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싱가폴 법인 문닫은 권도형, 조세회피처 법인만 살렸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5 13:00
  • 호수 17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60억원 세금 부과된 테라폼랩스 BVI 법인 공식문서 입수…대리인 통해 설립한 뒤 지금도 운영중

‘테라-루나 폭락사태’ 장본인인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한국과 싱가포르 사무실을 모두 철수하고 조세회피처에만 법인을 남겨둔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법인은 국세청으로부터 400억원대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권 대표는 “세금을 완납했다”고 주장했지만 회사를 둘러싼 횡령 의혹마저 불거진 상황이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 유튜브 캡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 유튜브 캡처

 

국세청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테라폼랩스는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자회사를 둔 것으로 파악됐다. 자회사의 정식 명칭은 ‘TERRAFORM LABS LIMITED’다. 시사저널은 BVI 금융위원회를 통해 이 회사의 법인등기와 정관 등을 비롯한 공식문서 20여장을 입수했다.

입수 문서에 따르면, TERRAFORM LABS LIMITED는 2018년 6월 당국에 정식 등록됐다. 테라폼랩스 글로벌 본사 격인 싱가포르 법인이 설립된 지 2개월 뒤다. 당시 테라폼랩스는 권 대표와 신현성 티켓몬스터 이사회 의장이 공동 창업했다. 하지만 TERRAFORM LABS LIMITED 문서에서 두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대리인을 통해 법인을 세웠기 때문이다.

폭락사태 직전에도 BVI 법인 갱신수수료 납부해

이 회사의 설립자(Incorporator) 이름은 ‘마리사 프렛(Marisa Frett)’으로 적혀 있다. 회사 설립 전후로 등기 수수료 납부 확인문서에 서명한 사람도 마리사 프렛이다. 이 사람은 테라폼랩스 임직원이 아니라 조세회피처 내 법인 설립을 도와주는 중국계 중개회사 ‘역외법인서비스(OCS)’의 이사다. 그 밖에도 TERRAFORM LABS LIMITED의 모든 서류에 나오는 이름은 OCS 관계자들로 확인됐다.

TERRAFORM LABS LIMITED는 서류상 지금도 법인으로서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5월23일 기준 법인 상태는 ‘운영중(Active)’으로 나와 있다. 최근인 5월6일에는 법인 유지를 위한 ‘회사갱신수수(Company Renewal Fee)’ 450달러(56만원)를 납부했다. 회사갱신수수료를 제때 내지 않으면 법인은 청산됨과 동시에 법인을 통한 어떤 거래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수수료를 납부한 날은 암호화폐 루나 가격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러면서 루나가 지탱하던 ‘테라USD=1달러’ 공식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권 대표가 테라-루나 폭락사태 직전에도 TERRAFORM LABS LIMITED를 살리려고 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권 대표는 앞서 테라폼랩스 한국 법인(테라폼랩스코리아)은 철수시켰다. 지난 4월30일 그는 주주총회를 통해 한국 법인의 해산을 의결했다. 이후 부산 본점과 서울 지점은 각각 5월4일, 5월6일 청산됐다. 싱가포르 법인도 문을 닫은 상태다. 한겨레와 SBS는 5월23일 테라폼랩스 현지 사무실을 찾았지만 정상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사무실은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지난 4월 말쯤 중단됐다고 한다. 한국 법인 해산을 의결한 날과 비슷하다. 즉 한국과 싱가포르 법인은 자취를 감췄지만 BVI 법인(TERRAFORM LABS LIMITED)은 여전히 존속 중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TERRAFORM LABS LIMITED가 권 대표의 조세회피 창구로 활용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된다. 실제 해당 법인은 국세청의 조사망에 걸려든 바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10월 TERRAFORM LABS LIMITED에 법인세 약 460억원을 부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인 소재지는 BVI지만 국세청은 ‘사실상 운영은 한국 거주자가 한다’고 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국세청은 TERRAFORM LABS LIMITED 등이 권 대표가 설립한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에 루나를 무상 증여한 것으로 판단하고 과세를 통보했다. LFG는 싱가포르의 비영리 재단으로 테라UST 가격 유지를 위한 각종 암호화폐가 예치돼 있다.

테라폼랩스의 BVI 법인 'TERRAFORM LABS LIMITED' 관련 공식문서 중 3월8일 작성된 서류. 수신지가 '홍콩'으로 적혀 있다. ⓒ BVI 금융위원회
테라폼랩스의 BVI 법인 'TERRAFORM LABS LIMITED' 관련 공식문서 중 3월8일 작성된 서류. 수신지가 '홍콩'으로 적혀 있다. ⓒ BVI 금융위원회

 

“BVI 법인 코인, 권도형 지갑으로 들어갔으면 횡령 의심”

법률사무소 커넥트 이주호 변호사는 “암호화폐 발행업체들이 BVI에 법인을 설립하는 건 규제를 피하려는 목적이 크다”며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테라폼랩스 BVI 법인이나 LFG에서 코인이 어떤 지갑으로 이동했는지 그 경로를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며 “권 대표 개인 명의의 지갑으로 들어간 흔적이 있으면 횡령이나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서울경찰청은 5월23일 “이달 중순 테라폼랩스 직원으로 추정되는 자가 법인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정보를 입수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횡령 의심 직원을 추적하는 동시에 테라폼랩스와 LFG의 거래 내역을 분석해 불법 자금 규모를 특정할 예정이다. 일단 경찰은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관련 자금의 동결을 요청한 상태다.

권 대표는 “우리 몫의 세금을 완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5월21일 트위터를 통해 이 같이 말하면서도 “우리는 한국 정부에 대한 납세 의무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암호화폐 업체로부터 창의적인 방식으로 수백만 달러를 받아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세청의 과세가 부당했다는 취지다.

한편 권 대표는 이날 트위터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그는 본인의 싱가포르 내 거주지로 공개된 곳에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권 대표가 BVI 등 다른 국가로 이동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홍콩도 그 대상일 가능성이 있다. 본지가 입수한 TERRAFORM LABS LIMITED 관련 문서 중에는 지난 3월8일 작성된 서류가 있다. 이 서류의 수신지는 홍콩으로 나와 있다. 이주호 변호사는 “BVI의 페이퍼컴퍼니들이 계좌 개설도 안 하고 우편물 수령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은 BVI와 함께 대표적인 조세회피처로 꼽히는데다 암호화폐공개(ICO)를 규제하지 않는다.

권 대표가 사업 초기에 이미 본인 몫의 암호화폐를 대량 현금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권 대표는 루나 가격이 폭등하기 전인 2020년 10월 부인과 공동 명의로 서울 성수동 주상복합 아파트를 매입했다. 매입가는 42억원이고 대출 없이 전액 현금으로 마련했다. 당시 루나 가격은 300원대에 불과했다. 이후 폭락을 앞둔 2022년 4월에는 14만원까지 치솟은 바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