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에 몰표’ 광주·전남, 尹 승리로 침묵에 빠졌다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1 11: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전남 뜬눈…몰표에도 李 패배, 상실감과 허탈감에 말문 닫아
10년 전, 대선 직후 침묵의 도시됐던 ‘광주의 악몽’ 재현 분위기
대선 패배 책임론 대두…민주 텃밭 정치 지형 요동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0%가 넘는 압도적 표를 몰아줬던 광주·전남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석패하자 깊은 침묵에 빠졌다. 이 후보는 개표 초반 선두를 달렸지만 이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선두를 내준 채 ‘초접전’ 개표 드라마를 연출했지만 마지막 역전에 실패했다. 이 후보가 근소한 표 차이로 대선에서 패배함에 따라 뜬눈으로 밤을 샌 광주·전남 시도민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0%가 넘는 압도적 표를 몰아줬던 광주·전남은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석패하자 깊은 침묵에 빠졌다. 10일 오후 2시, 광주 금남로 1가 광주YMCA 앞 시내버스정류장. 몇몇 젊은이들이 연신 휴대폰을 보며 버스를 기다릴 뿐 정적이 흘렀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0%가 넘는 압도적 표를 몰아줬던 광주·전남은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석패하자 깊은 침묵에 빠졌다. 10일 오후 2시, 광주 금남로 1가 광주YMCA 앞 시내버스정류장. 몇몇 젊은이들이 연신 휴대폰을 보며 버스를 기다릴 뿐 정적이 흘렀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0%가 넘는 압도적 표를 몰아줬던 광주·전남은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석패하자 깊은 침묵에 빠졌다. 10일 오후 금남로, 인적과 차량 통행이 뜸해 을씨년스러웠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0%가 넘는 압도적 표를 몰아줬던 광주·전남은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석패하자 깊은 침묵에 빠졌다. 10일 오후 금남로, 인적과 차량 통행이 뜸해 을씨년스러웠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재명 석패에 호남 표심 ‘허탈’…“너무 속상해”

10일 오후 2시, 광주 동구 금남로 1가 광주YMCA 앞 시내버스정류장. 몇몇 젊은이들이 연신 휴대폰을 보며 버스를 기다릴 뿐 정적이 흘렀다. 왕복 6차선의 금남로 역시 인적과 차량 통행이 뜸해 을씨년스러웠다. 광주YMCA를 끼고 골목 안으로 찾아 간 충장로 1가 옛 충장우체국, 이른바 우다방 앞. 광주 번화가인 이곳도 인적이 드물었고, 평소 왁작지껄했던 행인들의 입가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의류판매 대리점을 운영 중인 조동하(48)씨는 “추진력이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 속상하다”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주변 상가들이 텅텅 비어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잘 하길 바랄 뿐이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곳으로부터 직선거리로 1km 남짓 떨어진 NC백화점 앞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말문을 닫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50대 한 직장인도 “뒤숭숭한 분위기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며 “이 후보의 석패 때문인지 회사 내에서도 다들 쉬쉬하며 각자의 일만 묵묵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부 김아무개(56)씨는 “근소한 표차로 이재명 후보가 낙선해 못내 아쉽다”며 “허탈감에 아예 TV뉴스를 안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마치 지난 2012년 제18대 대선 직후 ‘광주의 악몽’이 재현된 분위기다. 당시 광주·전남 유권자들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90%를 넘는 표를 몰아줬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3.53% 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이 때문에 당시 호남민들은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졌고, 대선 이후 수 일간 ‘침묵의 도시’가 됐었다.

그 당시 상실감과 허탈감은 향후 민주당에 대한 가혹한 ‘회초리’ 민심으로 변했고, 18대 대선 이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호남의 ‘녹색(국민의당) 돌풍’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호남에서 반문(反文·반 문재인) 정서도 심해지면서 19대 대선에서는 ‘촛불 혁명’이라는 바람에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광주와 전남에서 60% 가량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0%가 넘는 압도적 표를 몰아줬던 광주·전남은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석패하자 깊은 침묵에 빠졌다. 광주 동구 충장로 1가 옛 충장우체국, 이른바 우다방 앞. 광주 번화가인 이곳은 평소보다 인적이 드물었고, 왁작지껄했던 행인들의 입가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0%가 넘는 압도적 표를 몰아줬던 광주·전남은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석패하자 깊은 침묵에 빠졌다. 광주 동구 충장로 1가 옛 충장우체국, 이른바 우다방 앞. 광주 번화가인 이곳은 평소보다 인적이 드물었고, 왁작지껄했던 행인들의 입가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전남 정치지형 요동칠 듯

이번 대선에서 광주·전남은 유권자들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0%가 넘는 압도적 표를 몰아줬다. 광주·전남이 ‘민주당 텃밭’임을 정치적으로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이다. 이 후보는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 결과, 70%가량의 득표율을 보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몰표’를 받았다. 민주당 조직력이 응집력을 발휘했고 전통적인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층의 표심도 흡수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선거 막판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평가받던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전격적으로 이뤄지면서 광주·전남 일반 표심도 요동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선 결과를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광주·전남이 민주당 텃밭임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시각도 있으나, 대대적인 인적 쇄신 없이는 민주당에 대한 지역민들의 실망을 위로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다. 벌써부터 일부 커뮤니티에선 ‘초상집이어서 민주당에 대한 할 말을 지금은 참겠다’는 글이 올라오는 등 향후 시간이 지나며 민주당을 향한 반성과 성찰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지역 유권자들의 몰표 지지에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대선 결과는 호남 민심의 변화도 점쳐진다. 당장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2년 후 국회의원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물어 비상대책위 체제 아래에서 치러질 것으로 보이는 지방선거에서부터 지역 내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용퇴론 등 인적 쇄신론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또 대선 패배의 책임 소재를 가리고 이를 나누는 일은 민주당의 지역 내 역학관계는 물론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선 과정에서 벌어지는 ‘공천 룰 싸움’에도 영향을 미쳐 지방선거 입후보 예정자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지역민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주저했던 후보를 민주당이 선택한 원초적인 책임론도 인적 쇄신론과 겹쳐 지역정치를 책임지는 국회의원들 간에 나올 수 있다. 민주당 소속 한 정치권 인사는 “실망한 지역민들이 지방선거는 물론 2년 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두렵다”며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9일 오후 전남 나주혁신도시 aT별관에 마련된 제20대 대선 투표소에서 빛가람동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 9일 오후 전남 나주혁신도시 aT별관에 마련된 제20대 대선 투표소에서 빛가람동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방선거·총선 영향 불가피…국힘, 교두보 확보 보폭 확대

반면, 국민의힘은 광주와 전남에서 각각 10%를 웃도는 득표율로 교두보를 확보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득표율 집계 결과 윤석열 당선인의 광주·전남 득표율은 각각 12.72%, 11.44%를 기록했다. 이는 보수 정당 후보로는 최고 기록이다. 기존 최고 득표율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록한 광주 7.76%, 전남 10%였다.

비록 기대했던 30%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동안 지역 정치권에서 실종상태나 다름없었던 국민의힘은 무너진 지역 내 정치적 기반을 대선 승리를 발판 삼아 재정비해 6월 지방선거에서부터 ‘호남정치’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국민의당에 몸을 담았다가 대선 전 국민의힘으로 옮겨 선거를 치른 인사들도 지역 내 정치적 목소리를 키우고 정치적 기반 확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 대한 몰표와 국민의힘의 교두보 확보는 그동안 지역 내에서 제1야당 역할을 했던 정의당 위축으로 이어지고, 진보당 등 군소정당도 설 자리를 잡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초박빙의 대선 결과는 양당 정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이는 지방정치에도 그대로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지만 광주전남은 지역의 정치적 특성상 구도가 바뀌거나 큰 변화가 일지는 않을 것이다”며 “하지만 지역민의 몰표에도 정권 연장에 실패한 만큼 민주당이 진정한 쇄신책을 내놓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텃밭에서 심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