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공공미술 세계에서 ‘유플래닛’이 특별한 이유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3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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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공공미술품 80%가 조각품…‘흉물’ 오명도
공간에 맞는 예술품 설치한 광명 ‘유플래닛’
광명 유플래닛에 설치돼 있는 그래픽 아트 기반의 스트리트 아트 작품 'UNIVERSE'. 한국의 그래픽아티스트 그라플렉스(GRAFFLEX)의 작품이다. ⓒ김지나
광명 유플래닛에 설치돼 있는 그래픽 아트 기반의 스트리트 아트 작품 'UNIVERSE'. 한국의 그래픽아티스트 그라플렉스(GRAFFLEX)의 작품이다. ⓒ김지나

길을 걷다가, 건물 앞을 지나며, 혹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미술작품을 보는 일은 흔한 경험이다. 소위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돼 있는 조각이나 그림들을 하루에 최소 한 번 정도는 마주치지 않을까 한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 공공미술 작품들은 일상 속으로 끊임없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공공미술 작품이 많은 이유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하면서 건축비의 1%를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그러다 1995년부터 건축물 미술작품은 권장이 아닌 의무사항이 됐고, 비교적 최근인 2011년에 와서야 꼭 직접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납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겼다.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브릿지 벽면에 설치된 미디어아트 작품 '옵티컬 레일'. 손미미 작가와 엘리엇 우즈(Elliot Woods) 작가가 2009년 결성한 팀 김치앤칩스의 작품이다. ⓒ김지나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브릿지 벽면에 설치된 미디어아트 작품 '옵티컬 레일'. 손미미 작가와 엘리엇 우즈(Elliot Woods) 작가가 2009년 결성한 팀 김치앤칩스의 작품이다. ⓒ김지나

조각품만 가득한 공공미술 벗어난 유플래닛

공공미술이 설치되기 위해서는 나름 까다로운 심의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서울, 경기도 등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는 조례를 제정해서 미술작품 설치 과정에 필요한 절차들을 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공미술 작품에 대해서 긍정적인 여론은 거의 없었다. 심사를 까다롭게 하면 작가들이 항의했고, 낯설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면 어김없이 흉물 논란이 일었다.

그런 와중에 최근 새로운 방식으로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의 숙제를 푼 사례가 등장했다. 광명역 근처의 ‘유플래닛’이라는 곳이다. ‘미디어&아트밸리’라고 해서 미술관이 하나 생겼나 했더니, 광명의 새로운 랜드마크 복합단지란 화려한 이름을 내세우는 대규모 공간이었다. 호텔과 쇼핑센터, 오피스 시설까지는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15점이나 되는 공공미술 작품에 거대한 미디어파사드, 그리고 여러 가지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까지 갖춘 것은 확실히 새로운 시도라 할 만했다.

우리는 공공미술이라 하면 흔히 야외에 설치된 조각 작품을 떠올리지만, 건축물 미술작품에는 그런 위치나 장르의 규정이 없다. 실내에 들어갈 수도 있고, 벽면을 장식할 수도 있다. 조각, 회화뿐만 아니라 미디어아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건축물 미술작품의 종류는 조각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금 우리나라 전국에는 2만1000여 점의 건축물 미술작품이 있는데, 이 중 조각이 1만6000점이 넘는다.

반면 광명 유플래닛의 미술작품들은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장소와 공간의 형태에 맞게 기획하려 애썼다는 노력이 느껴졌다. 조각품에서부터 벽화, 미디어아트까지 다양한 장르만큼이나 설치장소도 각양각색이었다. 이곳 작품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완성도가 얼마나 좋은지, 가격은 얼마나 적정했는지 속사정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건물 안과 밖, 지상과 옥상, 벽면과 바닥을 넘나들며 불쑥불쑥 작품을 마주치게 되는 경험에는 정말로 그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광명 유플래닛의 건축물 미술작품 프로젝트 '오늘의 날씨'의 과정을 기록한 전시 전경 ⓒ김지나
광명 유플래닛의 건축물 미술작품 프로젝트 '오늘의 날씨'의 과정을 기록한 전시 전경 ⓒ김지나

건축 과정에서부터 예술품 설치 고민

보통 건축물 미술작품은 준공을 겨우 몇 달 남겨둔 시점에서야 계획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조각인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미 거의 다 완성된 공간에서 예술가가 무엇을 얼마나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을까.

광명 유플래닛은 미술작품 설치를 위해 3년간의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프로젝트명은 《오늘의 날씨》다. 우리가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의 장소를 경험하고 공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술감독을 선임하고 미술작품 기획을 전담하는 팀을 출범시켰다. 작품을 설치할 공간, 작가, 주제, 방법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충분했으며 결과적으로 훨씬 다양하고 역동적인 시도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건축물에 ‘문화적 이미지’를 부여하고, 예술가의 창작기회를 확대하며, 일반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그 취지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무감만 남은 현장에서 예술은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건축물에 미술작품을 나중에서야 억지로 더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예술적인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건축 공간이 앞으로도 더 많이 탄생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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