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자본이 상권 생태계 무너뜨렸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2 10:00
  • 호수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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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용균 알스퀘어 대표
“상권 지각변동은 시대적 추세…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

“거대 자본이 전통 상권을 잠식하면서 기존의 힙함이 사라졌다. 전통적 상권이던 홍대와 명동, 가로수길 등이 무너진 이유 중 하나다. 대신 풍선효과처럼 소호 업체들이 주변으로 밀리면서 성수동이나 신당동, 용리단길(용산) 같은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

상업용 부동산 종합 정보 서비스 기업인 알스퀘어 이용균 대표가 1월5일 기자와 만나 한 말이다. 그는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수도권 상권의 ‘지각변동’이 시대적 추세라고 설명한다. 이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늘어나면서 기존 상권의 입지가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이라면서도 “전통 상권이 무너진 이유는 반드시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거대 자본의 진출로 소호 상권이 무너지면서 상권 고유의 힙합이나 트렌디함이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았다”고 진단했다.

오피스 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 트렌드가 바뀌면서 지역별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기존 사무실이 축소되고 비대면 오피스나 메타버스 등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현장에서 봤을 때 시장 자체가 IT 기준으로 바뀌었을 뿐 수요는 여전하다. IT업체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과 판교 등 수도권 남부를 중심으로 오피스 시장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시사저널 박은숙

서울 명동이나 홍대 등 기존 상권의 공실률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인가.

“배제할 수는 없다. 홍대나 인사동, 명동 등은 전통적으로 해외관광객의 소비 지역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넘치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었고, 소비 역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타격을 많이 받았다. 공실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드시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긴가.

“코로나19 기간에도 성수동이나 강남 상권인 도산대로·청담동, 용리단길 등의 공실률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소비시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현재 대형 프랜차이즈가 없다. 대신 아기자기하고 유니크한 소호 상권이 활성화됐다.

특히 성수동의 경우 패션이나 엔터테인먼트, IT회사들이 이곳에 많이 몰려 있다. 무신사나 쏘카, 큐브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등이 최근 성수동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젊은 사람이 많이 이용하는 트렌디한 상권이 형성됐다. 문화예술인들도 주변에 터를 잡으면서 기존의 인쇄공장이나 정비소를 리모델링한 공방과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2030세대들이 이곳으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사라져도 이런 트렌드는 이어질 것으로 본다.”

거대 자본의 유입으로 전통 상권이 활기를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맞는 얘기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한때 ‘젊은이들의 메카’로 꼽혔다. 인근 성형외과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상가 두 곳 중 한 곳은 현재 비어있는 상태다. 여기에 더해 거대 자본의 유입으로 힙함을 많이 잃었다. 과거에는 이곳 상권의 대부분이 소호 상가였다. 젊은 층이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거대 자본이 들어오고, 풍선효과처럼 소호 상가들이 버티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났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힙한 문화도 사라졌다. 명동이나 이태원, 홍대 등도 마찬가지다. 거대 자본이 들어오면서 예전의 활기를 많이 잃었다. 대신 신당동이나 용리단길 등의 경우 20·30대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상권이 탄생했다.”

오피스 시장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서울 시내 오피스의 공실률이 최근 크게 하락했다. 특히 강남과 성수동, 판교의 경우 빈 사무실이 없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들 지역이 인기를 얻게 된 것도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이곳 주변에는 현재 게임이나 커머스, 바이오 등 IT회사가 많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들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사무실을 확대하고 있다. IT회사들이 한곳에 몰리면서 대기업이나 거대 금융회사들조차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연구인력 때문에 강남이나 판교 등에 사무실을 내고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 남부의 인기가 계속되면서 공실률 양극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세계적 추세라고 보면 된다.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하면서 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됐다. 자연스럽게 기존 사무실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비대면 오피스나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생각보다 수요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구글과 아마존, 애플 등 세계 최대 IT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해도 IT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를 떠나고 있다는 보도가 잇달았지만, 현재는 실리콘밸리로 다시 돌아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알스퀘어 역시 빌딩 거래나 임대 및 임차를 돕는 ‘프롭테크 솔루션 기업’임을 자처하고 있다. 최근 거액의 투자도 받은 것으로 안다.

“부동산 시장은 혁신이 더디다. 기존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알스퀘어 역시 오피스 임대차 거래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컨설팅과 자산관리, 물류창고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IT기술을 많이 활용했다. 주거용 부동산의 경우 공공 데이터가 잘 DB(데이터베이스)화돼 있다. 하지만 비주거용 시장은 다르다. 알음알음으로 필요한 상가나 오피스를 찾아야 했다. 알스퀘어는 IT기술을 활용해 파편화된 정보를 DB화하는 데 성공했다. 필요한 정보만 입력하면 쉽고 빠르게 물건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임대인 정보는 15만 건, 임차인 정보는 2만6000건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프트뱅크 아시아에 이어 국내 최대 PE로부터 최근 거액을 투자받을 수 있었다.”

최근 해외 진출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한국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작년에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다. 이미 베트남 주요 3개 도시에 대한 전수조사를 마친 상태다. 상반기까지 10대 도시로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진출을 준비 중이다. 나라마다 부동산 거래 관행이나 문화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매칭 사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한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수십 년간 비주거용 부동산 정보를 축적해 상장에 성공한 미국 코스타그룹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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