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인터뷰] “차기 대통령이 인구·연금 문제 못 풀면 대한민국호 침몰”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1 10:00
  • 호수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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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②
“李의 ‘보편적 복지’는 결국 포퓰리즘…현 상황에 맞지 않아”
“‘윤핵관’ 논란, 尹이 사람 잘못 쓰고 있다는 방증”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누가 되든 협치는 불가피”

[이종찬 인터뷰] ①「“李는 ‘신뢰’, 尹은 ‘대안’ 부족…‘대한민국 정상화’가 비전 돼야”」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차기 대통령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가 없다. 앞으로의 5년은 분열된 대한민국을 정상 복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숨 가쁘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위기인 인구절벽 문제와 연금 개혁이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미뤄둔 이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호는 침몰한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과 의미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소용돌이쳤던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가로질러온 인물이다. 대전환의 시대적 흐름을 면밀히 읽으면서도 구시대의 낡은 사고와 관행에 휘둘리지 않을 중도적 실용주의자로 통한다. 시사저널은 2022년 신년의 무거운 울림을 전달하기 위해 이종찬 전 원장을 찾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통합’과 ‘갈등 해결’을 강조했다. 이재명·윤석열 두 양강 대선후보를 향해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도 잘 알려진 그는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끝으로 현역 정치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두 후보의 정책과 공약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 후보는 모두 함께 잘사는 대동(大同)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좋은 접근법이자 좋은 메시지입니다. 화합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대장동 논란이 터져 나왔어요. 가난한 이들의 땅을 강제 수용해 화천대유라는 이상한 회사가 엄청난 부를 챙기게 만든 건 대동 사회가 아닙니다. 결국 하나의 선전 구호에 불과했다는 생각입니다.”

기본소득 같은 기본 시리즈 공약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 후보는 ‘보편적 복지’ 철학에 입각한 복지 공약을 많이 내놓았는데,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정책입니다. 전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돈을 풀어 나눠주겠다는 발상인데, 지금은 어려운 사람에게 집중해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하는 게 맞습니다. 결국 포퓰리즘입니다. 국가 지도자가 재정을 튼튼히 하고 자산을 늘리지 않고 포퓰리즘 같은 인기 정책만 생각한다면 남미 아르헨티나의 페론이나 국가부도를 나게 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무엇이 다릅니까. 지금 그 나라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국민을 모두 거지로 만들었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공약은 어떻습니까.

“윤 후보는 자유의 신장을 말했습니다.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규제를 풀어 민간기업을 마음껏 뛰게 해 부를 창출하고 국민경제를 튼튼히 하자는 얘깁니다. 좋은 방향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100% 옳은 것은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신자유주의 함정에 빠져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남미의 칠레 경제를 살리긴 했지만 양극화를 극대화시켰습니다. 분배 문제에 대한 보완 대책이 반드시 필요한데, 아직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합니다. 보완책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두 후보 모두 국회 경력이 없는 ‘0선 후보’로서 당선 이후 약속한 공약 상당수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있습니다. 

“저는 대선을 여러 번 주관해 보고, 관찰도 오래 해왔습니다. 대선후보의 공약을 빌 공(空)자 공약이라고 비판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는데도, 약속한 공약을 과도하게 진행해 국정에 무리를 주는 것도 정상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공약이 기본만 바르다면 세세한 것까지 지키려다가 국사를 그르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상식에 반하는 주장인데요.

“문재인 대통령을 보십시다. 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약속했습니다. 이 공약은 지키지 않고 작은 것만 지키려다 국정을 엉망으로 만들었어요. 이를테면 탈원전,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무리한 주 52시간제 도입 등입니다. 두 후보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공약은 큰 방향성만 지키길 바랍니다. 대선 과정에서 뚜렷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 국민이 선택하게 하면 됩니다. 이 후보는 정부가 주도하는 방향이라면, 윤 후보는 정부보다 민간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더 장려하는 방식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공약의 기본 방향을 뚜렷하게 하고 세세한 정책은 상황에 따라 하면 됩니다. 국민으로서도 그게 더 편안합니다.”

행정 경험이 없는 윤 후보의 경우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쓰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윤 후보 용인술은 어떻게 보십니까.

“기본적인 것에 대한 훈련이 조금 더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사람을 가려내는 것에 대한 훈련이 더 필요합니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라는 말이 왜 자꾸 나오겠어요. 또 ‘나는 대표 말은 듣지 않고 후보 말만 듣겠다’는 식의 발언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나오면 안 됩니다. 이 말을 뒤집어봅시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됐는데 그 아래 있는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국회의원의 지적에 ‘저는 의원 말은 듣지 않고 대통령 말만 듣는다’고 발언한 것과 뭐가 다릅니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나요. 이런 논란이 터져 나오는 것 자체가 사람을 잘못 쓰고 있다는 방증인 것입니다.” 

결국은 소통 문제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같은 편끼리의 소통이 더 중요합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저와 참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당시 제가 집권여당 원내총무였는데, 통과시켜야 할 입법을 위해 친구인 저를 찾아와 긴밀한 소통전을 펼쳤습니다. 큰 가방에 서류를 한 뭉치 들고 와서 제 마음이 움직이게 설득과 조율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렇다고 이분이 대통령 말만 듣지도 않았습니다. 반대해야 할 것은 반대했습니다. 반면 통과시켜야 할 안은 같은 진영에서부터 정말 성실한 소통을 했습니다. 이런 소통이 필요하고, 이런 사람을 써야 합니다. ‘윤핵관’ 같은 논란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그건 사람을 잘못 쓰고, 소통이 부족하다는 이야깁니다.”

윤 후보가 지난 한 달여를 선대위 내분으로 허송세월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보는 저도 답답했습니다. 선대위 전체가 미숙했습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중심으로 지휘체계를 집중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지휘체계는 단출하게, 나머지는 다 쳐내야 합니다. 쳐낸다는 게 ‘집에 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휘체계에 혼선을 주지 말고 개입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전략본부는 단출해야 합니다.”

대선 이후 정계개편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개인적으로 이재명 후보의 정치적 성향은 전통적인 민주당과 결이 다르다고 봅니다. 김대중 노선은 물론 노무현 노선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민주당은 새로운 노선 정립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당의 전면적인 개편이 이뤄져야 합니다. 윤석열의 국민의힘도 개혁적 보수주의 노선으로 가려면 지금 같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엇보다 당선된다면 거대 야당과 협치를 해야 합니다. 경직된 보수주의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정당으로 탈바꿈이 요구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계개편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후보가 당선돼도 정계개편이 뒤따를까요.

“이 후보가 당선되면 제왕적 대통령과 180석의 오만한 민주당이라는 우려가 나올 겁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합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해요. 오만한 정치는 필연코 독재정치를 부르고, 독재정치는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가기 어려울 겁니다. 국민의 요구는 민주주의, 즉 건강한 견제와 균형입니다.”

윤 후보가 당선된다면 180석의 여소야대라는 구도를 해결해야 하는데요. 

“새로운 정부와 국회가 대결 상황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국무총리 인준 과정부터 협치가 불가피합니다. 1987년 12월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여야 4당이 모여 국정을 이끌어갔습니다. 협치를 통해 지금의 찢겨진 여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연합뉴스
1985년 4월3일 동아일보 창간 65주년 기념리셉션에서 이종찬 당시 민자당 원내 총무(오른쪽)가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운데)와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왼쪽에서 두번째)과 대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정치권에서 ‘총리 추천권’을 야당에 넘기는 안이 협치와 연정의 고리로 거론됩니다. 

“저도 직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넘기는 안은 사실상 불가피할 겁니다. 윤 후보가 당선됐는데, 민주당 동의 없이는 총리 인준이 불가능하니까요. 총리 없는 정부가 되는 건데, 총리가 없으면 장관 임명도 할 수 없습니다. ‘서리 총리’ 시대를 열 수도 있지만, 그건 헌법정신에 위배됩니다. 결국 야당의 총리 추천, 연정 등 다양한 협치의 방식이 제시될 겁니다. 이런 방식이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 원리에 더 부합합니다. 특히 지금 같은 갈등 심화 시대에는 절대 권력으로는 갈등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서로 부족한 점을 보충하면서 가야 합니다.”

지금의 거대 여야 정당은 왜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할까요.

“자정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죠.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각성되지 않은 정의는 각성된 불의보다 잔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여야 국회의원들은 모두 공정과 정의를 말하지만,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비겁하고, 굉장히 잔인합니다. 구호만 외치니 누가 믿겠어요.” 

일각에선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치보복을 할 것이란 우려를 제기합니다.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직접 윤 후보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본인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없이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탄압한 대통령과 세력을 용서하면서까지 통합을 이뤄낸 모습을 보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고 본인도 그런 정신이 이어지게 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히 법을 어긴 자를 내버려 두는 것도 사회 정의에 어긋나지만, 보복적 의미에서 정치보복을 자행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으로 봅니다.”

권력을 가져도 지금의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검사 윤석열’은 윤 후보의 가장 굵직한 경력입니다. 

“윤 후보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을 너무 심하게 고난으로 몰아 정치가 왜곡됐다는 취지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고 정치보복을 한다? 보복을 한다면 지금까지 쌓았던 모든 게 허물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건강이 무척 안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옥중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엄청난 일이 생기니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한명숙 전 총리 복권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가석방을 함께 해 안 받아도 될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한명숙과 이석기를 구하기 위해 박근혜 사면을 끼워넣었다’는 시중의 비판이죠. 모처럼 국민 통합과 화합 분위기를 낼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한 전 총리 복권이 그리 급한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순차적으로 진행하면 될 일인데, 왜 그리 균형감각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서투르죠. 그러니 선거에 개입한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곧 새로운 5년이 시작됩니다. 다음 대통령은 그 5년간 무슨 기념비적 업적을 남기려고 큰 판을 만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5년은 분열하고 찢겨진 대한민국을 정상적으로 복원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5년이 숨 가쁩니다. 판을 다시 깔아야 합니다. 그 위에 건전한 야당과 여당이 경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인구 문제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제 대한민국호에는 사람이 사라집니다. 지금 이 문제를 정말 심도 있게 고민하는 지도자가 있나요. 연금 개혁도 누구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안 합니다. 위기가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실 차기 대통령에게 새로운 비전은 필요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상화’가 비전입니다. 지금 모두가 알고 있는, 미뤄둔 이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호는 침몰합니다. 차기 대통령은 정말 겸손한 자세로, 겸손한 태도로 국민과 함께 흐트러진 대한민국호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 이종찬은 누구인가?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경기고를 거쳐 육사(16기)를 졸업했다. 1965년 공채 수석으로 중앙정보부에 들어갔다. 중앙정보부 총무국장,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서울 종로 지역구에서 4선 의원을 지냈다. 1992년 14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사퇴했다. 국가안전기획부의 마지막 부장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 만들어진 국정원의 초대 원장을 맡았다. 현재는 우당이회영교육문화재단 이사장과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이종찬 인터뷰] ③ 「“종전선언으로 북핵 문제 해결 어려워…文대통령은 꿈을 꾸고 있어”」  기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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