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 외면한 文, 뒷세대 부담은 갈수록 가중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8 10:0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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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시행 후 공적 연금 손대지 않은 유일한 정부…李․尹도 표 의식해 연금 개혁에 소극적이어서 우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현세대에게 유리하다. 원래 연금 재정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부과 방식(Pay As You Go Scheme)과 적립 방식(Funded Scheme)이다. 부과 방식은 매년 연금 지급에 필요한 비용을 해당 연도 가입자의 연금보험료 수입으로 충당한다. 반면 적립 방식은 가입자 단위로 가입한 기간에 낸 연금보험료의 원리금을 은퇴하면 연금으로 받는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는 적립 방식이지만 완전 적립이 아닌 수정 적립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수급액이 부담액보다 훨씬 많은 구조다. 부담하는 연금보험료의 원리금 합계보다 1.88배 정도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돼있다. 최근 빠르게 늘고 있는 기대여명까지 반영하면 수익비는 2.2배로 증가한다. 낸 돈보다 두 배 넘는 돈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평균소득 수준의 신규 가입자가 1000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2270만원의 연금을 기대할 수 있다.

ⓒ연합뉴스
저출산·노령화가 가속화되면서 국민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민주노총의 국민연금 개혁 6대 요구안 발표 모습ⓒ연합뉴스

2057년 되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 예상

하지만 최근 저출산과 노령화로 기금 고갈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18년 발표된 4차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에서 국민연금 기금은 2057년에 고갈될 것으로 전망됐다.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연금을 반드시 못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적립기금이 사실상 없어진 상태지만 연금을 받고 있다. 적립한 기금이 없는 상태에서 연금을 계속 지급하려면, 재정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적립 방식이 아니라 부과 방식으로 말이다. 노년 세대에게 매년 지급할 연금액만큼을 근로 세대가 보험료로 내는 방식을 통해 조달할 수밖에 없다.

이 방식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전제가 있다. 생산인구 대비 노년 인구의 비율인 노년부양비가 근로 세대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가 돼야 한다. 2020년 현재, 연금 개혁을 한 유럽 국가의 노년부양비는 독일 33.7%, 스웨덴 32.7%, 영국 29.3%, 프랑스 33.8%다. 하지만 2057년께 우리나라 노년부양비는 85% 정도다. 제도를 유지하려면 현재 9% 수준인 연금보험료율을 소득의 27%로 3배 높여야 한다. 2060년에는 29.3%가 돼야 하고 2070년에는 34.7%가 돼야 제도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소득의 3분의 1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시점의 노년부양비는 100% 수준이다. 노년 세대 1명을 근로 세대 1명이 부양해야 한다. 노령화와 저출산 현상이 가져오는 변화다. 4대 연금 중 국민연금을 제외한 공무원, 사학,  군인 등 3개 직역연금도 손질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30년까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적자는 각각 9조6000억원과 4조1000억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앞으로 10년간 두 연금의 누적 적자는 합쳐서 100조원 가까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법에 따라 이 적자는 일반 국민이 낸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연금 개혁의 본질은 세대 간 공평성 확보에 있다. 부담한 만큼 받도록 하자는 것이고, 지출만큼을 수입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PAYGO(Pay As You Go) 원칙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받을 돈을 줄이고 내야 하는 돈을 늘리는 변화지만, 미래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내야 하는 돈이 받는 돈보다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현시점에서 해야 할 연금 개혁의 핵심은 결국 지출만큼을 수입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원칙의 복원에 있다.

연금 개혁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내는 돈을 늘리거나 받는 돈을 줄이는 것이다. 연금보험료율을 높인다면 내는 돈을 늘리는 것이고, 지급 시기를 늦추며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것은 받는 돈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 외에는 없다. 국민연금의 현재 소득대체율은 40%다. 매월 소득의 9%를 연금보험료로 내면 생애 소득의 40%를 종신토록 받을 수 있다. 이 구조라면 시간이 갈수록 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방향의 개혁은 예정된 파산을 늦추자는 고육책이기도 하다. 가능한 한 조기에 연금 개혁을 해야 하는 것은 일찍 시작할수록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연금 혜택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을 수 있는 베이비붐 세대가 조금이라도 더 부담하고 은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적립기금이 이미 고갈된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금 개혁은 어렵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민에게 적정 수준의 노후생활도 보장해줘야 한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험난한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 선거를 눈앞에 둔 후보들은 얘기를 꺼내기가 더욱 어렵다. 한국연금학회는 각 대선후보 캠프에 공약을 요구했지만 대다수가 내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당장 투표에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은 내놓지 않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해야 하는 건 맞겠지만 공약으로 할지는 검토해야 한다며 임기 안에 할 수 있을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많이 걷고 적게 줘야 한다는 것 아니겠냐며 방향을 말하기는 했지만 먼저 공약을 내놓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현행 재정 방식 바꿔야 기금 고갈 막아

그러나 연금 개혁을 외면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짐을 떠넘기는 일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 구조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나쁜’ 제도라고 했다. 말 그대로다. 역대 모든 정부가 국민연금이든 공무원연금이든 적어도 임기 중에 하나 정도는 손을 댔다. 김영삼 정부의 1차 공무원연금 개혁, 김대중 정부의 1차 국민연금 개혁 및 2차 공무원연금 개혁, 노무현 정부의 2차 국민연금 개혁,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3차와 4차 공무원연금 개혁이 그런 결과들이다. 미흡하긴 했지만 그나마 이런 노력 끝에 초기 5.5%이던 공무원연금 보험료율은 지금 18%대로, 3%이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로 높아졌다.

현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공적 연금에 손대지 않은 유일한 정부다. 예상됐던 일이기는 하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오히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겠다고 했다. 이 정부에서는 연금 개혁이 어렵겠다는 예고를 한 셈이었다. 결국, 현 정부는 할 일을 다음 정부로 넘겼고 숙제는 차기 정부의 몫이 되고 말았다. 연금 개혁 문제는 세대 간 갈등의 최전선에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연금 재정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뒷세대의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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