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 논란이 진화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례적으로 거친 반응을 보이면서 논란은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여권과 야권 모두 윤 후보의 발언을 고리로 ‘집토끼’ 결집을 시도해, 진영 간 세 대결이 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일 정치권에선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을 둘러싸고 격앙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 회의에서 윤 후보를 향해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며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 했단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지 대답해야 한다”고도 일갈했다.
“친문 부동층 잡아라”…文대통령도 대선 한복판에 소환
문 대통령은 또 연합뉴스 및 세계 7대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며 작심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일찌감치 대선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야당 후보를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대선 후보가 정치 보복을 공언하는 것은 본 적 없는 일”이라며 “윤 후보는 보복이 아닌 통합의 길로 가시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고민정‧김의겸 의원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 20명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공화국과 정치 보복을 공약한 윤 후보에 맞서 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3월9일 대선에서의 승리”라고 했다.
여권이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에 화력을 집중하는 이유는 친문 진영의 대결집을 노린 것이란 게 정치권의 공통된 평가다. 민주당 지지층이면서 이 후보 지지를 꺼려하는 부동층의 표심을 모아, 현재의 지지율 열세 국면을 벗어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여기에 이번 논란을 계기로 윤 후보에 ‘검찰공화국’ 프레임을 덧씌워, 검찰개혁을 지지했던 친문 세력의 결합을 시도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민주당은 최근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을 구원 투수로 내세우면서 친문과 호남에 대한 노골적 구애를 시작한 상태다. 이 후보와 대선 경쟁자였던 이 위원장에게 선거 총책임을 맡기면서, 이 후보에게 아직 마음을 열지 않은 부동층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위원장의 공식 등판 시점과 윤 후보의 이번 발언이 맞물린 데다 문 대통령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하면서, 민주당은 ‘집토끼 잡기’에 사활을 걸 태세다.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 부담됐나…한 발 물러선 尹
그러나 야권도 동시에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분위기다. 정권 교체 여론이 국정 안정 여론보다 높은 상황인 만큼, 윤 후보의 이번 발언이 문재인 정부에 반감을 가진 보수층의 결집을 부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재명 대 윤석열’에서 ‘문재인 대 윤석열’의 구도로 대선판이 재편될 가능성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수많은 모순적 정책이나 부패로 점철된 부분을 일거에 일소할 수 있는 적임자로서 윤석열 후보가 선출된 것”이라며 “국민에게 (적폐청산의) 적입자가 윤 후보임을 상기시키는 것이 선거상에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만 야권 일각에서도 윤 후보의 발언으로 공들였던 호남 지지층을 잃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기색이다. 국민의힘은 보수 진영으로선 처음으로 호남 득표율 목표치를 25%로 잡고 ‘서진 정책’에 시동을 걸던 찰나였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윤 후보는 호남권 도시 순회에 나서기로 했다. 이 같은 시점에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으로 호남권 친문 지지층이 동요한다면, 서진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언이다.
당내에서도 윤 후보 발언의 여파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지자, 윤 후보 본인은 일단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란 단어는 없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윤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은 늘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사정을 늘 강조해왔다. 저 역시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윤 후보는 문 대통령이 사과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문 대통령과 내 생각이 같다”라며 즉답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