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인터뷰] “종전선언으로 북핵 문제 해결 어려워…文 대통령은 꿈을 꾸고 있어”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1 10:00
  • 호수 168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년 인터뷰]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③
“에이브럼스 인터뷰 개인 주장 아냐…美 정부 입장 대변하는 것”
“美 오판 자주 해…오판 않게 정확한 정보 주고 경고음 울려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서부터 日과 관계 풀어나가야”

[이종찬 인터뷰] ② 「“차기 대통령이 인구·연금 문제 못 풀면 대한민국호 침몰”」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유지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종전선언으로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희망 섞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전 원장은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의 최근 미국의 소리(VOA) 인터뷰에는 사실상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담겨 있다며 단순한 개인 의견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을 하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오늘날 북한은 분명히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 전 원장은 그의 인터뷰 내용에 종전선언과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 등에 대한 미국 측 평가와 시각이 담겨 있는 만큼 문재인 정부는 그의 지적이 거슬린다고 귀를 막지 말고, 오히려 종전선언 추진의 현실성이나 우리 군의 북핵 대응 능력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8년 5월12일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당시 이종찬 안기부장 등과 함께 ‘정보는 국력이다’는 내용의 원훈석을 제막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외교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높이 평가합니다. 주변국에 너무 굽신거리면서 해서 문제였지만, 지난 5년간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에 놓이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차기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잘 대응해야 할 텐데요.

“실제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정면으로 붙는 한복판에 한국이 서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한·미 동맹으로 인해 우리는 70년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유지해 왔습니다. 대원칙을 흔들지 맙시다. 이걸 흔들면 전체가 다 흔들립니다. 이 바탕 위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한데요.

“물론입니다. 중국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 됩니다. 한·미 동맹의 하위 바탕에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성립됩니다. 한·미 동맹을 흔들면 전략적 동반자 관계도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걸 동격에 두고 눈치작전을 펼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됩니다.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부분에서 확신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차기 정부의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미국이 늘 옳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라고 묻는다면요.

“우리는 헌법적 가치와 국익에 따라 필요한 이야기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미국은 지금껏 오판을 자주 했습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동구권을 소련에 다 넘겨줬습니다. 한국도 분단시켰죠. 다 오판의 결과입니다. 북한의 남침도 마찬가집니다.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면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판단도 완전한 오판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미국이 오판하지 않도록 계속 제대로 된 정보를 주고, 경고음을 울려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 대통령은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다. 성명(statement)만 이끌어 내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종전선언만 하면 전쟁이 앞으로 영영 없다? 이건 굉장한 ‘위시풀 싱킹’입니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의 최근 인터뷰를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종전선언을 하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고, 북핵 위협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밀어붙이면 유엔사 해체의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뼈 있는 말입니다.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직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종전선언만 하면 전쟁이 다시 벌어지지 않나요? 전쟁을 억제하는 유능한 안보태세가 선결 과제입니다. 평화는 구걸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종전선언은 미국과의 조율 아래 이뤄지고 있는데요.

“그동안 정부가 미국 측에 여러 채널을 통해 종전선언이 단순한 정치선언이라고 설득했기 때문입니다. 주한 미국대사가 바이든 정부 출범 11개월째 공석입니다. 이건 신호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편함을 표시하고 있는 거죠.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 인터뷰에 담긴 메시지의 함의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문 대통령의 베이징동계올림픽 참석은 어떠해야 할까요.

“베이징올림픽에 주요 빈객(賓客·귀한 손님)으로 가시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외교·안보와 관련해 무리한 말씀은 삼가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동맹국인 미국이 외교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행사에서 과중한 메시지가 나가면 대선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에도 결정적 흠결을 남길 수 있습니다. 임기 내에 실적을 남기겠다고 무리한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윤석열 후보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밝힌 점은 참으로 적절했다고 봅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은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향해 가자’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원칙이죠.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도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Forgive but not forget)’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국내 반일 감정이 만만치 않은데요.

“지금 우리 젊은 세대는 일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옳습니다. 다만 일본을 직시해야 합니다. ‘토착왜구’ 같은 구호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일본이 군사대국이 될 빌미를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면 동북아 전체에 군비경쟁을 불러와 우리에게도 위협이 됩니다. 미국은 이걸 바랄 겁니다. 대신 중국을 견제해 주니 얼마나 좋은가요. 그 결과는 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입니다. 빌미를 주면 안 됩니다.” 

■ 이종찬은 누구인가?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경기고를 거쳐 육사(16기)를 졸업했다. 1965년 공채 수석으로 중앙정보부에 들어갔다. 중앙정보부 총무국장,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서울 종로 지역구에서 4선 의원을 지냈다. 1992년 14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사퇴했다. 국가안전기획부의 마지막 부장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 만들어진 국정원의 초대 원장을 맡았다. 현재는 우당이회영교육문화재단 이사장과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