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절집’ 선암사…“선암매에 흠뻑 취했다”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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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의 봄…600년 된 ‘매화 향기’ 가득
3년째 계속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음은 여전히 혹독한 겨울이지만 어느덧 남도에 봄이 왔다. 자연의 순리일까. 겨울 가뭄과 꽃샘추위의 시샘에 따른 ‘계절 지체’에도 불구하고 봄의 상징과도 같은 매화가 전남 순천의 산사에 활짝 피었다. 선암사 무위전 담벼락에 핀 홍매화. ⓒ시사저널 정성환
3년째 계속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음은 여전히 혹독한 겨울이지만 어느덧 남도에 봄이 왔다. 자연의 순리일까. 겨울 가뭄과 꽃샘추위의 시샘에 따른 ‘계절 지체’에도 불구하고 봄의 상징과도 같은 매화가 전남 순천의 산사에 활짝 피었다. 선암사 무우전 담벼락에 수줍게 핀 홍매화. ⓒ시사저널 정성환

3년째 계속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음은 여전히 혹독한 겨울이지만 어느덧 남도에 봄이 왔다. ​봄날, 최고의 향긋한 절집은 전남 순천 선암사다. 조계산(887.2m) 동쪽 자락에 자리한 선암사는 1500년 역사의 고찰이다. 절간이 이렇게 호사스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시사철 꽃향기가 넘치는 사찰이다. 수종만 무려 80가지가 넘는 대한민국 최고의 힐링 산사이다. 선암사는 봄바람 불면 자목련, 영산홍, 동백, 홍매화, 철쭉이 계절을 이어가며 경내를 단장한다. 3월이면 사찰을 묵묵히 지키는 수령 600년 된 매화나무는 그윽하다. 4월에는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린 올벚나무에 초롱불 같은 흰 벚꽃이 매달린다. 

염불과 목탁 소리 흐르는 마당만 거닐어도 마음은 향기로워진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국내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선암사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맘때 천년 고찰 경내에 내려앉은 봄은 발길을 붙들기 충분하다. 자연의 순리일까. 극심한 겨울 가뭄과 꽃샘추위의 시샘에 따른 ‘계절 지체’로 예년보다 2~3주 늦었지만 봄의 상징과도 같은 매화가 순천의 산사에 수줍게 피었다.

24일 정오쯤, 순천 선암사를 찾았다. 선암사 매표소에서 계곡을 따라 절간에 이르는 흙길은 좌우로 참나무와 야생차나무가 빽빽한 숲길이다. 완만하게 휘어진 모양이 운치있어 ‘가다가 돌아봐도 예쁜 길’이다. 선암사는 다른 사찰에 비해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이날은 평일인데도 예상외로 많은 상춘객들이 산책로를 따라 올라간다. 오르는 길은 조금은 멀다할 수 있겠으나 길은 가파르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으며 산보하기 딱 좋은 코스다. 가다보면 많이 봐왔던 승선교(보물 제400호)도 볼 수 있다. 흐르는 물은 어찌 그리 맑은 지 한 모금 먹어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다.

선암사 매표소에서 계곡을 따라 절간에 이르는 흙길은 좌우로 참나무와 야생차나무가 빽빽한 숲길이다. 가다보면 많이 봐왔던 승선교(보물 제400호)도 볼 수 있고 흐르는 물은 어찌 그리 맑은 지 한 모금 먹어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다. ⓒ시사저널 정성환
선암사 매표소에서 계곡을 따라 절간에 이르는 흙길은 좌우로 참나무와 야생차나무가 빽빽한 숲길이다. 가다보면 많이 봐왔던 승선교(보물 제400호)도 볼 수 있고 흐르는 물은 어찌 그리 맑은 지 한 모금 먹어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다. ⓒ시사저널 정성환

마침내 승선교를 지나 절집에 도착했다. 경내에 들어서자 백매와 홍매가 조화롭게 활짝 피면서 사찰 지붕이 온통 꽃으로 덮였고, 경내에는 매화 향기가 가득했다. 절의 창건 당시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홍매화 한 그루가 쇠잔해진 몸뚱아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무우전(無憂殿) 돌담 가에 수줍게 드리웠다. 이 담장을 따라서 피어난 20여 그루 매화나무는 매년 3월이면 장관을 이룬다. 매화 밑동에는 이끼가 붙어 있고, 일부 나무껍질이 일어서서 한눈에도 나무가 견뎌 온 오랜 세월을 짐작할 수 있다. 원통전 담장 뒤편에 활짝 핀 백매화는 무채색 지붕과 맞물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선암사 종무소 측은 꽃샘추위와 씨름 끝에 매화가 움을 트고 만개했다고 전했다. 상춘객들은 다들 차분하게 한껏 차오른 매화 기품을 즐겼고, 출사 나온 사진동우회 회원들은 매화 자태를 찍느라 분주했다. 전북 전주에서 왔다는 김성관(58)씨는 “매년 사찰에서 우아함을 더해 매력적인 향기를 품은 매화를 보면서 봄나들이도 즐기고, 힐링의 시간을 갖기 위해 산사를 찾는다”며 “백매와 홍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있으면 그간 코로나로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린다”고 말했다.

​경관적 가치에서 선암매를 앞설 나무는 아직 없다. 문화재청에서 꼽은 우리나라 4대 매화 가운데에 첫손에 꼽는 나무는 2007년 11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선암사 선암매’다. 원통전 담장 뒤편에 활짝 핀 백매화는 무채색 지붕과 맞물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경관적 가치에서 선암매를 앞설 나무는 아직 없다. 문화재청에서 꼽은 우리나라 4대 매화 가운데에 첫손에 꼽는 나무는 2007년 11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선암사 선암매’다. 원통전 담장 뒤편에 활짝 핀 수령 650년의 백매화는 무채색 지붕과 맞물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토종 매화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선암사 무우전(無憂殿) 돌담 가에 드리운 홍매화. 24일 낮, 전국에서 온 상춘객들이 우아함을 더해 매력적인 향기를 품은 매화를 보면서 봄나들이도 즐기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토종 매화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선암사 무우전(無憂殿) 돌담 가에 드리운 홍매화. 24일 낮, 전국에서 온 상춘객들이 우아함을 더해 매력적인 향기를 품은 매화를 보면서 봄나들이도 즐기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옛 선비들이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은은히 풍기던 매향을 좇아 탐매(探梅)하던 토종 매화는 대개 산속 절집 외딴 곳에 숨어 있어 개량종보다 보름 정도 늦게 핀다. 시기는 3월 말에서 4월 초쯤이다. 선암사 선암매, 화엄사 흑매,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와 덕산서원 산천재 남명매, 약간 위로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등이 유명하다. 이 중 홍매인 선암매는 거구에 기품까지 갖춰 으뜸으로 친다.

경내 원통전~각황전 담길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길에, 주로 종정원(宗正院) 돌담길에 있는 이들 매화나무를 가리켜 ‘선암매’라고 한다. 선암사 경내에는 수령이 350~650년에 이르는 토종 매화나무 50여 그루가 곳곳에 흩어져 서식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는 수령 650년, 나무 높이 11m의 원통전 뒤 백매화이다. 

경관적 가치에서 선암매를 앞설 나무는 아직 없다. 문화재청에서 꼽은 우리나라 4대 매화 가운데에 첫손에 꼽는 나무는 2007년 11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선암사 선암매’다. 그해 가을에 4대 매화를 일제히 지정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오래 되고, 가장 크며, 여전히 가장 싱그러운 자태를 유지하는 나무는 단연 선암매다. 빛깔이 아름다워 매화 중에서도 ‘명품’에 속한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선암사 경내는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나무들이 종정원 담장을 따라 고운 꽃그늘을 드리운다.

뒤쪽 승방 앞에 있는 작은 연못은 하얀 매화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낙화는 또 다른 꽃으로 탄생한다. 이곳 해설사는 “선암매를 보면 그 해 봄을 다 본 것이고 우리나라 매화를 다 본 것”이라고도 했다. 매화 가운데 으뜸이라는 것이다. 선암매의 향기는 남달리 강하여 사찰 경내를 가득 채우고 산모퉁이 바깥까지 퍼지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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