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이럴 거면 차라리 폐지해야 [쓴소리 곧은 소리]
  • 김태규 변호사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5 10:00
  • 호수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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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비판적 언론인·정치인·시민단체 인사 무차별 통신조회
이런 것이 민간인 사찰…과거엔 국정원장 구속된 적도 있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처장 김진욱)가 범죄 피의자인 이성윤 고검장을 소환하면서 관용차를 보낸 CCTV 영상을 보도한 TV조선 기자들, 기자의 가족들, 기자와 통화한 민간 외교안보연구소 연구위원 등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채널A,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시사저널 등 수많은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 수십 명의 통화내역도 확보했다. 국민의힘 장능인 상임선대위 청년보좌역, 김경율 회계사, 민변의 김준우 전 사무차장, 윤석열 후보 캠프 국회의원 7명 등 야당 정치인과 시민단체 전문직을 상대로도 통신 침해를 감행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2월3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영장 없는 통신비밀 침해’ 위헌적…최소한에 그쳐야

언론인이 가장 많지만, 정치인과 민간인도 포함되어 있는 등 대상이 무차별적이다. 권력에 비판적인 성향의 언론, 야당 정치인, 공수처의 문제점을 지적한 인사들이 주된 대상이어서 편향성도 뚜렷하다. 적법한 절차를 밟았고, 수사상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정당한 조치였다고 변명하지만 국민의 가슴에 스며들 리가 없다.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해서 그냥 사찰이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대통령부터 3급 이상 고위 공무원까지인데, 통신자료가 조회된 이들 중 그 범위에 포함될 만한 사람은 야당 국회의원 정도에 그친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가 아니라도 수사 대상자와 접촉한 사람이라 조회했다고 핑계를 대겠지만, 그래도 기자의 가족까지 조회한 것은 설명이 안 된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전기통신사업자에 대해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등이 재판, 수사 등을 위해 통신자료를 요청하면 따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보 주체의 동의가 없다는 측면에서 강제수사인데도 영장 없이 자료조회가 가능해 특이하다. 이런 사정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 위헌 소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법률에 근거가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의 태도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수사란 본래 임의수사가 원칙이다. 강제수사는 피조사자의 인권침해를 수반하므로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이런 탓에 영장이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강제수사라면 수사기관은 권한 행사에 최대한의 자제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대하는 태도다. 그런 자제 없이 법에 있으니 얼마든지 쓰겠다는 태도는 권력에 취한 망나니짓이 된다. 그것이 정치사찰이다.

공수처는 그 탄생부터 야합의 산물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수처를 설치하겠다는 정권은 그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야당과 협상하기보다 4개의 군소정당에 떡고물을 약속하고 국회법에도 없는 ‘4+1 협의체’라는 것을 만들어 입법을 강행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출생 때부터 여당이 몇몇 군소정당에 뇌물을 주고 설치 허가를 받은 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공수처는 헌법상의 위상도 모호하다. 우리 헌법은 중요 국가기관을 그 규정 안에 모두 담고 있다. 대통령과 4부 요인뿐만 아니라 판사와 검사까지 모두 헌법에 규정된 국가기관들이다. 검사의 경우를 보자. 헌법 제12조와 제16조는 검사가 판사에게 영장을 청구하도록 규정해, 간접적으로 검사라는 국가기관의 존치를 요구하고 있다. 헌법 제89조 제16호는 검찰총장의 임명에 관해 규정함으로써 검사의 수장이 검찰총장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들을 유기적으로 모아보면 헌법은 검사들의 집합체인 검찰을 두고 그들의 수장을 검찰총장으로 하도록 주문한다. 그런데 공수처가 등장하면서 공수처 소속 검사라는 해괴한 국가기관이 생겨났다. 공수처에 영장 청구권을 주려니 헌법 제12조와 16조에 맞추어 억지로 공수처의 일부 구성원을 검사로 임명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검찰총장의 휘하가 아닌 검사가 등장한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이면, 어떤 수사기관이든 자체로 검사를 임명하는 입법만 하면 기소권과 영장 청구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헌법이 예상한 검사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혹자는 헌법재판소가 공수처법을 합헌으로 결정했으니, 더는 위헌 논란이 의미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인적 구성을 크게 신뢰하기는 어렵다.

국민의힘 유상범 법률지원단장(가운데)과 정희용 의원(왼쪽), 권오현 법률자문위원이 12월22일 서울 대검찰청 민원실에 ‘야당 국회의원 통신자료 조회 관련 김진욱 공수처장, 최석규 공수처 부장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진욱 처장의 “오로지 국민 편만” 누가 믿겠나

탄생의 동기도 불순하다.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조금의 지각만 갖추면 그런 명분보다는 정권에 불편한 공직자는 길들이고, 우호적인 공직자는 숨겨주기 위해 설치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공직 사회가 아주 청렴하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래도 중국의 국가감찰위원회를 닮은 기관이 필요할 정도라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김대중 정권 당시 신건 국정원장은 언론인, 정치인, 공직자, 민간인 등 각계 인사 1800여 명의 전화통화를 무작위로 도청한 혐의로 구속되어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아마 정권은 그렇게 충실한 심복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경찰과 검찰이 있고, 수시로 특검법이 제정되며, 필요하면 상설특검도 임명할 수 있는 나라에서 공수처라는 군더더기를 더하기 위해 그리 노력한 것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취임사에서 ‘여당 편도, 야당 편도 아닌 오로지 국민 편만 들겠다’고 말할 때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그 탄생 과정과 헌법상의 위상 그리고 설치의 동기를 고려하면 그렇게 믿음을 주기가 쉽지 않다.

공수처가 출범한 후 약 1년 동안 한 일을 떠올려보자. 선별한 주된 수사 대상이 친여 성향 시민단체가 윤석열 후보를 대상으로 고발한 사건들이다. ‘윤수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중에서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가장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영장 청구만 3차례 기각되면서 공수처 차장이 스스로 수사의 아마추어임을 자백했다. 최근에는 무차별 통신조회로 많은 사람을 사찰한 행태가 드러났다. 특히 언론사에 대한 사찰이 심해 기자들을 취재를 위한 통화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으로 내몰면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해를 초래했다. 고위 공직자의 비위는 외면하면서 국민의 기본권만 때려잡은 형국이다.

공수처를 유지할 합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저물어가는 정권의 오래된 욕심만이 유일한 버팀목이다. 하자로 탄생하고 문제만 잔뜩 만든 공수처가 자신을 잉태한 정권과 함께 폐기된다고 해서 하등 어색할 게 없다. 공수처를 멈출 때가 되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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