 극적 효과가 더 나타날 여지가 생긴 만큼 이낙연 전 대표도 연내에 전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성심성의를 다한다는 입장이다.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김관영·채이배로 호남 묶고 박영선으로 친문 잡고

이 후보는 인선에서도 속도를 내며 위기론 진화에 나섰다. 우선 2016년 20대 총선 때 국민의당 후보로 당선됐던 김관영·채이배 전 의원을 선대위에 합류시켰다. 모두 호남 출신인 두 전직 의원은 중도 성향을 가진 정책통 인사로 평가된다. 호남과 정책 등에서 바로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사라 이 후보 측은 오래 공을 들여왔다. 미국에 머물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선대위에 합류시킨다고 조기에 발표하기도 했다. 친문 지지층을 잡는 것은 물론 최근 여권 내 위기감 고조에 따른 총결집 차원으로 해석된다.

이 후보 측은 코로나19 대응으로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전략도 내놓고 있다. 방역과 보상 모두에서 ‘즉각적인 거리 두기 강화’와 ‘선(先)보상 선지원’ 요구 등의 카드로 정부와 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이슈’에 올라타 상대적 우위의 ‘인물론’으로 불리한 ‘구도’를 흔들겠다는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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