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승부 갈린다] TV토론, 말 잘하는 사람이 이기지 않는다
  • 김종일·구민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4 10:0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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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전문가 10인이 보는 대선 5대 핵심 변수 ④ TV토론]
“‘삼프로TV’가 실전 격투기라면 TV토론은 약속된 대련”…결국 ‘태도’가 관건

“1992년부터 여론조사를 실시해 왔는데 이런 대선은 없었다. 후보들의 도덕성 문제, 유권자 탈이념화 현상, 대선을 관통하고 있는 정체성 정치 등 모두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선거 분석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이상한 선거다.” 30년간 여의도 정치권에서 선거 여론조사 전문가로 활동해온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의 솔직한 토로다. 분석과 예측에 어려움을 겪는 건 홍 소장 같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한 표를 어떤 기준으로 행사할지 결정하기 어렵다. 쉽게 마음이 가는 곳이 없다. 그래서일까. 이번 대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고 예측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판세가 예측불허다. 3월9일 20대 대선이 50일도 남지 않았지만 아직 어느 후보도 대세를 형성하지 못하는 보기 드문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양강 후보는 모두 유리한 구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국정수행 긍정평가율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절반이 넘는 정권교체 여론의 등에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선이 ‘이상한 이유’는 후보를 ‘뽑을 기준’은 보이지 않고, ‘뽑지 않을 기준’이 정국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김건희 리스크’는 이번 대선을 ‘비호감 대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권자는 누가 덜 나쁜지를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반면 시대정신 같은 거대 담론은 물론이고 대선을 관통하는 대형 정책은 실종됐다. 이 후보는 기본소득 같은 대표 정책에서 후퇴했고, 윤 후보는 여태껏 유권자 기억에 남을 대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두 후보의 정책에서 차별화도 체감하기 어렵다. 양강 후보의 부동산 공약은 모두 250만 호 공급으로 같다.

전문가들은 우리 국민이 ‘뽑을 이유’와 ‘뽑지 않을 이유’를 확실하게 만들어줄 핵심 변수를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시사저널은 남은 대선 기간 승부의 향방을 가를 5대 변수를 ①단일화 ②김건희 리스크 ③대장동 리스크 ④TV토론 ⑤2030대 표심 등으로 꼽고, 여의도 정치권에서 이른바 ‘1타 강사’로 불리는 선거 전문가들의 심층적인 분석을 청취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이 ‘비호감 대결’과 ‘차별성 없는 정책’ 구도 속에서 치러지다 보니 역대 대선에 비해 이례적으로 지지자들의 결집도와 충성도가 약하다고 분석했다. 지지율 하락과 반등이 단기간에 요동치는 현상이 반복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엎치락뒤치락 흐름이 대선 막판까지 이어지며 대세 후보는 대선일에 결정될 수도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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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 시사저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시사저널

양강 후보 측은 첫 양자 TV토론을 앞두고 개최일부터 시간대, 진행자, 진행방식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그만큼 양당은 TV토론을 남은 기간 판세를 가를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현재 표심을 아직 정하지 않은 중도·무당층 비율이 20% 안팎으로 집계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지금처럼 유동성이 강한 대선에선 TV토론이 어느 때보다 극적인 변수로 작용할 거라고 내다봤지만, 세간의 기대와 달리 판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우선 전문가들은 TV토론에서 이 후보가 유리할 거라는 예상은 섣부르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에 대한 기대치는 너무 높아져 있는 반면 윤 후보를 향한 기대치는 매우 낮기 때문이다. 박성민 대표는 “‘삼프로TV’처럼 전문성 있는 채널에 홀로 출연하는 것은 ‘실전 격투기’와 같다. 즉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면서 “반면 TV토론은 ‘약속된 대련’에 가깝다. 특히 다자 토론일 경우 안철수·심상정 후보까지 나서서 이 후보를 공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후보에게 마냥 유리하게만 흘러가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TV토론 형식의 유불리는 토론 유형을 보고 구분해 살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준한 교수도 “민주당이 토론을 절호의 찬스라고만 믿어선 안 된다. 한쪽으로만 계속 유리하게 흐르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후보가 자신의 차별성을 드러낼 기회는 있을 거라고 봤다. 이 교수는 “윤 후보가 비교적 가장 자신 있는 법률적 지식을 바탕으로 대장동 의혹 등을 고리로 네거티브전을 펼치려 할 수 있다. 이때 이 후보가 적당히 받아치면서 정책적으로 경쟁력을 발휘한다면 시청자들은 둘 사이의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다.

TV토론의 영향력을 두고서도 의견은 분분했다. 김형준 교수는 “TV토론으로 지지하던 후보를 바꾸는 전환 효과는 물론, 새롭게 누군가를 지지하는 유입 효과도 크게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미래 어젠다와 관련한 이야기보다 대장동 의혹 등으로 서로 공방만 하다가 끝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둘 다 마이너스만 얻게 될 것이며, 오히려 안 후보에 대한 기대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병천 전 부원장은 지지층의 결집력이 이완돼 있는 구도에서 TV토론의 효과는 크다고 분석했다. 최 전 부원장은 “이번 TV토론은 결집력이 약한 2030세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후보들은 스윙보터, 특히 여론조사에서 ‘표심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률이 가장 높은 2030세대를 염두에 두고 토론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승찬 대표는 중도·무당층을 공략하는 토론 전략은 따로 있다고 짚었다. TV토론, 특히 중도층이 타깃이 되는 토론에선 ‘말’을 잘한다고 이기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유 대표는 “결국 태도다. 논리보다는 그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관건”이라며 “누가 대중에게 더욱 프레지덴셜(대통령다운)하게 비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양 후보 모두 각종 리스크로 대통령다움이 훼손돼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만회할 토론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오히려 상대를 어떻게 제압할지에 집중하다 보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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