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인물’은 ‘MZ세대’였다. MZ세대는 1980~1994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0년대 초 사이 태어난 X세대를 통칭한 세대를 의미한다. 분야별 올해의 인물도 역시 MZ세대가 관통했다. 올해의 정치 인물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경제 인물에 선정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역시 50대로 MZ세대는 아니지만 기존 재벌가 총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젊은 소통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받았다. IT·의과학 인물의 가상인간 로지(22세 여성), 연예 인물의 BTS, 스포츠 인물의 김연경 또한 MZ세대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스타들이다. 이 밖에 사회 인물은 코로나 의료진, 문화 인물은 《오징어게임》, 국제 인물은 일론 머스크가 각각 선정됐다.
매년 송년호에서 발표되는 시사저널 올해의 인물은 세 번의 절차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먼저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이 지난 한 해 각 분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또는 사건·현상 등)을 추천한다. 기자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후보군을 만든 후 시사저널 홈페이지를 방문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다시 최종 선정 작업에 돌입한다.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제1야당 대표 이준석의 등장은 한국 정치에 큰 파란이었다. 무엇보다 MZ 표심의 영향력이 증명됐다. 2030의 강력한 지지가 이준석 대표를 탄생시켰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그런데 MZ가 이준석을 부상시킨 걸까, 이준석이 MZ를 부상시킨 걸까. MZ세대가 흐름을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대표 선출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뿐 아니라 40대 이상의 지지세도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심이 70%나 반영된 선거였다. 2030의 흐름에 힘입어 그는 대구·경북, 60대 이상이 대부분인 전통적 보수 지지층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MZ세대 당사자란 점이다. 그는 백팩을 메고,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는 ‘준스톤’이란 별명으로 통한다. 이준석은 MZ 표심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준석은 ‘MZ식 정치’를 증명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올해의 정치 인물로 1985년생 이준석 대표를 뽑았다. 전체 올해의 인물이 MZ세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021년 정치권은 ‘이준석 현상’의 여파가 대단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 6월 이후, 여야가 대선후보를 선출한 이후로도 여전히 그는 정치권 뉴스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시사저널 ‘2021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 중 ‘야권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도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후보를 25.9%포인트 차로 앞서며 1위에 오른 바 있다.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제1야당 대표
서울과학고, 미국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였던 이 대표는 26세이던 2011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영입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당시 많은 사람의 시선에 그는 잠시 나타났다 사라질 소모품에 불과했다. 어린 그에게 정치판은 살벌했을 터였다. 실제 많은 정치인이 그를 ‘어리다’고 무시한 사례도 있다. 그는 끈질겼다. 자신의 고향 상계동이 포함된 서울 노원 병에 계속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10년간 세 번 출마해 모두 낙선했지만, 그는 10년 전부터 이미 MZ식 정치를 하며 2021년 대표 당선의 발판을 다졌다. 전동킥보드를 타고 방송 등 일정을 부지런히 다녔고, SNS를 놓지 않았다. 2019년엔 택시기사 면허를 취득해 실제 주 6일 하루 12시간씩 택시운전을 하기도 했다. 타다 등 공유경제의 등장으로 갈등이 격화하던 택시 산업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그가 지난 5월 대뜸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출마한 이유는 딱 하나다. 우리 당이 수십 년간 해온 대선 전략을 대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지역 구도가 아니라 세대 구도로 대선판을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판이 아니라 그는 자신의 선거에서부터 낡은 문법을 지양했다. 선거 캠프는 후보와 실무진을 포함해 단 3명으로 꾸려졌다. 그는 ‘지상전’보다는 ‘고공전’을 택했다. 방송에 나가고, 온라인과 SNS로 메시지를 전했다. 메시지 내용에선 ‘금기’를 깼다. 전통적 보수 지지층이 대부분인 대구·경북을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고 선언했다.
대표가 되고 난 이후에도 그의 파격은 계속됐다. 첫 출근 때는 관용차 대신 공유 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출근했다. 뿐만 아니라 전기차를 직접 운전해 출퇴근했다. 역시 방송과 인터뷰, SNS도 놓지 않았다. 기존 대표들은 공식 일정에서만 메시지를 남기고, 대변인 메시지로 대체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현안마다 자신의 입과 SNS를 통해 메시지를 직접 남겼다. 이 대표의 파격적인 당내 개혁 중 하나는 공직 후보 출마자에 대한 기본 소양을 평가하는 공천자격시험 도입이다. 이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에 이를 도입해 능력 미달 후보를 미리 걸러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이 대표는 토론 배틀 ‘나는 국대(국민의힘 대변인)다’를 실시해 대변인단을 뽑았다. 이를 통해 선발된 27세 임승호 대변인, 35세 신인규 상근부대변인은 국민의힘의 ‘레드팀’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바른미래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되면 대한민국의 젊은 정치의 족쇄가 풀린다”고 자신했다. 실제 이 대표 선출 이후 정치권에선 여야 할 것 없이 청년 정치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가 정말 젊은 정치의 족쇄를 푼 셈이다.
국민의힘의 대선 경선이 흥행한 것을 두고 이 대표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란 평가도 있다. 그는 당 대표가 되기 전부터 ‘경선 버스론’을 주장했다. 경선 버스를 일단 출발시키고 당 밖에 있던 주자들(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이 적어도 2021년 8월까지는 들어와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일단 경선 버스를 출발시켰고, 본선 단일화설 등이 돌았던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 등은 실제로 이 대표의 주장대로 지난 8월 전 입당해 함께 경선을 치렀다.
‘너무 가볍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한다’ 비판도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이 대표식 정치의 특징은 기동성·일관성·선명성·파격성 등으로 점철된다. 이러한 특징들이 우려와 논란을 낳는 것도 사실이다. 능력주의, 반(反)페미니즘 등의 꼬리표가 이 대표에게 따라붙는다. 대선 과정에서도 그의 파격적인 행보가 대선후보보다 먼저 뉴스에 오른다. 그는 지난 11월말 SNS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만 남긴 채 잠적했다. 윤석열 후보 측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끄고 지역을 돌다가 몇몇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당 대표가 SNS에 글을 남기고 휴대전화를 끄는 전에 없던 장면은 국민적 관심사로 올랐다. 며칠 만에 울산에서 윤 후보와 만나 화해는 물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합류까지 이뤄졌다. 일각에선 ‘이준석의 큰그림’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당 대표가 너무 가볍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장 최근에도 이 대표는 조수진 전 선대위 공보단장과의 충돌을 계기로 윤핵관(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을 강력히 문제 삼으며 상임선대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당 대표가 선대위에서 빠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그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선 승리는 비관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선거의 큰 책임을 지니고 있는 당 대표의 파격적인 보이콧이 앞으로 이 대표의 정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 대표는 올해의 정치 인물로 선정된 것에 대해 시사저널에 “지금까지 일관되게 해온 대로 노력할 것이며, 후회하지 않는 정치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예측이 안 된다’ ‘가볍게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지적에 대해선 “많은 변화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지금까지 보수정당이 꾸준하게 보여왔던 노쇠화의 과정에 조류를 바꿀 만한 파급이 있기 때문에 여러 이변이 있는 것”이라며 “파격을 두려워하면 변화는 오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