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까지 뜯어 방탄조끼 만든다”… 김영미-설훈이 말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9 10:00
  • 호수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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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영미 PD “‘가족 해체’ 문제 심각… SNS 통해 서로 생사 알려”
설훈 “이 시간에도 사람들은 죽어간다… 전쟁 막아야” 

민간인 사상자만 6635명이다. 2월24일 러시아의 공습 이후 우크라이나 이야기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공습 이후부터 5월3일(이하 현지시간)까지 집계한 우크라이나 사망자는 3238명, 부상자는 3397명이었다.

실제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부 격전지 상황이 전달되지 않고 있어서다. OHCHR은 “마리우폴, 이지움, 포파스나 등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많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며 “사상자 대다수는 미사일 및 공습을 포함해 충격 범위가 넓은 폭발 무기로 인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쟁에서의 민간인 보호 등 인도적 대우에 관한 기준을 규정한 ‘제네바 협약’ 위배 행위다.

4월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폭발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AP 연합

공습 이후 70일이 지났다. 전쟁에는 폭력이 뒤따랐다. 민간인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된 ‘부차 대학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진 성폭행 사례와 같은 참상이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1세 아기를 성폭행한 영상을 업로드했다가 체포된 러시아 군인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를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의 폭격이 ‘집단학살(제노사이드)’, 즉 전쟁범죄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월12일 처음 집단학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우리나라는 이에 비해 소극적인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했지만,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에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물론 우리 정부는 지난 3월부터 물품 등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왔다. 4월11일 국회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이 중계됐다.

김영미 분쟁전문 PD,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주문했다. 김 PD는 폴란드 국경에서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팀과 연계해 상황을 취재해 왔다. 김 PD와 설 의원은 4월22일 국회 간담회를 진행하며 우크라이나 사태를 알리기도 했다. 아래는 시사저널이 5월2일 국회에서 김 PD와 설 의원을 만나 나눈 일문일답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우크라이나 상황을 알려 달라.

김영미 PD(이하 김) “우크라이나 현장에서는 가족이 해체된다. 가장이 다 징집돼 전쟁터로 향한다. 남은 가족들은 피난을 간다. 연세가 많은 조부모들은 함께하지 못한다. 건강상 문제 때문에 걷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다. 조부모는 현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설훈 의원(이하 설) “자연스럽게 이산가족이 되는 거다.”

“그렇다. 혼자 남은 조부모들이 폭격을 맞았을 때는 구조되기도 힘들다. 가장 가슴 아팠다.”

“징집되는 사람들의 연령이 굉장히 높은 것 같다.”

“할아버지도 징집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 전체의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이다. 이번 전쟁의 가장 큰 참상이다.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은 SNS에 자신들의 행선지를 계속 남겼다. 헤어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SNS를 안 하던 조부모들도 자식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려고 한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마리우폴에 있던 할머니에게 ‘살아계셔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더 못 살 것 같다. 2차 대전보다 더 심하다’고 하더라.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피신한 민간인 문제도 심각하다. 러시아는 제철소 폭격을 미루거나 (제철소의) 외곽 정도를 폭격한다. 이는 ‘공포전’이다. 민간인들이 ‘오늘 러시아가 폭격을 한다고 하더라’라며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러시아가 안 쏘는 거다. 누군가는 ‘내 묘비의 (죽은) 날짜가 언제일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의료체계는 전쟁일 때 잘 작동하지 않는다. 병원이 폭격의 대상이 된다.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인도적 통로가 열리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일은 우크라이나에서도 벌어졌다. 코로나 상황 역시 심각하다. 군인들은 이 상황에서 방탄조끼와 헬멧 등을 많이 지원받는다. 민간인들은 이러한 물품들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도 키이우에 모여 커튼까지 뜯어서 방탄조끼를 만들기도 했다.”

“처음 국회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논의했다. 그런데 국회, 정부의 열의가 지금은 강하지 않은 것 같다. 지원도 소극적인 편이다.”

“정부는 취재를 허가하지 않는다. 과거 우크라이나 취재 허가서를 냈었다. 외교부는 한 시간 만에 반려했다. 외교부가 타국에 대한 취재 허가를 내주는 건 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군인이 위험하다고 전쟁터에 못 가는가. 정부는 우리를 하나의 직업군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보가 없으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방향성을 잃게 된다.”

“누군가는 현장에 가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현장 취재 불허가 바른 정책인지는 조금 조심스럽다. 우리가 위험한 국가를 피해야 하는 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대처하는 건 다른 문제다.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도 없고, 국민들에게도 정확한 정보를 알리지 않는 건 국가적 관계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회 연설 당시 상당수 의원이 자리에 없었다. 의원들을 비판하는 여론이 상당했다. 당시 상황과 연설 추진 배경을 알려 달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회에서 연설하고 싶다고 했다. 설 의원은 과거 ‘미얀마를 위한 연대 모임’을 잘 이끌었다. 그래서 설 의원에게 연락했다. 설 의원도 이에 호응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 당일 마리우폴 쪽에서 총격전을 앞두고 있었다. 연설 당시 인터넷 추적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위험한 시간이었다. 그는 그 상황에서 연설했다. 우크라이나가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우방국으로서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향후 기회가 되면 (연설을) 더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의원들이 연설 사실을 제대로 몰랐다. 국회가 의원들에게 정확히 전달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성범죄 문제가 심각하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유럽연합(EU)과 러시아의 전쟁범죄 혐의에 대한 합동수사에 들어갔는데.

“성범죄가 실제로 많이 벌어진다고 한다. 가해자는 통상 성범죄를 몰래 하고 싶어 한다. 남에게 알리지 않아야 된다는 메커니즘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가해자 입장에서 성범죄 사실을 공개한다. ‘러시아에 덤비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거다. 취재팀은 부차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유리라는 14세 소년은 아버지의 죽음을 증언했다. 이 소년은 ICC 조사의 핵심 증인 중 하나다. 증인은 더 많을 거다. 향후 증언자들의 증언록을 만들어야 한다. 국제사회가 범죄 증거 등을 더 노력해서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과거 시리아 내전 등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침묵했다. 이번 사태는 그 침묵의 대가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분이 거세다. 제노사이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졌는데.

“민간인 시설 폭격 그 자체가 제노사이드다. 러시아군이 폭격한 아파트, 쇼핑센터 안에 몇 명이 있었는지 누가 알겠나. 러시아의 행위가 다른 이들에게 일종의 ‘감흥’을 준다는 점도 큰 문제다. 평화의 의지를 꺾고 전쟁의 의지로 가게끔 할 수 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의 경우, 관계 설정은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국가 대 테러’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다르다.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세기에도 쉽지 않았던 사례다. 인류는 21세기 들어 전쟁, 침략을 안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이 이번에 깨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세계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벌어졌다. 3차 대전으로 갈 위험도 있다. 국제사회가 러시아를 설득하거나 물리적 방법 등을 사용해 전쟁을 중단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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