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현실 반영해 또 글로벌 흥행 이끌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9 11:0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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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학교는》, 사회적 문제의식에 장르물 쾌감 더해
외신들 “한국 콘텐츠 전성시대”

또다시 한국에서 세계를 강타한 드라마가 나왔다. 이번엔 학교로 간 좀비,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지난 설 연휴 직전에 공개됐는데 2월16일 현재 넷플릭스 공식 ‘시청시간 기록’ 차트에서 3주 연속 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2월7~13일 시청시간이 1억1324만 시간이었는데, 비영어권 2위인 콜롬비아 드라마 《카페 콘 아로마 드 무헤르》는 5184만 시간이었다. 그런데 영어 부문 1위 《애나 만들기》는 7731만 시간이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시청시간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에 비영어, 영어 부문을 통틀어 사실상 넷플릭스 주간 세계 1위라고 할 수 있다. 

누적 흥행 성과도 역대급이다. 넷플릭스는 공개 후 28일간의 시청시간을 기준으로 누적 흥행 순위를 집계한다. 현시점에서 역대 1위는 16억5045만 시간의 《오징어 게임》이다, 역대 2위는 6억1901만 시간의 《종이의 집: 파트4》다. 그리고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 후 3주 만에 총 4억7426만 시간을 기록해 3위에 올랐다. 한국 드라마들이 잇따라 역대급 기록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공개 전부터 기대작이었다. 2009년 5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웹툰이 원작이어서 이미 인지도가 있었다.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와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이 연출을, 《추노》 《7급 공무원》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쓴 천성일 작가가 극본을 맡아 더욱 기대를 키웠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韓 드라마 세 번째 넷플릭스 세계 1위 

무엇보다도 좀비물이라는 점이 해외 시청자들의 기대를 증폭시켰다. 영화 《부산행》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으로 K좀비물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부산행》은 열차로 간 좀비였고, 《킹덤》은 조선시대로 간 좀비였는데 이번엔 학교다. 

공개된 《지금 우리 학교는》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기존의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액션 장면들로 재미를 충족시켰다. 학교 안 공간들을 활용해 긴장감을 이어갔고,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로 액션의 난이도를 높였다. 학교 식당과 도서실 안에서의 액션이 특히 박진감 넘쳤다. 좀비의 움직임도 기존 좀비들에 비해 더욱 공포감을 자아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이 작품을 두고 “한국은 이런 걸 잘 만든다. 《부산행》을 본 사람이라면 좀비에 대해 한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십여 년간 이런 장르물을 만들어왔던 외국에 비해 한국은 국제적인 수준으로 본격 작업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몇 안 되는데도 벌써 “한국은 이런 걸 잘 만든다”는 평가까지 나온다는 점이 놀랍다. 그만큼 소수정예(?)로 몇몇 작품이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인데, 이번 《지금 우리 학교는》도 그렇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드라마 중에서 세 번째 넷플릭스 세계 1위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 그리고 이 작품이다.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경쟁사회의 지옥 같은 풍경을 담았다. 《지옥》은 제목부터가 ‘지옥’인데, 불합리한 믿음에 빠지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지옥이 돼가는 풍경을 담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지옥 같은 학교 풍경을 담았다.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All Of Us Are Dead》인데, 그보다는 《지금 우리 학교는》이 더 이 작품의 분위기를 잘 전달한다. 우리 학교의 현실이 지옥이라는 내용이다. 

극 중에서 한 천재 과학교사가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아들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됐는데 기존 시스템은 그 아들을 지지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당하기만 하는 아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분노 호르몬을 모아 사람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만든다는 설정이다. 학교폭력을 당했던 또 다른 학생은 학교에서 자살을 시도하며 “여기는 지옥이야, 난 그 지옥을 떠나려는 거고”라고 말한다. 좀비가 나타나기 전부터 학교는 이미 지옥이었다. 

좀비 창궐 후에 구조대가 오지 않자 그 학생은 “다들 학교는 관심도 없어. 안 그랬으면 진작 구해 줬겠지. 그렇게 당하고 살지 않게”라고 말한다. 기성사회가 그동안 학교를 지옥 상태로 방치했다는 이야기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지금 우리네 학교는 “이미 지옥” 

사실 그렇다. 우리네 학교는 과거에도 입시지옥으로 악명이 높았고 그게 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2000년대 이후 더 암울해졌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사교육이 시작돼 인성이나 시민적 덕성을 기를 여유는 사라져 갔다. 과거의 경우 교육 자체는 입시교육이어도 학교공동체 안에서 사회성을 길렀는데, 지금은 공동체 자체가 와해돼 가는 느낌이다. 학생들이 파편화됐고, 괴롭힘 속에 방치된 아이들의 사건이 수시로 나타난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선 재산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학생들의 현실이 그대로 그려졌다. 

교육이 이렇게 무너져 가는데 우리 사회는 학력, 수월성, 변별력 등에만 열을 올리면서 아이들의 영혼이 황폐해지는 것을 방관했다. 극 중에서도 바이러스를 만든 교사는 경쟁하고 공격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며, 바이러스가 그런 본능에 충실한 인간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그런 것만이 아니다. 협력하고 주위를 도우려는 본능도 있다. 그런 바람직한 의미에서의 본능을 억제하고, 오로지 주위 친구들을 밟고 올라가서 남들 위에 서라고만 가르치는 것이 우리 교육이다. 과학교사가 만든 바이러스 같은 것을 이미 우린 교육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고립되고 무너져 갔다. 

극 중에서 아이들은 아무도 자신들을 구해 주지 않을 거라며 “우리를 구할 건 우리밖에 없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이대로 아이들에게 경쟁만을 강요하며 지옥 같은 학교를 방치할까? 경쟁을 강요한다는 건 사람 사이에 서열을 나누고 그 위로 올라가라고 다그친다는 뜻이다. 그런 구조 속에서 아이들이 타자의 아픔에 둔감한 소시오패스적 인간형으로 자라난다. 좀비와 무엇이 다를까? 

이런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인데, 바로 앞의 히트작인 《오징어 게임》과 《지옥》도 모두 부정적인 현실을 그렸다. 우리 드라마는 사회적인 묘사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 사회적 묘사가 모두 지옥 같은 풍경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어쨌든 그런 사회적 문제의식에 장르물의 쾌감까지 담은 작품들이 한국에서 계속 나온다. 미국 영화매체 데드라인은 《오징어 게임》과 이 작품이 원투펀치라며 “한국이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공급자의 지위를 굳혀 가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영화매체 스크린랜트는 “한국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거대한 힘을 지니게 됐다”고 했다. 한국 콘텐츠 전성시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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