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재개했다지만…돈 꾸기까지 여전히 ‘가시밭길’
  • 유길연 시사저널e. 기자 (gilyeonyoo@sisajournal-e.com)
  • 승인 2022.01.06 10:00
  • 호수 168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국 “월 단위로 대출 총량 감독하겠다”…월초마다 ‘패닉 대출’ 반복 우려

가계대출 총량관리 한도가 올해 ‘리셋’되면서 대출영업도 재개됐지만 여전히 대출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요는 많은데 대출 총량 한도는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월별 총량 규제가 시작되는 점도 ‘패닉 대출 현상 재발’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이와 함께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와 기준금리 추가 인상으로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대출상품 유형별 금리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등 꼼꼼한 대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2021년 12월6일 서울 시내 한 재래시장에 대출 전단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수요 많은데 총량은 ‘제자리걸음’

주요 시중은행은 이미 대출금리를 낮추고 중단했던 대출상품 판매를 다시 시작한 상태다. 우리은행은 1월3일부터 10개 신용대출과 4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의 우대금리를 최대 0.6%포인트 인상할 예정이다. 우대금리가 높아지면 대출금리는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NH농협은행도 지난해 8월 이후 중단했던 주담대 상품을 올해부터 다시 판매하고, SC제일은행은 판매를 중단했던 신규 주담대를 재개하기 위해 지난 12월20일부터 사전 신청을 받고 있다.

인터넷은행 중에선 지난해 출범 9일 만에 대출을 중단했던 토스뱅크가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신용대출을 연 3% 금리로 최대 2억7000만원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카카오뱅크도 올해 초 첫 100%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올해도 대출은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를 지난해 5~6%에서 올해 4~5%로 줄였다. 은행의 대출 총량 한도도 비슷하거나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출 수요는 여전히 많다. 한국은행은 지난 12월 ‘통화신용정책보고’를 통해 “주택 가격의 높은 오름세가 지속되고 가계대출 수요도 여전히 큰 상황”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당국이 새해부터 기간별 총량 규제 시행을 예고한 점도 문제다. 현재 당국은 연 단위로 각 은행의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대규모 대출 수요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한 해가 끝나기도 전에 은행 한도가 동나는 문제를 일으켰다. 이에 당국은 새해부터 은행으로부터 월별 대출 실행계획을 받아 관리할 계획이다.

2021년 11월23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의 모습이 대출 규제로 한산하게 느껴진다.ⓒ연합뉴스

DSR도 강화…청년·고령층 추가 대출 ‘막막’

당국이 월 단위로 은행 가계대출 관리에 들어가면 매달 초 대출 고객이 크게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대출 한도가 줄어 일시적으로 선착순 대출 사태가 종종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새해에는 매달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대출을 받지 못하면 다음 달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주담대는 아직 100% 비대면으로 대출이 이뤄지는 비중이 낮다. 월초에 은행 지점에 고객이 몰려 장사진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당국이 가계대출 조이기에 들어가자 고객들이 갑자기 은행으로 몰렸다”면서 “이를 고려하면 올해 대출 총량 한도가 새로 시작되는 매월 초에 대출 신청이 집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더 강화된다.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의 40% 이내로 제한하는 DSR 규제는 이달부터 기존 대출과 신규 대출의 합이 2억원을 초과하는 차주에게 적용된다. 오는 7월부터는 총대출액 1억원 초과 차주로 확대된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개인별 DSR 40% 규제 적용을 시행했지만, 대상은 조정대상지역 등 부동산 규제 지역의 시가 6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을 받거나 1억원 초과 신용대출을 받은 차주에게만 해당됐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총대출액 기준으로 규제가 적용된다.

예컨대 연봉이 4000만원인 A씨가 조정대상지역의 시세 6억원짜리 아파를 갖고 있으면, 이 차주는 작년까지 주택담보대출(주담대)로 3억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담보인정비율(LTV) 50%만 적용받기 때문이다. A씨가 연 3.5% 이자율의 주담대를 360개월(30년)간 원리금 균등 상환하기로 했다면 연간 상환액은 1608만원이다. A씨는 신용대출을 추가로 받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A씨는 추가 신용대출이 불가능하다. 총대출 규모가 2억원이 넘기에 DSR 40%가 적용되는데, 이미 주담대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한 해 소득의 40%(1600만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다만 DSR 40%를 초과했다고 해서 기존 대출을 상환할 필요는 없다.

금융위원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1억원 넘게 대출을 받은 차주는 593만 명에 이른다. 규제가 확대되는 올해 7월까지 전체 차주 수에 큰 변동이 없다면 약 600만 명이 강화된 DSR을 적용받는 셈이다. 더구나 DSR 적용 대상 가운데 20.9%(124만 명)가 20대 이하 청년 또는 60대 이상 고령층으로 나타났다. 이 연령층은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기 때문에 추가 대출이 아예 막힐 가능성이 있다.

2021년 11월25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외벽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연합뉴스

중·저신용자는 대출받기 더 수월해질듯

강화된 규제에 맞춰 대출을 받으려 해도 금리 상승세는 여전히 대출 문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작년 하반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주담대 금리는 크게 올랐다. 지난 12월17일 기준으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3.84~5.06%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말 2.78~4.53%에 비하면 금리 하단이 약 1%포인트 급등했다. 한은은 올해에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상향 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11월 기준금리 인상이 결정된 이후 “(이번 금리 인상은) 긴축이 아닌 정상화”라며 “위기 시 이례적으로 낮췄던 금리 수준은 경기가 개선되면 그에 맞춰 조정하는 게 합당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세 번의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점도 금리 상승 가능성을 키우는 대목이다. 금융권에선 한은이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더 올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만약 기준금리 등 정책금리 수준이 미국과 같거나 높더라도 차이가 크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 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 문턱이 높아졌지만 신용평가 점수(KCB) 820점 이하 중·저신용자들은 대출받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 당국이 올해 은행 가계대출 총량 한도에 중·저신용자 대출은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고강도 대출 규제 속에서 서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주요 시중은행은 올해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당국의 규제로 이전처럼 고신용자 위주로 가계대출 자산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다. 인터넷은행도 올해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중·저신용자 대출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각 은행은 부실 규모 증가를 피하면서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기 위해 신용평가모델(CSS) 고도화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볼 때 시중은행이 중·저신용자 대출을 대폭 늘리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당국이 이 대출을 강조한 만큼 중·저신용자 가운데 우량차주들을 선별해 대출을 제공하는 데 이전보다 더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올해 대출 전략 더 세밀하게 짜야”

올해도 은행권 대출 문턱이 여전히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출 전략을 더 꼼꼼하게 수립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우선 올해 3월 대통령선거가 예고돼 있는 만큼 ‘규제 리스크’를 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각 후보의 부동산·대출 관련 정책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행 규제가 시행될 것이 확실한 올해 1~2월 대출을 받는 것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지금부터 필요한 자금 규모와 강화된 규제 속에서 대출 가능액을 정확히 파악하고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DSR 규제에서 제외되는 대출상품들도 꼼꼼히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 당국은 분양주택에 대한 중도금 대출, 서민금융상품 등 13가지 대출 상품에 대해 DSR 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일반 주담대는 변동형 금리와 고정금리 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한지 따져봐야 한다. 은행 주담대 변동금리는 시중금리 상승 영향으로 최고 연 5%를 넘어 혼합형(5년 고정금리 후 변동금리 전환) 금리(지난 12월19일 현재 최고 4.91%)를 역전했다. 정성진 KB국민은행 양재PB센터 팀장은 “금리가 크게 오르는 시기에는 변동형 금리가 고정금리를 역전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선 신규 주담대는 고정형으로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리 부담을 낮추기 위해 ‘대출 갈아타기’를 할 경우 새로 바뀐 가계부채 규제 적용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규제 문제 외에도 중도상환해약금 및 대출 신규 시 소모되는 비용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갈아타기로 인해 소모되는 비용이 이자를 아끼는 몫보다 클 수 있다”며 “단순히 금리 때문에 대출 갈아타기를 결정할 경우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