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대통령’ 박근혜의 존재감이 커진 이유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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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장 놓고 ‘朴 입김’ 세져…尹, ‘MB계’ 중용에 ‘친박계’ 반발 기류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며 이 같은 주문을 읽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 파면된 대통령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도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5년 뒤, 박 전 대통령이 다시금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정치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과 선을 그어왔던 국민의힘 수뇌부도 ‘박심(朴心)’을 읽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촛불’과 함께 사그라들었던 박 전 대통령의 존재감이 다시 커지기 시작한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24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사저에 도착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사저에 도착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시장 선거의 열쇠는 ‘朴心’?

정치권이 주목하는 것은 다가오는 6·1 지방선거다. 공교롭게도 정치권의 최대 이벤트인 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퇴원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킹메이커’가 부상하듯 지선이 다가오면 각 지역의 민심을 좌우하는 ‘유지’의 입김이 커진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보수의 텃밭인 TK(대구‧경북)에서만큼은 여전히 ‘정치 거물’로서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대구시장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면서 박 전 대통령 ‘몸값’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민의힘 내 상당수 주자들이 대구시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출마 후보군으로는 권영진 현 시장과 홍준표 의원, 김재원 최고위원, 정상환 변호사,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대구에 사저를 마련한 건 우연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유영하 변호사의 대구시장 출마설이 불거지면서다. 박 전 대통령의 대구 사저 입주와 함께 유 변호사 또한 대구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유 변호사를 공개 지지하며 정치권에 재등판할 경우 선거판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 수 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최소한 TK에서만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국적인 호감도와는 별개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내려온 뿌리 깊은 유산인 셈”이라며 “반면 윤석열 당선인은 TK에서는 비주류다. (지선에서는) TK 주류인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윤 당선인에 비해)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대구 정가에서는 ‘대구시장의 열쇠를 박 전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TK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한 의원은 “현재로서는 누가 (국민의힘 후보로) 대구시장 선거에 나설 것인가 예측이 어렵다. 강점이 저마다 뚜렷한 예비 후보들이 나선 상황”이라며 “이런 판세에서는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 한 번, 박 전 대통령의 덕담 한마디가 여론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24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 앞 천막 기자실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왼)과 같은 날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 국회사진기자단·시사저널 최준필
24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 앞 천막 기자실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왼)과 같은 날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 국회사진기자단·시사저널 최준필

‘정치초보’ 尹이 ‘보수 주류’ 朴 존재감 키워

정치권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의 부상이 윤 당선인의 불안정한 지지 기반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 당선인은 정치나 행정 경험이 전무한 ‘0선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압도적인 ‘정권교체 민심’ 덕분이었다. 이른바 ‘반문(反文) 연대’의 힘이 컸다. 뒤집어 다른 후보들에 비해 윤 당선인 개인의 팬덤(fandom)을 만들어갈 시간도 기반도 부족했던 셈이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이른바 ‘친박(親朴) 연대’라는 거대한 팬덤을 자랑한다. 이들은 탄핵 국면에서도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며 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중 일부 친박계 보수 유권자들의 경우 ‘국정농단’을 수사했던 윤 당선인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이 끝났고 박 전 대통령도 사면된 상황에서, 이들이 윤 당선인을 지지할 명분도 이유도 사라진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부상이 국민의힘 계파 갈등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윤 당선인의 최측근 그룹으로 MB(이명박)계 의원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당내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이 같은 상황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윤 당선인이 국정에서 실책을 범하거나,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다만 정치 신인인 윤 당선인이 대통령직을 원만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그룹은 예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공화정, 법치주의를 그리워하는 이들이다. 반면 MB계 정치그룹은 경제와 실용을 내세운다. 두 그룹이 중시하는 가치가 전혀 다른 셈”이라며 “국내 보수 유권자의 결이 생각보다 크게 갈린다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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