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지갑’ K직장인, 새 정부에서도 ‘찬밥’ 될까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22.04.25 10: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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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정 기여도 높지만 정책적으로 ‘사각지대’
“정치권이 목소리 큰 이익집단에만 귀 기울여”

“착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지만 정부나 정치권은 목소리 큰 이익집단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직장인들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 부담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30대 직장인의 말이다. 모두가 권리를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묵묵히 국가 재정을 떠받치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오히려 정책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불만이다. 한 달여 후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지만 ‘K직장인’들의 기대감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직장인들의 세 부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5년을 분석한 여러 수치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고용노동부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16~21년) 동안 근로자들의 임금은 17.6% 증가했다. 이에 반해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는 두 배인 39.4%나 올랐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직장인에게서 걷은 근로소득세는 47조2000억원이다. 2017년(34조원)에 비해 38.9% 증가했다. 근로소득세는 말 그대로 일해서 번 돈에 매기는 세금으로 월급에서 원천징수된다. 흔히들 말하는 ‘통장에 들어오기도 전에 떼이는 돈’이다. 연말정산 신고 근로자 중 37.2%는 과세기준에 미달해 아예 세금을 내지 않았다.

ⓒ시사저널 박은숙
4월20일 서울 여의도 거리가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직장인 세금 줄이는 정책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런 점에서 ‘부의 재분배를 이룬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지만, 세금을 매기는 기준인 ‘과세표준’이 15년간 사실상 거의 제자리였다는 점은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기준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근로자 부담만 커졌기 때문이다. 해당 과세표준이 적용되던 2008년 서울시 택시요금은 현재의 절반인 1900원 수준이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물가 상승에 따라 근로자 소득도 변하는데 과세표준은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누진세율을 적용하다 보니 임금이 올라가도 세율 부담이 커진다”면서 “물가상승률이나 임금 인상분을 연동해 신축적으로 과표 구간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인’이라는 집단은 고용 형태나 직장 규모, 연봉 등이 상이해 하나로 통칭해 묶기 어렵지만, 정책적 소외 경험은 꼭 초고소득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9월 정부는 국민지원금을 나눠주며 받을 수 있는 자격을 1인 가구는 월 건강보험료 17만원 이하인 경우, 4인 외벌이 가구는 31만원 이하인 경우로 한정했다. 지원금은 없어도 되는 돈일 수 있지만 집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에서 정부는 그 대상을 3인 이하 부부합산 월 888만원 이하로 정했다. 해당 기준은 세전소득으로 세금을 떼면 실제 수령액은 더욱 내려간다. 이런 가운데 주택담보대출비율(LTV)까지 제한해 중산층이 집을 살 길이 더욱 좁아졌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어느 나라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과세정책 등은 존재하지만 이 같은 사례들에 해외 사례들을 그대로 적용해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예를 들어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정부도 소득세 20%를 매기는 억만장자세 도입을 추진한다고 했으나, 이는 순자산 1억 달러(1225억원)가 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대한민국은 건강보험제도가 탄탄하게 잘돼 있다’고 자랑스럽게 외치는 이면에도 직장인들의 보이지 않는 땀과 노력이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건강보험료 수입에서 직장가입자가 낸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5.6%에 달했다. 2017년 6.12%였던 건강보험료율은 매년 조금씩 오르다 올해는 6.99%가 됐다. 경총은 4월12일 ‘사회보험 국민부담 현황과 새정부 정책 혁신과제’를 발표하며 정부가 보장성 확대를 추진한 결과 과도한 의료  이용량을 부추기게 됐다며 중증·희귀질환 중심의 질적 보장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보험을 적용한다면 경증까지 폭넓게 하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희귀병이나 중증 수술 등에 적용해야 납부하는 이들도 납득이 간다는 것이다. 손석호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 사회정책팀장은 “건강보험료 인상은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서 해야지 정책 목표만 생각하면 국민경제와 따로 놀 수밖에 없다”며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과 채우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상황에서 보험료를 올리면 지속 가능하기 어렵고 사회보호 혜택 확대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묵묵히 일하는 이들 챙기는 게 정부 역할”

나가는 돈은 많은데 물가도 오르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3월 외식 물가는 전년 대비 6.6% 올라 1998년 4월 이후 23년11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사내식당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 점심 한 끼에 1만원씩 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표와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설적으로 숫자가 적지 않은 직장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유리한 정책을 펼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어느 정부건 세금이 필요한데 직장인들만큼 확실한 세원은 없다. 직장인들의 세금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기 어렵다는 얘기다. 추광호 실장은 “직장인들은 소득이 투명해 탈세 여지가 적은 만큼 정부 입장에서 세원 확보가 쉽지만, 민간경제 및 소비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소득세는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숫자는 많지만 조직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인 직장인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정치권에 덜 가닿는다는 점이다. 직장인 및 중산층의 표는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지만, 분산된 이들의 주장은 평소에 덜 부각된다. 한 중소기업 부장은 “정치인들은 조직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생각이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보다 조직된 집단의 확실한 목소리를 더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약 두 달 후엔 지방선거가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선심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이지만, 직장인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정책팀장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는 월급쟁이들은 국가경제와 서민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데, 여유가 없어 대부분 목소리를 내지 않다 보니 정책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며 “드러내고 목소리 큰 이들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게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챙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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