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학동 참사’라 쓰고 ‘HDC현산의 배신’이라 부른다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4 11:0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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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 뜯어지듯 무너졌다…‘판박이’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예견된 人災”
광주 시민들, 되풀이되는 ‘대형 참사’에 대기업 시공사 향해 분노

2021년 6월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시 동구 학동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건물은 마침 현장 옆을 지나던 버스를 덮쳤다. 승객 17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언론은 이를 ‘학동 참사’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7개월 만에 광주에서 또 무너졌다. 1월11일 오후 3시48분쯤,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현장 201동 39층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작업 중 23~38층 바닥과 외벽 일부 등이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구조된 3명 중 1명이 잔해에 다쳐 병원치료를 받고 있고, 6명은 13일 오전 9시 기준으로 현재까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시사저널 임준선
1월11일 오후 3시47분 광주시 서구 화정동에서 공사 중이던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사진은 13일 붕괴 현장의 모습이다.ⓒ시사저널 임준선

“건물과 함께 HDC현산 신뢰도도 추락했다”

직선거리로 10km 남짓 떨어진 두 현장의 시공사는 공교롭게도 모두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다. 시민들은 이를 ‘제2의 학동 참사’ 내지 ‘HDC현산의 배신’이라고 부른다. HDC현산 측은 학동 붕괴참사 직후 철저한 안전관리와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했지만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광주에서 ‘판박이’ 붕괴사고가 발생한 데 대한 분노에서다. 사고가 발생한 화정아이파크는 7개동 지하 4층~지상 39층 규모다. 아파트 705세대, 오피스텔 142세대 등 총 847세대 주상복합 건물이다. 1·2단지로 나뉘어 있는데, 사고가 일어난 건물은 2단지 201동이다. 2020년 3월 착공했다. 광천종합버스터미널과 길 하나를 두고 있는 등 교통과 교육 여건이 좋아 광주에서는 비교적 비싼 평당 1600여만원대 분양가에도 최고 108대 1, 평균 67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인기를 끌었다. 2019년 4월 HDC현산이 계열사이자 시행사인 HDC아이앤콘스로부터 공사를 수주했다.

문제는 HDC현산이 7개월 만에 광주에서 재난급 대형 사고를 다시 냈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참사 현장에서도 시공을 담당했다. 당시 정몽규 회장은 광주시청에서 “희생자 유가족, 부상자, 광주 시민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전사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 회장의 약속은 불과 7개월 만에 빛이 바랬다. 이번 ‘판박이’ 붕괴사고로 정 회장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는 지적을 수용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사고 직후 본사 임직원들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수습과 원인 파악에 나섰다. 유병규 대표이사는 1월12일 사고현장 인근에서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저희 HDC현대산업개발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피해를 입으신 실종자분들과 가족분들, 광주 시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광주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두 현장 모두 동일 시공사가 담당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비난의 화살은 HDC현산으로 향했다. 시민들은 지난해 ‘학동 참사’ 현장의 시공사인 HDC현산이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고 무리하게 이윤만 좇아 시공하다가 일어난 인재(人災)라며 분노했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또 그 건설사냐” “현대산업개발이 짓는 광주 지역 건물에만 자꾸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뭐냐”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여기에 “현대산업개발만은 피하고 싶다” “아이파크는 걸러야 한다” “차라리 다 헐고 다시 지어라” “주택사업에서 손 떼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공사 현장 인근 상인 박태주씨(58)는 “거듭된 재난급 사고로 건물과 함께 현대산업개발의 신뢰가 추락했다”며 “대기업의 안전관리 수준이 이런 정도라는 게 한심하고 분하다”고 했다.

1월13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사고 수습에 나선 119 구급대원들ⓒ시사저널 임준선

촉박한 공기에 “빨리빨리” 속도전

이용섭 광주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12일 0시가 다 돼서야 대표이사가 광주에 도착했고, 이날 오전 10시 한 장짜리 사과문 발표가 전부였다”며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시민들에 참 나쁜 기업”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인재를 유발한 책임을 지라고 질타했다. HDC현산은 현재 광주에서 지난해 6월 철거 중 붕괴사고가 발생한 학동4재개발사업구역과 이번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 건설 현장을 비롯해, 동구 광주계림 아이파크SK뷰 아파트, 광주 운암3단지 등 총 4곳의 시공사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사고는 39층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 중 23~38층 양쪽 외벽 등이 수직으로 붕괴하면서 발생했다. 당국은 현재 명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우선 현장 목격자와 전문가들은 인재(人災) 가능성을 제기한다. 부실시공과 취약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라고 보고 있다. 당국은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갱폼·Gang Form)이 무너지고, 강풍에 타워크레인 지지대(월타이·Wall Tie)가 손상되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거푸집 붕괴가 사고의 최초 원인이라면 콘크리트 양생이 불량해 구조물 고정이 약해져 아파트 외벽 붕괴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변 작업자 목격담도 나왔다. 사고가 난 건물의 바로 옆동에서 공사에 참여한 이 목격자는 “정확히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닷새마다 1층씩 쌓아올린 것으로 보였다”고 증언했다. 아래층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지 않은 상태에서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상층을 쌓아올리면서 건물이 순차적으로 붕괴했다는 가설이다.

공사 현장에는 ‘시간이 돈’이라는 인식이 강해 이번 공사 역시 속도전으로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상인 박씨는 “2020년 착공 직후 터파기 작업 당시 협력업체가 교체되면서 2개월가량 공기(工期)를 까먹었다”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매년 겨울철 공사를 강행하는 것을 직접 봤다”고 했다. 또 다른 인근 주민도 “주말에도 공사가 쉼 없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입주가 10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 상부 콘크리트 타설 중이었다면 그만큼 공기가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고 발생 현장에서도 예전부터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 정황이 포착됐다.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은 사업 승인 이후 1년6개월 동안 최소 14건의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특정공사 작업시간 미준수’로만 9차례 과태료 부과 처분이 내려졌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입주 시기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해온 셈이다.

유병규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1월12일 사과문 발표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연합뉴스

전문가 “무리한 공기 단축 막아야”

공기 단축 요인에 더해 영하권 날씨 등 계절적 요인으로 콘크리트 양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붕괴 사고가 발생한 1월10일에도 눈이 내리는 혹한 속에서 작업이 진행됐다. 홍석선 화정아이파크 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겨울철이나 비가 오거나 이럴 때는 타설을 중지해야 했는데, 비가 와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레미콘을 쳤으니 그게 제대로 굳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겨울철에는 낮은 기온 탓에 콘크리트가 잘 마르지 않는다. 100여m에 달하는 39층 옥상의 경우 기온이 더 낮아 콘크리트 양생에 어려움이 컷을 것이라고 건설업계는 귀띔했다. 동해(凍害)를 입은 콘크리트는 구조물 붕괴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날씨가 추우면 동결 융해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붕괴한 층을 살펴보면 지난해 11~12월과 올 1월에 공사하면서 일부 구간의 콘크리트가 굳는 게 아니라 얼어버린 것 같다”며 “추운 날일수록 관리·감독을 더 강화해야 하는데 HDC현산이 이를 지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HDC현산 측은 “공기는 정상이었고 오히려 예정보다 빨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현장”이라며 “공기가 촉박해 서둘렀다는 추측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지금의 악순환이 멈추지 않으면 대형 사고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익을 가장 많이 남기기 위한 건설사의 수단이 공사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고, 인건비 등 비용을 아끼는 것”이라며 “안전 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건설 현장을 실효성 있게 지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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