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산된 ‘광화문 시대’…尹, ‘졸속’ 비판에도 광화문 포기한 이유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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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시대, 문제없다”더니 11일 만에 ‘폐기’…보안‧예산 벽 못 넘어
‘졸속 공약’ 논란에 여론도 ‘흔들’

“퇴근길에 남대문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2017년 4월24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 후보)

“기존의 청와대는 사라질 것입니다. 광화문에서 대통령과 국민이 항상 만나고 소통할 것입니다.” (2022년 1월27일 윤석열 국민의힘 20대 대선 후보)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각각 후보 시절 ‘광화문 시대’를 약속하며 한 말이다. 두 사람 모두 당선 이후 공약 이행을 추진했지만, 결국 ‘광화문 대통령’ 구상은 최종 무산됐다. 윤 당선인이 집무실을 서울 광화문이 아닌 용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하면서다. 윤 당선인의 계획대로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 국방부청사로 옮겨지면, 역대 대통령들이 그려온 ‘광화문 시대’의 꿈은 영영 좌절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광화문 공약 검토 끝냈다”더니 돌연 “광화문 시대는 재앙”

‘광화문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 온 윤 당선인이 관련 공약을 최종 폐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산과 보안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 당선인은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을 확정한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역대 정부에서도 이전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경호상의 문제 등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당선 이후 집무실 이전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쉽지 않은 문제임을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윤 당선인은 당초 염두에 뒀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나 외교부 청사를 배제하고 용산 국방부 청사를 최종 이전지로 선택한 이유로 △이미 있는 지하벙커를 활용할 수 있는 점 △이전 비용이 저렴한 점 △교통 통제가 용이한 점을 꼽았다. 윤 당선인은 “당선인 신분으로 보고를 받아보니 광화문 시대는 시민들에게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이 언급한 위 사유들은 ‘광화문 시대’ 공약 발표 당시부터 지적돼 온 문제였다. ‘광화문시대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집무실 이전 계획을 구체화하려던 문재인 대통령 때에도 보안상 어려움과 예산 문제가 거론됐다. 당시 위원장을 맡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장은 “청와대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 기능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공약을 공식 백지화한 바 있다.

그런데도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1월27일 광화문 시대 공약을 발표하면서 “(광화문 이전은) 충분히 검토됐다.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다. 당선 이후에도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을 통해 “광화문 집무실은 당연히 공약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다. 공약을 발표했을 때 보안과 경호에 대한 점검은 마무리된 상태”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윤 당선인의 이 같은 발언은 ‘허언’이 된 셈이다.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용산 국방부 청사(윗 사진) 모습과 청와대 자료 사진 ⓒ 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용산 국방부 청사(위) 모습과 청와대 자료 사진 ⓒ 연합뉴스

‘잘할 것이다’ 절반 못 넘는 尹…‘용산 계획’에 발목 잡히나

문제는 여론이다.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이 ‘졸속’이라는 비판이 일면서다. 광화문 집무실 구상은 과거 김영삼 정부 때부터 논의되어 왔지만, 용산 집무실 계획은 최근 들어 탄력을 받아 여론 숙성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효하다. 실제 윤 당선인이 용산 이전 계획을 확정하는 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당선인 측 실무진이 공약을 다듬는 과정에서 용산을 후보지로 검토했으나 당사자인 국방부는 물론 윤 당선인에게도 공식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이전TF를 맡은 윤한홍 의원은 지난 16일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아직 당선인에 보고된 바 없다”고 했다. 용산 이전 계획을 확정하기 나흘 전까지도 소문만 무성한 상태였던 것이다.

당장 여권에서는 용산 이전 결정이 ‘졸속’이라며 “무엇이 그리 급한지 납득할 수 없다”고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집무실 이전 계획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소통하는 청와대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음을 망각한 것인가.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겠다는데 이것이야말로 제왕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도 “당선 열흘 만에 불통 정권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레임덕이 아니라 ‘취임덕’에 빠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심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윤 당선인에 대한 국정수행 긍정 전망이 50%선 아래로 내려가면서다. 21일 발표된 리얼미터-미디어헤럴드(14~18일 2521명 대상) 조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이 국정수행을 잘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전주 대비 3.5%포인트 떨어진 49.2%로 집계됐다. 같은 조사에서 이 같은 수치는 역대 당선인들을 통틀어 최저 기록이다. 윤 당선인 취임 이후 열흘 동안 집무실 이전 이외에는 별다른 이슈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여론이 이번 논란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여론조사 개요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 리얼미터 제공
ⓒ 리얼미터 제공

국정운영 초기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윤 당선인으로선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에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광화문 시대’ 공약에서 장소만 바뀌었을 뿐,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를 줄곧 내면서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서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알고 있지만 용산 이전 결정을 신속히 내리고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내린 결단”이라고 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을 향해 “문 대통령의 ‘광화문 대통령’ 약속을 이제라도 지킬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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