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이 쏘아올린 방송가 동물 학대 논란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5 13:00
  • 호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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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인 대처로 공분 초래…“시대 선도하지 못할망정 따라는 가야”

우리 사회가 여러모로 격변을 겪고 있는데, 그중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바로 KBS 《태종 이방원》에서 발생한 동물 학대 논란이다. 고려말에 이성계가 낙마한 틈을 타 정몽주 세력이 이성계 세력을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 이성계 낙마 사건이 《태종 이방원》에서 표현됐는데, 제작진은 말의 다리에 줄을 묶어 달리는 도중에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말을 넘어뜨렸다. 말이 거세게 고꾸라졌고 말을 타고 있던 스턴트맨도 떨어졌다. 

그러자 동물보호단체에서 동물 학대 의혹을 제기해 큰 논란이 일었다. 말이 매우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촬영 스태프가 스턴트맨에게만 관심을 보일 뿐 말은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KBS 측에서 입장을 냈다. 촬영 며칠 전부터 사고에 대비했고,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어 보여 그대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1주일 후 그 말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등장인물이 탄 말이 넘어지는 장면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등장인물이 탄 말이 넘어지는 장면ⓒ동물자연연대·KBS1 제공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등장인물이 탄 말이 넘어지는 장면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등장인물이 탄 말이 넘어지는 장면ⓒ동물자연연대·KBS1 제공

달라진 세상, 여전한 인식 

말의 사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촬영 때의 충격이 말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여겼고, 전문가들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KBS 측도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갖는다”고 했기 때문에, 말의 죽음과 드라마 촬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다 보니 비판 여론이 더 들불처럼 번져 갔다. 관련 국민청원글이 등장하고 제작진에 대한 고발도 진행됐다. 촬영 현장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연배우에 대해서까지 악플이 생겨났다. 결국 KBS는 2차 사과문을 내놨다. “드라마 촬영에 투입된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시청자 여러분과 국민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 “동물의 생명을 위협하면서까지 촬영해야 할 장면은 없다. KBS는 이번 사고를 생명 윤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 부족이 불러온 참사라고 판단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2차 사과문에 정확한 인식이 담겨 있다. ‘생명 윤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동물의 생명을 위협하면서까지 촬영해야 할 장면은 없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이런 상식적인 수준의 문제를 큰 홍역을 겪고서야 인지했다는 점이 놀랍다. 1차 사과 때만 해도 “이번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마치 ‘PC방의 전원을 내리니 PC가 꺼지는 것을 확인했다’는 느낌의 안일한 입장으로 더 큰 공분을 초래했다. 사안의 핵심을 진작 인식하고 좀 더 빨리 2차 사과문 같은 입장을 내놨다면 그나마 매를 조금은 덜 맞았을 것이다. 

수많은 질타를 받고서야 2차 사과문 같은 인식이 나온 건 그만큼 사람들의 공분 지점을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고 자체가 제작진이 달라진 시대를 인식하지 못해 터진 것이었다. 말이 넘어지는 장면은 그동안 여러 번 나왔다. 하지만 문제가 된 적이 없다. 

2014년 방영돼 큰 찬사를 받은 KBS 《정도전》에도 말을 넘어뜨리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 두 마리 말이 동시에 목이 꺾이면서 고꾸라졌고 다리에 묶은 줄까지 노출됐는데도 큰 문제 없이 넘어갔다. 과거엔 말을 어떻게 넘어뜨렸는지 그 촬영현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방영됐어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그런 장면을 박진감 넘치는 스펙터클 정도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촬영 중에 말이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업계 주장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영상작업을 해오던 제작진이 이번에도 별생각 없이 말 다리에 줄을 묶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엄청난 공분이 일었다. 최근 들어 인권 감수성이 고양됐고 그것이 생명 전체로 확산됐다. 반려동물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젠 어느 연예인이 반려동물을 파양했다는 의혹도 논란이 되는 시대다. 과거엔 동물을 재산의 일종으로 보기도 했지만 이젠 생명으로 여긴다. 

이번 사건에 연예인들까지 반발했다. 김효진은 “정말 끔찍합니다. 배우도 다쳤고, 말은 결국 죽었다고 하네요. 스턴트 배우님도 하루빨리 완쾌하시길. 촬영장에서의 동물들, 소품이 아닌 생명입니다”라고 했고, 이 글에 공효진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댓글을 달았다. 고소영은 “너무해요. 불쌍해”라는 글을 올렸다. 보통 연예인은 방송사에 부정적인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배우들이 방송사가 질타받는 이슈에 말을 보탰다는 건 그만큼 공분이 크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런 풍경이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포스터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포스터ⓒKBS1

스펙터클에만 집중하다 참사 

방송사 제작진의 인식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논란이 터진 후 2차 입장에 가서야 생명 윤리에 대한 엄중한 인식이 나온 것도, 방송사의 인식이 뒤처졌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번에 말이 죽어 동물 학대 이슈만 부각됐지만, 땅에 떨어진 스턴트맨에게도 정말 위험한 촬영이었다. 그전부터 우리 영상업계가 관계자들을 ‘갈아 넣어서’ 작품을 뽑아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림만 잘 만들 수 있다면 위험은 무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에 스턴트맨과 말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관념이 있었다면 굳이 그렇게 위험한 설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볼 만한 스펙터클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다 참사가 터지고 말았다. 

달라진 시대 분위기를 방송사가 따라잡지 못하면 언제든 공분이 반복될 수 있다. 과거 연예인 출연자를 위험에 내몰면서 촬영하다 사망 사건이 터진 이후 연예인 출연자를 보호하려는 관념은 생겼지만, 그런 생각이 아직 스턴트맨이나 동물로는 확대되지 못한 것 같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농림축산식품부가 ‘각종 미디어에 출연하는 동물의 보호에 대한 제도적 관심이 부족했다’며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영상·미디어 촬영 시 출연하는 동물의 보호와 복지 규정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한 동물 보호와 더불어 스턴트맨을 포함해 생명 전반에 대한 제작진의 관념이 바뀌어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연예인이 SNS에 달라진 시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게시물을 올렸다가 질타를 받곤 한다. 방송사가 그런 개인 SNS 수준이 되면 안 된다. 시대를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따라가기는 해야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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