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과 반대로 달리는 한국의 집값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2 09:45
  • 호수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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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금리 인상에 따라 시장 하방 압력 vs 美·EU, 주택과 토지 가격 급등

5월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분기 부동산 동향 보고서를 통해 전국적으로 시장이 하향 안정 국면에 있다고 밝혔다.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되면서 매매가격 상승률이 둔화됐고, 전세가격 역시 신규 주택 공급에 의한 하방 압력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일부 지역의 경우 향후 임대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금리 인상에 따른 하방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몇 년간 급등세를 이어가던 주택시장이 안정 국면을 거쳐 하락 국면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최근 계속된 금리 인상으로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하방 압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의 부동산은 상승세 를 이어가고 있어 주목된다. 사진은 미국 브루클린 지구의 한 주택업소ⓒEPA 연합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업소ⓒ연합뉴스

부동산 가격 상승 원인은 국가별로 다양

하지만 많은 국가의 주택 가격은 여전히 급등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년간 자가 소유자의 경우 6조 달러 이상의 자산 상승을 경험했다. 미국 전역에서 주택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고 유동성 공급이 확대되면서 주택 가격은 기록적인 속도로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자가를 보유한 전체 가구의 65%에 해당하는 수백만 명은 기쁨을 누렸다.

과거에도 미국은 여러 차례 주택 가격 상승이 가파르게 진행됐지만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상승은 전국적으로 진행되면서 주택과 토지 등 자산을 보유한 계층에게 큰 부의 증가를 가져왔다. 가격 상승의 혜택은 베이비붐 세대와 흑인 가구보다 자가 보유율이 30%포인트 높은 백인 가구에 더 집중되며 불평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물론 흑인 가구의 경우 보유 자산 대부분이 주택 형태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흑인 가구 역시 혜택을 누렸다. 고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고소득 가구가 가장 큰 소득을 얻었지만 하위 5분의 1 역시 지난 2년 동안 수십억 달러의 주택 자산을 추가했다. 백분율로 따지면 오히려 하위 계층이 비율상으로는 더 큰 증가를 기록했다.

유럽의 경우도 주택 가격 상승은 대다수 국가에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21년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던 터키의 경우 지난주 터키 중앙은행이 사상 최악의 부동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의 평균 부동산 가격은 2022년 160만 터키리라(약 1억4000만원)에 이르렀는데, 이는 작년의 75만 터키리라에 비해 급등한 것이다. 2월 터키의 주택 가격은 전국적으로 전년 동기 대비 96.4% 상승했다.

터키의 주택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건설비용 증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등이 겹치면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시멘트 가격의 경우 2021년 9월 톤당 500리라(약 7만6000원)였지만, 2022년 4월에는 1400리라(약 12만4000원)로 대폭 상승했다. 철근 역시 2021년 4월에는 톤당 6100리라(약 95만원)였지만, 현재는 1만5000리라(약 130만원)에 이르고 있다. 터키의 인플레이션은 지난 3월 61.4%까지 치솟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급등하고 있는 만큼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집을 구하고자 하는 중산층은 급격한 가격 인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급여보다 2배 이상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터키의 월 최저임금이 4253리라(약 37만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이스탄불의 아파트 가격은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임대시장 역시 2배 이상 상승하면서 저소득층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터키 법률에 따르면 연간 물가상승률을 초과해 임대료를 부과할 수 없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스탄불 등 대도시 시민들은 정부에 주택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시리아 난민을 송환하고, 외국인에 대한 부동산 판매를 금지할 것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터키는 현재 40만 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모든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9년 동안 413억 달러 상당(29만3000채)의 부동산이 외국인에게 매각됐고, 이것이 주택 가격 상승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수백만 명의 외국인이 없으면 주택 구매 및 임대 수요가 격감함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취약한 금융시장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2월24일 이후 약 45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국민이 인접국으로 이동한 상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폴란드로 향했다. 이러한 대규모 인구의 이동은 유럽 여러 지역에서 주택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다. 가장 많은 피난민이 향한 폴란드의 경우 전국적으로 50만 채 이상의 신규 주택 수요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수도 바르샤바 등 대도시의 주택 임대료는 연초에 비해 20% 이상 상승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난민들의 귀국 시기가 불투명해지고, 우크라이나의 주택들이 파괴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들의 폴란드 내 거주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우크라이나 난민들로 인한 수요 증가분은 약 20만~40만 채 규모로 추산되고 있으며, 대부분이 대도시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까지 유럽 국가들은 주택 매매 및 임대에 대한 기존 압력에 더해 난민 요인이 추가됐지만 신규 인구 유입으로 인해 코로나19 이후 심화되던 인력 부족이 완화되고,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는 등 세수 증대에 기여함으로써 국가경제에 혜택을 주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국내에 영향 미칠 수도

2020년 이후 진행된 미국과 유럽의 주택 가격 상승은 2000년대 진행됐던 상승과는 다른 양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 위험한 대출과 과잉 건설로 인해 주택 버블이 발생했지만 오늘날 주택 구매자는 당시에 비해 훨씬 엄격해진 신용 심사를 통한 담보대출, 코로나19 이후 지급된 보조금을 통한 현금 보유 등을 통해 더 견고한 기반을 갖추고 있어 시스템적인 문제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빠른 금리 상승으로 인해 물가 상승은 둔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주택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고 있다. 주택 공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대학 진학 등 고등교육을 위한 비용 조달의 방안으로 주택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 상승은 당장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변화는 중장기적으로는 국내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음을 그간의 경험이 알려주고 있다. 대출 규제와 금리 상승을 통해 유동성 측면의 상승 요인은 축소됐지만, 공급 측면에서의 불안요소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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