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반의사불벌’, 피해자에 합의 강요하는 2차 가해로 이어져”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7 10:0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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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전조' 스토킹, 법의 빈틈을 노린다]
[인터뷰] 스토킹피해자보호법 대표발의한 정춘숙 민주당 의원
“스토킹 피해는 모든 일상과의 단절 야기…후속 지원 필수”

지난해 4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의 제정은 1999년 관련 법안이 최초 발의된 후 22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그러나 이후 이 법은 줄곧 ‘반쪽짜리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가해자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피해자 보호’와 관련한 내용은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두 가지 방안을 고루 담은 법안을 대표발의했던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은 더 늦지 않게 피해자 보호라는 다른 한쪽 바퀴도 단단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스토킹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새로 내놓은 정 의원은 “주로 가까운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의 모든 일상을 단절시킨다”며 “범죄 후 피해자를 위한 지원이 다방면으로 촘촘하게 마련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해 10월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나.

“과거 스토킹은 단순 경범죄로 여겨져 범칙금 10만원이 부과되는 등 사실상 전혀 처벌되지 않았다. 지난해 들어서야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이 법이 시행됨으로써, 스토킹이 비로소 범죄행위로 정의됐다. 당장 피해자들의 피해 신고 건수도 대폭 증가했다고 하더라. ‘이제 제대로 처벌이 되겠구나’ 하는 기대의 결과가 아닐까.”

신고는 늘어났지만 실제 재판까지 이어져 가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비교적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각에선 피해자가 합의해 주면 처벌이 불가해지는 ‘반의사불벌’ 조항의 영향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분명히 삭제돼야 할 조항이다.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의 경우 현재 피해자의 처벌불원서가 제출되면 자동적으로 공소가 기각되기 때문에, 가해자가 더욱 합의에 목을 매게 된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며 협박하는 등 2차 가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들이 국회에 발의돼 있긴 한데, 현재 논의가 더딘 상태다. 한쪽에선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을 높여야 한다며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에 반대하는데, 이는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간과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스토킹 범죄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고 보나.

“여전히 옛적 사고가 많다. 스토킹 범죄는 대부분 헤어진 연인 등 잘 알고 지내던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 사실 이 경우, 신뢰관계를 이용해 상대를 괴롭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중처벌돼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사랑싸움’으로 치부하거나 ‘친한 사이에 뭐 어때’라는 등 안일하게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사실 흔하게 사용되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도 얼마나 폭력적인가. 당하는 입장에선 하나하나가 삶이 무너지는 일이다. 주로 스토킹 피해를 당하는 쪽인 여성들은 이게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 대부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스토킹 범죄에 대한 성별 간 체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긴가.

“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밤길의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여성들의 90% 이상은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고, 남성들은 그런 경우가 매우 적었다. 느끼는 두려움의 내용도 상이했다. 여성들은 물리적인 위해를 입을까 두려웠다고 한 반면, 다수 남성은 오히려 누군가에게 ‘성폭력범’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웠다고 답했다. 흔히 우리나라 치안이 세계 1위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과연 누구에게 가장 좋은 치안인가 되묻고 싶다. 대다수 여성에겐 체감되지 않을 것이다.”

 

“소극적 개입, 다음 범죄로 길 열어주는 것”

스토킹의 정의가 여전히 협소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연속적’으로 피해를 본 경우만을 스토킹 범죄로 판단하곤 한다. 사실 얼마 동안, 몇 번에 걸쳐 스토킹을 당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단 하루, 단 한 번으로도 심각한 피해를 당할 수 있지 않나. 스토킹 범죄는 더욱 강력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전조 현상이다. 첫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넘긴다면 이는 즉 가해자에게 ‘괜찮네. 조금 더 나가볼까’ 하는 인식을 심어주고, 다음 범죄로 길을 열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물리적인 위해’가 아닌 온라인상에서의 스토킹 범죄에 대해서도 인식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한 온라인상에서의 스토킹 범죄 행태가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피해가 오프라인의 일상을 망가트리고 있는데도 여전히 이를 분리해 판단하거나 그 자체로 심각한 스토킹 범죄임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세상이 급격히 변하고 다양한 가해가 이뤄지는데, 스토킹 범위의 정의는 여러모로 그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스토킹처벌법 시행으로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처벌이 약하다는 비판도 있는데.

“스토킹으로 인한 피해자의 공포는 결코 끝이란 게 없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은 후에도 또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공포가 끊임없이 피해자를 괴롭힌다. 실제 사례도 적지 않다. 잠재적 가해자들에게 스토킹이 분명한 범법행위이며 그로 인해 무서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한다. 처벌이 미미할 경우, 이들이 오히려 ‘신고하려면 해보라’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실제 과거 경범죄로 처벌될 때 이런 이야기를 하며 피해자를 협박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최근 대표발의했다. 스토킹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보나.

“스토킹 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자신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을 떠나는 등 일상과 단절된다는 것이다. 생활 반경과 네트워크가 겹치는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피해는 심각하다. 이 경우 피해자는 커리어가 망가지고 삶 전체가 무너진다. 따라서 피해자의 취업·주거·생계안정·법률 등 다방면의 지원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이번 법안엔 이러한 지원책들이 담겼다. 그뿐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피해 실태조사·예방교육 등을 실시하도록 명시했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비밀을 엄수하도록 하는 내용도 법안에 추가했다. 스토킹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건 안전의 담보와 일상의 지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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