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적힌 언어유희를 즐겨라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2 11:00
  • 호수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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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 대한 자조와 풍자 담은 《김을파손죄》 개최
자기 업종의 매너리즘과 운명의 고통 반추하는 단서

SBS문화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은 2012년부터 ‘올해의 작가상’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선정된 후보 작가에 연령제한을 두진 않지만, 매해 40대 중반 전후의 후보자 4명이 줄곧 선정돼 왔다. 신진작가보다는 화단에서 검증을 거친 중견작가를 고르다 보니 연령의 평균치가 균질하게 도출됐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60대 초반 김을 작가(1954)가 후보자로 선정된 2016년이었다. 그가 40대 작가들과 나란히 후보자에 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으레 환갑을 넘긴 미술가의 작품에서 기대되는 높은 관념성이나 중후한 질감과는 다른 노선을 걸어온 이력 덕이 크다. 그의 출품작 중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높다란 전시장 벽에 드로잉 1450여 점을 ‘은하수’ 모양으로 빼곡히 채운 드로잉 설치물도 있고, 아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이나 프라모델 따위로 자신의 작업실을 전시장 안에 재현한 공간 작업도 있다.

ⓒOCI미술관 제공
관객의 질문을 받고 있는 작가 김을ⓒOCI미술관 제공

2016년 ‘올해의 작가상’ 수상하지 못한 이유

무엇보다 2001년부터 1년에 1000점 이상을 목표로 거의 매일 드로잉을 완성한다는 그의 작가 생활은 연령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이런 조건들을 따질 때 그해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가 김을이 확실하리라 나는 봤다.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갔고 수상은 다른 이에게 돌아갔다. 결과가 나온 후 되돌아보니 외국인 심사위원이 참여하는 이 수상 제도의 조건이 김을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드로잉의 대가로 분류되는 그의 드로잉 특징 하나를 꼽자면 그림에 문장을 적어 넣는 것이다. 때론 삽화 없이 문장만 적은 드로잉까지 있다.

당시 출품작 중에는 가령 아무런 그림 없이 ‘생각은 깊게 그림은 대충’처럼 표어를 흉내 낸 농담 같은 드로잉 작품도 있다. 창작 행위에 대한 다소간의 자조와 풍자를 표어의 형식 내지 구어체로 적는 김을의 문장을 외국인 심사위원이 이해했을 턱이 없다. 김을의 문장이 담는 해학과 말의 뉘앙스는 작품 완성도의 5할 이상을 차지할 때가 많은데, 한글 독해가 되지 않는 이가 작품의 진가를 판정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김을의 작품세계를 정의하는 일관된 키워드를 꼽자면 확장된 드로잉, 드로잉에 적힌 언어유희, 언어유희에 담긴 미술가의 자의식쯤 될 게다. 그리고 이 셋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나타난다.

《김을파손죄》 전시포스터ⓒOCI미술관 제공

최근 조계사 인근의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김을파손죄》(4월7일~6월4일, OCI미술관)는 전시 제목에 본인의 이름을 넣어 ‘기물파손죄’를 연상시키려고 전시의 대문부터 언어유희를 도입했다. 일기 쓰듯 매일의 날짜를 적은 드로잉을 3열 혹은 2열로 전시장 벽에 둘러쳐서 창작의 성실성을 우회적으로 확인시키기도 했다. 출품작 여럿에서 작가의 자의식이 반복해서 관찰되는 전시회인 것이다. 왠지 어려운 말처럼 들릴 작가의 자의식을 풀어 말하면 이렇다. 작품 외에는 베일에 가려진 미술 창작자에 관해 작가 자신이 털어놓는 고백 정도로 생각해도 되겠다.

미술사에서 작가의 자의식을 투영하는 표준 도상이 있다. 사실주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을 비롯해 바로크 시대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로 유명한 얀 베르메르의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까지 모두 그림 속에 모델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을 그려 넣어 창작자의 자의식을 표현했다. 특히 ‘화가의 작업실’은 대를 이어 현대 미술가들도 캔버스에 올리는 단골 주제였다.

김을이 택한 ‘화가의 작업실’은 2016년 ‘올해의 작가상’에서도, 올해 OCI미술관 개인전에서도 전시장에 자신의 작업실을 통째로 재현한 입체 설치물로 구현됐다. 창작 중인 자신을 묘사한 게 아니고, 그의 창작 배후가 되는 시공간을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방법을 썼다. 이런 방식은 사적인 공간에 관객을 들여, 벽 위에 가지런히 매단 공구의 배열 하며, 탁자 위에 널려있는 붓과 팔레트 하며, 벽에 글로 적어 넣은 작가의 다짐 하며, 작품 완성에 이르기 전까지 미술가의 다소 어수선한 고민과 속내로 제3자를 들여놓는 효과가 있다. 예술가와 일반인 관객 사이의 형식적인 위계를 낮추려는 의사처럼 보인다.

작가의 자의식은 전시된 드로잉의 비속어가 섞인 글들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드로잉은 너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 ‘그림이 필요 없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길’ ‘그림, 이 새끼들!!’까지…. 예술 창작을 대하는 작가의 다소 상호모순적인 진술을 보며 일반인 관객은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동료 예술가들이라면 예술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주장했다가 예술이 필요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뒤집는 모순된 농담에서 업계 관계자만이 아는 공감의 유머를 맛봤을 것이다.

ⓒOCI미술관 제공
자신의 작업실을 전시장에 재현해 놓은 설치물. Twilight Zone StudioⓒOCI미술관 제공
ⓒOCI미술관 제공
일기 쓰듯 매일 그린 드로잉을 벽에 이어붙인 전시장 전경ⓒOCI미술관 제공

민머리 얼굴 자화상, 작품에 자주 등장

작가의 자의식은 그림에 쓴 문장 말고도 그가 작품에서 반복해 쓰는 이미지로도 표현되고 있다. 많은 작품에 묘사된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 도상을 보자. 빗물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이 물방울은 작가가 창작 과정에서 쏟는 눈물의 양을 빗댔을 것이다. 예술 창작의 고충을 무거운 관념으로 제시하지 않고 귀여운 눈물방울로 대체한 재치에서 김을이 아래 세대 미술가와 한 묶음으로 엮이는 고리가 생긴다. 젊은 팝아트 작가마다 자신을 표상하는 캐릭터를 발명해 두는 형편인데, 팝아티스트가 아닌 김을도 자신과 연관된 캐릭터가 있는 60대 작가다. 그의 캐릭터는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민머리 얼굴 자화상이다. 자신을 표현한 도상의 입가에 넣은 주름은 그의 연륜에 귀여움을 더한다.

비평을 업으로 삼는 나는 이미 그의 작업을 줄곧 봐온 탓에 같은 주제의 동어반복에서 단조로움도 느꼈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의 결말부 의미를 나는 몇 달 전부터 곱씹고 있는 중이다. 운명의 고통 앞에 무너진 바냐 아저씨를 소냐가 위로하며 하는 “삼촌, 우리 힘을 내서 살아가요. 이 길고 긴 낮과 밤을 쉼 없이 살아나가요. 조금만 더 참으시면 되는 거예요. 머지않아 편안히 쉬게 될 거예요.” 이 대목은 생의 조건에 대한 통찰을 넘어 창작의 고통에 관한 격려처럼 내겐 이해된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그래도 그려야만 해~!!’ 김을의 어떤 드로잉에 적힌 이 익살맞은 글은 소냐의 대사와 비슷한 울림이 있다. 김을 개인전은 보는 이가 자기 업종의 매너리즘과 운명의 고통을 반추하는 단서가 되리라 본다. 그렇다고 이런 정공법식 전시 감상법만 정답인 것은 아니다. 그림에 적힌 언어유희와 경쾌한 드로잉을 즐기며 시간을 써도 족하다. 미술이란 게, 그리고 미술에 대한 비평이란 게 해보니까 뭐 별 게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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