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실핏줄’이 흔들린다
  • 이석 기자·이장수 뉴프레임연구소 연구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8 10:00
  • 호수 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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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주저앉은 ‘빚더미 자영업자’가 최대 뇌관…
자영업자들 “배달 플랫폼 문제 심각” 한목소리

‘경제 개미’로 불리는 자영업자들이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3년째 지속되면서 사업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한국 경제의 근본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실핏줄 경제’를 지탱해온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해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조치를 최근 잇달아 실시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수십만 명씩 나오고, 중환자 증가 추세가 이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방역 당국은 거리 두기 완화 방침을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한국의 ‘실핏줄 경제’를 지탱해온 자영업자들의 사업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한 곱창집 모습ⓒ연합뉴스

그래서일까. 경제 상황은 델타 변이가 한창일 때보다 많이 호전된 모양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소비지출전망(CSI)은 올해 3월 106을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인 2020년 4월(74) 대비 32포인트 올라갔다. 같은 기간 소비자심리지수(CCSI) 역시 72.5에서 103.2로 크게 상승했다. 관련 지수가 100 이상이면 낙관적, 100 이하면 비관적 의미다. 겉으로 봤을 때는 소비심리가 많이 좋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보복소비와 정부 지원에 따라 소비심리가 일시적으로 개선됐지만, 본격적인 경기 회복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실장은 “현장에서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면서 “정부 정책 역시 이런 현장 상황에 맞게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상공인의 매출 수준을 알 수 있는 매출 실적은 최근에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준 매출 수준은 37.8로 전월(41.6) 대비 3.8포인트 추가 하락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1월(66.7)과 비교하면 28.9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가게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자영업자 대부분이 현재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매출 감소는 운영자금 부족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12월까지만 해도 자금 사정은 64.8을 기록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3월에는 31.3으로 3개월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올해 1월 자금 사정은 43.0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된 지난 2년 동안 자영업자들의 자금 부족 상황이 계속됐는데, 대출을 통해 대부분 적자를 메워왔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사저널이 현장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관악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유덕현 사장은 “그동안 대출로 연명해 왔지만 이제는 ‘한계상황’까지 왔다. 가게 문을 닫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 “최근 정부가 코로나19 거리 두기를 완화했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 감소→운영자금 감소→대출→폐업’ 악순환 반복

서울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정인성 사장도 “전국 2만2000개 당구장 가운데 이미 7000곳 이상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폐업했고, 추가적으로 20~30%가 현재 폐업을 고려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누적된 영업손실이나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이 하락했고, 고정지출비 등을 견디지 못해 폐업까지 해야 하는 분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영업자가 집중적으로 양상된 것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다.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한 직장인 상당수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창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성공률은 높지 않았다. 10년 후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내수시장이 크게 악화됐다. 자영업자들은 ‘생계형’으로 전락했다. ‘직원보다 못한 사장’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알바라도 쓸 수 있다면 상황이 나은 편이다.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직원을 내보내고 혼자 매장을 지키는 ‘1인 사장’이 현재 적지 않다. 김구철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소장은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창업시장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수수방관했다”면서 “최근의 자영업자 문제는 그동안 축적돼 있던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를 거치며 폭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익성이 나쁘니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제1금융권에서 시작된 대출은 제2금융권을 넘어 사채로까지 넘어갔다. 고장수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미 더 이상의 대출이 어려운 사람이 많다. 가족과 지인에게까지 돈을 빌렸고, 결혼 패물과 아이들 돌반지도 내다 팔았다. 돈이 나올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서있다”며 “많은 자영업자가 연체 또는 개인 파산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자영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의 대출은 한계상황까지 왔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대출 규모는 173조4729억원(2022년 1월 기준)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매년 80조원 이상씩 늘고 있다. 코로나19 직전 3년 평균치(42조1000억원)와 비교하면 증가 폭이 두 배나 커진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를 세세히 뜯어보면 상황은 더 안 좋다. 금리 2%로 자금을 조달한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3~4%대 대출은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까지 상승하면서 자영업자의 빚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향후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자영업자들의 이자 부담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최근 자영업자의 대출 상환기일을 또 한 차례 연장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자영업자 빚 탕감을 위해 ‘배드뱅크’ 설립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도 임시처방일 뿐이다. 자영업자의 몰락을 막을 근본 처방은 아직까지도 요원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와 관련된 ‘깜깜이 정보’를 한결같이 지적한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자영업자 관련 연구나 신뢰할 만한 기초 통계가 부족하다. 수익성이나 개·폐업 동향과 같은 정보가 아직까지 많지 않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자영업 관련 전략을 백날 짜봤자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 관련 연구·통계 마련 시급

배달 플랫폼 문제도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내 배달시장은 폭풍 성장을 거듭했다. 2017년 2조원가량이던 배달 거래액 규모는 지난해 25조원을 웃돌았다. 5년 새 10배 이상 시장이 성장했다. 배달의민족(배민)과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 기업도 덩달아 외연이 커졌다. 업계 선두업체인 배민의 경우 7년 만에 매출이 70배나 증가했다.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배달 매출은 크게 증가했지만 자영업자들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다. 배달 플랫폼이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시사저널이 만난 자영업자들은 한결같이 토로한다. 이들은 “배달 플랫폼 기업들의 횡포가 심각한 수준이다. 주문이 많이 들어올수록 플랫폼 업체가 돈을 더 벌게 되는 게 현재의 시장 구조다”면서 “향후 플랫폼 공정화법 등을 통해 거대 기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상황에서 배달 플랫폼들이 최근 배달 중개 수수료를 일제히 인상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훈 창업통TV 대표는 “인상 수수료를 기준으로 손익계산을 해보니 일부 업종은 적자가 불가피하다. 수수료 인상이 향후 자영업자 문제의 최대 뇌관이 될 수 있다”면서 “그동안 누적된 자영업자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부분부터 풀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월12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한 후 사저 인근을 찾은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자영업자가 윤석열 정부의 ‘아픈 손가락’ 되나

첩첩산중 악재에 경제정책도 ‘발목’ 우려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영업자의 몰락이 5월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아픈 손가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대선 당시 자영업자 단체들은 윤석열 후보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였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100% 손실보상금과 방역지원금 1000만원을 약속했다.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새 정부의 출범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무조건 막기만 했던 현 정부보다 자영업자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새 정부가 강구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자영업자 단체들도 최근 윤석열 당선인의 임기 시작과 동시에 손실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을 발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상황이 만만치 않다. 소비자물가는 갈수록 치솟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물가가 처음 3%대를 돌파했다. 올해 3월에는 4.1%까지 치솟았다. 4%대 물가상승률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3개월 만이다. 최근 계속된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까지 겹치면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정책을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영업자들의 몫이 된다. 자영업자가 무너질 경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지지층이 이탈할 수 있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최근 회의에서 “민생 안정 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3월22일 열린 첫 간사단 회의에서 윤 당선인이 강조한 것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빈곤 탈출 방안을 신속하게 수립하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최근 코로나19 피해 보상을 위한 2차 추경안을 새 정부 출범 이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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