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리더’ 박지현은 ‘위기의 민주당’을 구할 수 있을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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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26살 박지현’ 카드에 정치권‧시민단체 반응 엇갈려
‘세대 교체’ 단행할 적임자 vs 당의 ‘확장성’ 떨어뜨려
더불어민주당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박지현 전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은 박 공동위원장이 지난 2월9일 이재명 대선 후보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대담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박지현 전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은 박 공동위원장이 지난 2월9일 이재명 대선 후보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대담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비대위를 전면에서 이끄는 이는 노련한 노장(老將)도 박식한 석학도 아닌, 26살의 청년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이다. 민주당의 ‘박지현 카드’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민주당의 세대교체를 이끌 적임자라는 호평도 있다. 반면 당의 명운이 걸린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보 정치인에게 지휘권을 맡긴 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대와 우려 사이, 과연 박 위원장은 민주당의 혁신을 이끌 수 있을까.

1996년생인 박 위원장의 주 무대는 여의도가 아니었다. 박 위원장은 이른바 ‘n번방’ 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추적단불꽃’ 출신이다. 대학생 신분으로 여성들의 성착취 영상을 공유한 텔레그램 ‘n번방’을 직접 조사해 디지털 성범죄의 실태를 알렸다. 이후 2020년 6월 경기도 디지털성범죄 대응 추진단에 합류했다. 당시 공동추진단장이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였다. 이때의 연(緣)이 계기가 돼 박 위원장은 민주당에 입당한 뒤 정치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박 위원장은 대선 기간 ‘이재명표 여성 공약’의 틀을 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젠더 감수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월29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도 “이재명 후보를 비롯해 여성 의원, 남성 의원 가릴 것 없이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책을 읽고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민주당 의원들의 2차 가해 의혹을 직격한 셈이다.

박 위원장의 ‘패기’는 기회를 낳았다. 대선 패배 후 후 민주당 내에서 기존 지도부에 대한 비판과 ‘586 용퇴론’ 목소리가 커지면서, MZ세대(2030세대)이자 정치 신인인 박 위원장이 ‘대안 리더’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위원장은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불법과 불의에 저항하고 싸워 줬다”며 “청년을 대표하는 결단과 행동이야말로 민주당에 필요한 정신이자 가치”라고 비대위원장 선임 배경을 밝혔다.

다만 ‘박지현 비대위 체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우선 ‘박지현 카드’가 또 다른 ‘젠더 갈리치기’ 양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대남’(20대 남성)의 호응을 얻자 민주당이 ‘이대녀’(20대 여성) 공략으로 맞불을 놓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런 가운데 ‘0선’ 정치인인 박 위원장의 리더십이나 전문성에 의문을 표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당이 어려운 시기에 비대위를 비판하거나 흔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나이가 많다고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듯 나이가 어리다고 혁신적인 인사라고 평가받을 수 없다. 결국 실력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박 위원장의 경력을 생각하면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비대위가 오는 8월 전당대회까지만 운영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박 위원장이 어떤 큰 변화를 이끄는 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어보인다”고 했다.

반면 여성계에서는 ‘50대 남성’이 주를 이루는 민주당에 ‘20대 여성’이 전면에 부상했다는 것에 기대감을 갖는 분위기다.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보다 더 세심하게 젠더 이슈나 소수자 대상 정책을 살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정치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대표되지 못했던 이유는 그간 남성이 과잉대표됐기 때문”이라며 “박 위원장이 여성과 청년의 대표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민주당 내부를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왼쪽)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왼쪽)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정치권 청년을 소비하는 시스템 탈피해야”

민주당이 여성과 청년을 일시적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새시대준비위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했다가, 지지자 반발에 부딪히자 사퇴를 종용한 바 있다. 신 전 대표는 “더 많은 청년과 여성이 정치판에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할이 다 하면 그들을 ‘쓰고 버리는’ 일들이 많다”고 했다. 이어 “정치권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야를 떠나 청년 정치인들이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정치 시스템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려와 기대 속, 박 위원장은 ‘정편 돌파’ 의지를 밝혔다. 박 위원장은 지난 14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와의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나이도 어린 게 뭘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들 많은 것 저도 잘 알고 있다”라면서도 “적어도 이 나라가 닥친 위기를 알고, 이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4선·5선 의원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성폭력, 성비위,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과 함께, 여성과 청년 공천 확대 등을 강조하며 변화와 쇄신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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