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文의 고향 PK 민심이 달라진 이유는?
  • 이상욱·김동현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2 15:00
  • 호수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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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4년 만에 ‘낙동강 벨트’ 사수 실패
국민의힘, 기초단체장 39곳 중 34곳 싹쓸이

퇴임 후 경남 양산 사저에서 생활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5월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김해 봉하마을에 갔다. 문 전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과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해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등과 함께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비공개로 ‘도시락 오찬’을 가졌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의 이 같은 공개 행보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세에 있는 민주당 지지층을 결속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PK(부산·울산·경남) 지역은 전통적으로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강세를 보여왔다. 이들은 PK 지역에서 표를 많이 획득해 대통령을 배출하고, 총선 승리도 거머쥐었다. 2012~14년 치러진 대선 등 세 차례 선거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이 전국적으로 승리할 때 PK에서의 선전이 기여한 바가 컸다. 민주당으로서도 중요한 지역이다. 영남 유권자가 호남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탓에 민주당은 PK 지역의 득표가 언제나 절실했다. 유권자 비중이 전체의 15%가량인 PK가 역대 선거 승부에 결정타를 날리면서다. 과거 민주당 계열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긴 것 역시 PK 지역 연고라는 점이 작용했다.

ⓒ연합뉴스

국힘 득표율, 3월 尹 득표율보다 더 상승

PK 지역은 역대 선거에서 민주당이 ‘낙동강 벨트’ 교두보 확보에 성공할지에 관심이 쏠려왔다. 낙동강 하류를 끼고 있는 부산 사상과 경남 양산 등 선거구가 이른바 ‘낙동강 벨트’로 불리는 지역이다. ‘낙동강 벨트’의 승리는 여야 모두에 국회의원 '1석'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이곳의 승패는 ‘낙동강 벨트’에서 시작된 민주당 바람이 PK 지역 전체로 불어올 수 있느냐, 없느냐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1996년 총선 이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강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2012년 총선 이후 민주당이 세를 계속 확대해온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최인호(사하갑), 전재수(북강서갑) 등 2명이 새누리당이 갖고 있던 의석을 가져온 데 이어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부산 4개 구청장과 경남 김해·양산시장을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민주당의 ‘동진(東進)’ 정책은 ‘낙동강 벨트’ 바람을 타고 기세를 높였다. 민주당은 1998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동진’을 진행해 왔다. 2000년 총선 때 노 전 대통령의 부산 북·강서을 출마가 대표적이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부산 지역구 출마는 2년 뒤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이후 2017년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문 전 대통령이 부산과 울산에서 1위를 기록했다. 경남에선 1%포인트 미만의 근소한 표차를 보였다. 그로부터 1년 뒤 지방선거에서는 동시에 광역단체장을 배출하며 동진 정책의 꽃이 만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6·1 지방선거 결과는 4년 전과 완전히 정반대 양상이다. 민주당은 PK 지역 ‘낙동강 벨트’에서 전패했고, 경남 남해 1곳만 간신히 지켜냈다. 4년 전엔 민주당이 PK 기초단체장 39곳 중 25곳을 차지하며 ‘동진’에 성공했지만, 이번에 국민의힘이 탈환에 성공했다. 특히 부산은 구청장 16곳 모두 국민의힘이 차지했다.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부산의 기초단체장을 한 정당이 독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울산(국민의힘 4, 진보당 1)과 경남(국민의힘 14, 민주당 1, 무소속 3)에서도 대부분 기초단체장을 국민의힘이 가져갔다. 울산은 지난 선거에선 5곳 모두 민주당 차지였지만, 이번엔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민주당이 ‘낙동강 벨트’를 중심으로 20년간 만들어온 ‘동진’ 성과가 4년 만에 무너진 것이다.

부산시장에는 지난해 4월 재보선에서 당선됐던 현직 부산시장인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가 66.36% 득표율로 당선됐고, 울산시장에는 김두겸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59.78%로 현직 송철호 울산시장을 눌렀다. 경남지사 역시 박완수 국민의힘 후보가 65.7%를 기록하며 당선됐다. 이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록한 득표율보다 한층 더 높아진 수치다. 당시 윤 대통령은 부산 58.25%, 울산 54.41%, 경남 58.24%의 득표율을 각각 기록했다. 부산 강서구의 한 20대 남성은 “강서구에는 하단~녹산선과 가덕신공항 등 굵직한 사업이 많다. 이 사업들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여당 구청장이 되는 게 맞다”고 했다. 새 정부 국정 안정에 힘을 싣는 민심의 한 단면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한국당 전철 밟으며 중도층 이탈

민주당 지지층의 이완도 확연했다. 부산 사하구의 한 20대 남성은 “원래 민주당을 찍으려고 했는데, 태양광 사업 등 운동권 출신들이 너무 많이 문제를 일으킨 것 같아 국민의힘을 찍었다”고 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중도 사퇴하고, 이른바 ‘드루킹 의혹’을 받았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최종 유죄 판결을 받으며 지사직을 박탈당하면서 지역 민심을 크게 잃은 게 치명적이었다. 거기에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탈원전 정책의 결과 창원의 원자력 산업 침체는 경남의 민심 악화로 이어진 것이다.

민주당이 무당파층·중도층을 설득하지 못한 점이 패인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등 갈등 지향적 이슈에 집중했다. 이 탓에 대선 막판 고심 끝에 ‘기호 1번’에 투표했던 중도층이 이번 지선에선 등을 돌렸다. 특히 민주당은 대선 출구조사 결과 중도층에서 이겼으나, 이후 ‘검수완박’ 같은 행보를 보이면서 이탈한 지지층을 복원하기는커녕 추가적인 이탈을 만들어냈다.

반면, 국민의힘은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식에 참석하는 등 중도 보수층에 통합과 쇄신의 신호를 보냈다. 실제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얻은 PK 지역 정당투표(광역의원) 득표수를 지난 대선과 비교해 보면, 민주당은 대선에서 192만3160표를 얻었지만 이번에는 109만8831표에 그쳤다. 석 달 동안 82만4329표(42.9%)가 사라진 셈이다. 이재명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 절반 가까이가 투표를 포기했거나 보수정당 지지로 돌아선 셈이다.

변화를 갈구하는 민심을 외면할 때 얼마나 혹독한 응징이 따르는지는 이미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이 여실히 보여줬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똑같은 우를 범했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패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이후 당대표로 2018년 지방선거를 이끌어 참패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대선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송영길 전 대표와 이재명 의원을 지방선거 수도권 핵심 포스트로 내세운 바람에 졌다는 지적이다.

대선과 다른 새로운 어젠다로 지방선거를 치렀어야 했는데, 대선과 똑같이 치렀다는 것이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경남 창원 마산합포구)은 이를 두고 ‘데칼코마니’라고 표현했다. 최 의원은 “우리도 반성 없이 지냈다. 대선에서 패배한 분이 또 당대표 돼서 지방선거를 지휘하고, 탄핵당한 정당이 누구도 그 탄핵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민주당이 쇄신 없이 강경 일변도로 계속 나선다면, 과거 자유한국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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