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공들이는 ‘반도체 빅딜’ 현실화될까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22.02.23 10:0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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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시장 공급망 흔들지 않으면 M&A 가능”
‘차량용 반도체 업체 인수’ 우선적 거론

반도체는 모든 전자기기의 심장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이후 데이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반도체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산업 자체가 큰 영향을 받게 됐다.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자동차 업계가 단적인 예다. 하지만 기술 장벽이 높은 터라 양질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 국가의 경쟁력으로 여겨진다. 반도체 기업이 다른 국가로 넘어가거나 시장 독과점 우려가 있는 경우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인수·합병(M&A)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할 때 ‘3년 내 빅딜’을 선언한 삼성전자가 쉽게 M&A에 나서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일각에서 나오기도 한다.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 및 전문가들은 몇 가지 조건만 뒷받침되면 빅딜 가능성은 높다고 입을 모은다.

2021년 11월2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마친 뒤 귀국하고 있다.ⓒ연합뉴스

엔비디아이 ARM 인수 무산은 특수 사례

전문가들은 우선, 공급망을 흔드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M&A를 전면적으로 막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기업에 대한 M&A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 인수가 최근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두 기업의 M&A 시도는 주요 경쟁 당국들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반도체 패권주의’ 때문이라고 해석하지만, ARM이라는 기업의 특수성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ARM은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에 AP 기본설계도를 공급하는 기업이다. ARM이 기본적인 설계도를 주면 각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자신들만의 제품을 만드는 식이다. 이 때문에 ARM은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일종의 공공재와도 같은 성격을 지닌다. 특정 기업이 ARM을 인수하면 다른 기업들 입장에선 경쟁사에 의지해야 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소프트뱅크가 ARM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소프트뱅크가 반도체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2년 전에 엔비디아의 ARM 인수 불발이 전망됐을 정도로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어려운 도전이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020년 ‘Deep impact in chip industry’ 보고서를 통해 “ARM이 특정 반도체 업체에 인수될 경우 독과점 이슈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 실제 딜 클로징까지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고 예견한 바 있다.

즉,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시도처럼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흔드는 수준이 아니면 여전히 빅딜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인수 무산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AMD는 각 경쟁 당국의 승인을 받아 자일링스 인수를 완료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부문 인수를 완료해 특별성과급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때 거론되던 삼성전자의 ARM 인수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비메모리 부문에서 빅딜 시도가 나올 가능성은 여전하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부문에선 절대강자라 M&A에 나설 경우 결합심사를 통과하기도 어렵거니와,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비메모리 부문에선 사정이 다르다.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 주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세계 1위 대만 TSMC(55%)의 절반은커녕 3분의 1 수준(17%)에 머무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선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1위 사업자인 메모리 부문과 다른 시장인 비메모리에서의 M&A는 성공 확률이 높다는 추론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 법률자문관을 지낸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차동언 변호사는 “기업결합 심사 때는 관련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의 개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맥주회사가 소주회사를 인수할 경우 맥주와 소주를 다른 시장으로 판단할 것이냐, 같은 주류 시장으로 볼 것이냐가 중요하다”며 “메모리 시장과 비메모리 시장이 다르다는, 다시 말해 관련 시장 논리를 잘 만들고 합병 후 점유율이 과반을 넘지 않는다면 M&A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점으로 비춰볼 때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세계 2위 점유율을 보이지만 1위 사업자의 점유율이 50%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다른 중소업체들을 품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업계에선 시너지 및 인수 효과 등을 감안할 때 기술력 확보가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차량용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기술에서 차이를 보인다. 메모리 1위 삼성전자라 해도 단숨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반도체 패권주의 속 외교관계가 주요 변수로

삼성전자의 빅딜과 관련해선 몇 가지 조건이 추가적 변수로 거론된다. 반도체 패권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은 현실을 놓고 보면 우선 외교와 관련한 정부의 역할론이 강조된다. 결합심사와 관련해 각 주요국과의 관계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빅딜를 위해선 자유진영과의 관계를 어떻게 갖고 가느냐 여부가 중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 매그나칩이 중국계 사모펀드와 인수계약을 체결했으나, 미국 정부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국내 일각에서는 기술 유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최근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이 반도체 수출 금지에 나설 것이란 외신보도가 나오는 등 반도체가 여전히 국가 간 갈등 관계에서 변수로 부각되는 모습이다. 3월 대선 이후 새로 출범할 정권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이와 더불어 빅딜에서 오너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여부도 변수라는 시각이 있다. 현 정권은 국정농단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면했지만, 이 부회장은 가석방하고 사면은 하지 않아 취업 제한 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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