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연금·복지] 지도자라면 응답하라, ‘미션 임파서블’ 연금 개혁에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4 10:0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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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정의로운 방식으로 연금 재설계 절실
국민 체감도 높아 이해관계 복잡하고 저항 거세
연금 개혁에 대한 구체성과 의지는 李·尹보다 安·沈 앞서

“국민연금 개혁에 동의한다.” 놀라운 일이다. 여야 4당 대통령 후보들은 2월3일 첫 TV토론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날 여야 후보 전원이 의견 일치를 이룬 의제는 연금 개혁 딱 하나였다. 대선 국면에서 유력 대선후보들이 대동단결로 무언가를 하자고 한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연금 개혁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누가 선출되더라도 연금 개혁은 이뤄지는 것일까. 

미래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연금 개혁으로 가는 길이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다. 연금 개혁이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부를 만큼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어려운 문제가 있다. 문제 해결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려운 문제가 있고, 해결법은 나와 있지만 그걸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 해결이 어려운 문제가 있다. 연금 개혁은 대표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난제다.

ⓒEPA 연합
연금 개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행하기 매우 어려운 국가 의제다. 국민적 체감 도도 높아 잘못 다루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사진은 2020년 연금 개편에 항의하는 프랑스 시민들ⓒEPA 연합

연금 개혁은 국민 체감도가 매우 높다. 공적연금은 당장 매달 내 호주머니에서 고정적으로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돈이다. 차지하는 비중도 꽤 크다. 나가는 돈이 늘어나거나, 들어오는 돈이 줄어드는 것을 반길 국민이 얼마나 될까. 보건복지부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3.4%는 현행 보험료가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지금도 부담이 되는 걸 더 올리겠다고 하면, 국민적 저항이 거셀 수밖에 없다. 

‘불안감’은 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을 키우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큼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고령화라는 ‘정해진 미래’는 향후 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특정 세대에게 강하게 갖게 한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이대로 가다간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 한 푼도 못 받아’라는 제목의 보도자료가 화제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새로울 게 없는 자료임에도, 특정 세대를 호출하면서 여론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기금의 적자 전환과 고갈이라는 ‘우울하고 확정된 전망’이 자신 세대부터 본격화된다는 예측을 새롭게 접한 이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이처럼 연금 문제는 어렵다. 연금은 세대마다 서로 다르게 작동한다. 더 많은 혜택을 보는 세대와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세대가 확연히 갈린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 정확하게는 세대 간 합의를 이루기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금 개혁은 바로 정치의 몫이다. 화약고 같은 사회적 갈등이 국가의 미래와 연결돼 있을 때 그 문제를 푸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몫이다. 문재인 정부가 직무유기를 저질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 개혁을 공약했지만, 4개 연금개혁 시나리오를 국회에 제출한 뒤 더는 개혁안을 진행하지 않았다. 시점을 뒤로 늦출수록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이 연금 개혁의 특성이다. 

문제 해결은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사회적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반박 불가능한 분명한 사실을 골라 최소한의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물꼬를 트는 것이다. 대통령선거는 오래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다.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연금, 특히 국민연금 개혁의 오늘과 내일을 살폈다. 

2월3일 이번 대선의 첫 TV토론이 열렸다.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 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국회사진취재단

국민연금, 현재 추세대로면 2050년대 기금 고갈

국민연금의 문제는 바로 재정이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고갈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에서 시작된다. ‘국민연금은 2042년부터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57년에는 기금이 고갈된다.’ 정부가 2018년 재정 건전성 도모를 위해 5년마다 실시하는 재정계산 결과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가장 최근 발표된 2018년 제4차 재정계산을 보면, 적자 발생과 기금 고갈 시점은 제3차 재정 전망(2013년)보다 각각 2년과 3년 앞당겨졌다. 

그나마 이 전망은 상대적으로 덜 우울한 시나리오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2020년 펴낸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39년 적자 전환이 시작되고, 2055년 적립금(기금)이 소진된다. 적립금 고갈 시점이 정부 예측보다 2년 빠르다. 고령화와 저출생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는 2020년 2234만 명에서 2030년 2087만 명, 2050년 1539만 명으로 빠르게 줄어든다. 2070년에는 1104만 명, 2090년엔 882만 명이 된다. 반면 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2020년 434만 명에서 2030년 704만 명, 2050년 1432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2070년에는 1491만 명, 2090년엔 1022만 명이 된다. 

앞으로 계산돼 새롭게 나올 전망은 훨씬 더 안 좋을 수 있다. 정부는 4차 재정계산에서 출산율을 2017년 기준 1.2명, 2030년 1.32명, 2060년 1.38명으로 예상해 계산했다. 그런데 5년 사이 출산율은 1.05명(2017년)에서 0.84명(2020년)으로 애초 전망보다 훨씬 빠르게 하락했다. 통계청은 지난해 12월 출생률이 조만간 0.6명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담은 새로운 인구추계를 내놨다. 코로나19로 결혼과 출생이 줄어 2025년 출생율이 0.52명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였다. 국회 예산정책처 계산은 2019년 통계청 인구추계 자료를 기초로 분석됐다. 지금의 우울한 전망조차 사실은 장밋빛이란 이야기다. 

대안은 없을까. 지금의 출생률 추세를 극적으로 전환하는 일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현재의 연금 구조를 개혁하는 일이다. 그래서 ‘더 내고 더 받기’ ‘덜 내고 덜 받기’ 등 개혁안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 열쇳말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보험료율은 기준소득 대비 보험료 납부액의 비중을 뜻한다. 즉 가입자가 ‘내는 돈’이다. 현재 9%로, 직장 가입자(노동자)들은 사용자(사업주)와 반반씩 부담한다. 보험료율은 1988년 3%로 시작해 1993년 6%, 1998년 9%로 오른 이래 24년째 바뀌지 않았다.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 연금 개혁이 단행됐지만 보험료율은 바뀌지 않았다. 그만큼 더 내는 방식의 개혁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소득대체율(연금급여율)은 은퇴 전 생애 평균소득에 견줘 은퇴 뒤 받는 연금 수령액의 비율을 뜻한다. 한마디로 수급자가 ‘받는 돈’이다.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현재 40%인데, 상당수 수급자의 실제 가입 기간은 40년에 못 미친다. 이런 이유로 실질 소득대체율, 즉 실제 수급자가 받는 돈은 이보다 더 적어진다. ‘용돈 연금’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득대체율은 1998년과 2007년 개혁 과정에서 70%에서 60%(1차 개혁), 40%(2차 개혁)로 점점 깎여왔다. 

주어진 4가지 선택지, 우리의 선택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네 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12월 네 가지 연금 개혁 시나리오를 국회에 제출했다. 1안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 유지(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다. 2안은 현행 국민연금을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2022년부터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1안과 2안은 현재 운영되는 국민연금 제도의 큰 틀을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3안은 40%인 현재의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고, 보험료율도 2031년까지 9%→12%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4안은 소득대체율을 40%→50%로, 보험료율을 9%→13%로 올린다. 3안과 4안은 기존안에 비하면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이다. 적립금 고갈에 대처하기 위해 돈을 더 내지만, 받는 돈도 늘려 연금 개혁에 대한 저항을 줄이자는 입장이다. 정부는 3안은 적립금 고갈 시점을 2063년, 4안의 경우 2062년으로 1~2안보다 5~6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추산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중 어느 선택지도 채택하지 않았다. 

다음 정부에서 시작될 국민연금 개혁도 이 네 가지 시나리오라는 기반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도입을 권하는 ‘자동안정(조정)장치’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이 제도는 평균수명과 가입자 대비 수급자의 부양 비율, 즉 인구구조의 변동에 보험료나 소득대체율을 자동 연동하는 제도다. 선진국들이 연금에 도입한 자동조정장치는 덜 받고(일본), 더 내고(독일), 늦게 받는(덴마크) 방식 등 크게 세 방향으로 진행됐다.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인구구조 변화 등에 따라 매번 연금 개혁을 논의할 필요가 줄어들고, 논의가 소모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연금 개혁의 또 다른 과제는 OECD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노인 빈곤율이다. 국민연금 미가입자가 국민의 절반에 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비정규직·여성·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상당 비율로 여기에 포함돼 있다. 어떤 방식으로 국민연금이 개혁되든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줄이지 않는 이상 현재의 처참한 노인 빈곤 상황을 개선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말고, 빈곤 노인층을 위해 모두가 받는 기초연금을 현행 30만원 수준에서 40만원으로 올리자는 제안이다.

 

역대 정부마다 고심…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 달까

연금 개혁이라고 하는 방울을 고양이 목에 달아야 하는 부담감은 역대 정부마다 반복돼 왔다. 내야 할 돈(보험료율)을 높이고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줄여야 하는 개혁은 당장의 국민 반발이 빤히 예상되는 탓이다. 그럼에도 손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1988년 보험료율 3%에 소득대체율 70%로 시작된 불균형 체제는 1998년 보험료율이 9%로 오르며 변화가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는 같은 해 소득대체율을 60%로 조정하는 1차 개혁을 단행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오는 2028년까지 다시 40%로 줄이는 2차 개혁을 단행했다. 여기에 보험료율도 15.9%까지 올리려고 했지만 이는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국민연금 개혁은 15년 전의 이 1·2차 개혁이 끝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대신 공무원연금에 칼을 댔다. 보험료율을 국민연금의 두 배인 18%까지 올렸다. 

문재인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국민연금 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5%로 10년에 걸쳐 인상하는 권고안을 국회에 제시했지만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국민 반발을 의식한 데다, 코로나19 사태라는 돌발 악재가 터지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대선후보들은 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성과 의지는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연금 개혁에 대한 의지는 양강 후보보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더 강하게 피력 중이다. 안 후보는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3개 특수직역 연금 간 서로 다른 보험료율과 급여 수준, 국가와 사용주의 부담 비율을 국민연금 기준으로 일원화해 연금 간 격차와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심 후보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3~4%포인트 높이는 안과 함께 신규 공무원에게 국민연금을 적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모두 국민연금 개혁안을 하나로 통일해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TV토론에서 이 후보는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첨예하기 때문에 1개의 통일안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윤 후보도 “연금 개혁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거라 대선 기간에 짧게 어떤 방향을 만들어서 공약으로 발표하기엔 대단히 위험한 것이기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초당적으로 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훈수를 두고, 비판하는 일은 쉽다. 문제 해결은 어렵다. 그중에서도 연금 개혁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일이다. 대선 이후 연금 개혁은 어떻게 이뤄질까. 결국 관건은 정치력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조정해 세대 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은 정치의 몫이다. 다음 대통령이 역사에 이름을 어떻게 남기느냐가 바로 여기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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