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참사 그 후 ‘1년’…현장엔 잡초만 무성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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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참사 현장가보니] 1년 전에 멈춘 시간, 참상 그대로
“지난 1년 동안 바뀐 게 없어” 건설현장 안전불감증 ‘여전’
붕괴사고 등 잇따라…“강력한 법도 감시 않으면 무용지물”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 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구역 건설 현장에서는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건물 잔해가 건물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 정차돼 있던 시내버스를 덮친 직후의 모습. ⓒ연합뉴스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 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구역 건설 현장에서는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건물 잔해가 건물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 정차돼 있던 운림54번 시내버스를 덮친 직후의 모습. ⓒ연합뉴스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무고한 시민 17명이 사망하고 다친 학동 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 8일 오전 11시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재개발 건물붕괴 참사 현장. 안전 펜스 앞 나무와 전봇대에는 1주기 추모식을 알리는 펼침막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안전한 광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하지만 펜스 너머 붕괴사고 현장은 1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5층 건물이 붕괴되면서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로 가득했다. 현장 곳곳에는 교훈을 삼기 위한 추모 공간 대신 잔해에서 삐져 나온 앙상한 철근과 도심 빈공간에 독버섯처럼 퍼진다는 오동나무, 잡초들만 무성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역세권 요지인 이곳에는 건물을 헐고 29층 아파트 19개동 2314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사가 전면 중단돼 사실상 현장은 1년 전에 멈춰 있다.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무고한 시민 17명이 사망하고 다친 학동 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 24일 오전 11시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참사 현장 안전 펜스 앞 나무와 전봇대에는 1주기 추모식을 알리는 현수막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안전한 광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학동 참사 1주기를 알리는 현수막 건너편 사고현장 앞을 ‘운림54번 시내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무고한 시민 17명이 사망하고 다친 학동 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 24일 오전 11시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참사 현장 안전 펜스 앞 나무와 전봇대에는 1주기 추모식을 알리는 펼침막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안전한 광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학동 참사 1주기를 알리는 펼침막 너머 사고현장 앞을 ‘운림54번 시내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비극의 ‘光州54번 버스 참사’…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덮쳐

지금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 생생한 학동 5층 건물 붕괴사고는 ‘날벼락’이었기 때문에 사회에 던져준 충격파와 아픔이 더욱 컸다. 지난해 6월 9일 오후 4시 22분쯤, 학동 주택재개발구역 건설 현장에서는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철거 중이던 지상 5층 지하 1층 건물이 붕괴하면서 건물 잔해가 건물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 정차돼 있던 시내버스를 덮쳐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창졸간에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짓눌린 버스 안에 갇힌 17명 가운데 9명이 숨지고 8명은 크게 다쳤다.

사고를 당한 운림54번은 광주 북구 매곡동에서 무등산 입구인 동구 증심사까지 약 1시간 동안 운행하는 노선이다. 광주의 대표적인 시장인 대인시장과 남광주시장, 서방시장을 경유한다. 또 전남대와 동강대, 전남여고, 광주고, 광주공고를 통과한다. 이번 17명의 사상자 가운데 시장을 보거나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이들이 많이 희생된 이유다.

참사는 철거작업자들이 5층 건물 옆에 3층 높이로 쌓은 토산에 굴착기를 올려 후면부터 두더지 식으로 파내는 이른바 ‘밑동 파기’ 철거공사를 하다가 일어났다. 건축물 해체계획서에 따라 꼭대기 층부터 순차적으로 한 개층씩을 부수며 내려가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작업자들은 굴착기작업 중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그러나 건물 바로 옆 정류장에 멈춰선 54번 시내버스는 갑자기 쏟아져 내린 건물 잔해에 완전히 뒤덮였다. 그리고 구조대가 올때까지 아무도 내리지 못했다.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무고한 시민 17명이 사망하고 다친 학동 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 24일 오전 11시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참사 현장. 안전 펜스 너머 붕괴사고 현장은 1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5층 건물이 붕괴되면서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로 가득했다. 교훈을 삼기 위한 추모의 공간 대신 현장 곳곳에는 오동나무와 이름 모를 잡초들만 무성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사고 발생 이후 공사가 전면 중단돼 사실상 현장은 1년 전에 멈춰 있다. 사고 현장은 5층 건물을 헐고 29층 아파트 19개동 2314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무고한 시민 17명이 사망하고 다친 학동 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 24일 오전 11시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참사 현장. 안전 펜스 너머 붕괴사고 현장은 1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5층 건물이 붕괴되면서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로 가득했다. 교훈을 삼기 위한 추모의 공간 대신 현장 곳곳에는 오동나무와 이름 모를 잡초들만 무성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사고 발생 이후 공사가 전면 중단돼 사실상 현장은 1년 전에 멈춰 있다. 사고 현장은 5층 건물을 헐고 29층 아파트 19개동 2314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민들…“건물 잔해 보기 두려워” 

인근 주민들은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아수라장이 된 참사 현장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만큼 이곳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사고 현장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작년 이맘때를 떠올리며 “여전히 아찔하다”며 “누구나 일상적으로 타고 다니던 시내버스에서 우리 이웃들이 이런 날벼락이 맞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붕괴 현장 맞은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유준(53)씨는 “오후 4시20분께였다. 당시 ‘쿵’하는 소리가 크게 났던 걸로 기억한다”며 “그때는 단순히 근처 공사현장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곧이어 흰색 분진이 솟구쳐 올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직장인 이현중(46)씨는 “출퇴근 교통수단으로 운림54번을 이용하고 있어 이 사고가 남 일 같지 않았다”면서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은 극심한 불안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 현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2층 안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인 최아무개(56)씨는 펜스 너머로 보이는 건물 잔해를 보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최씨는 “산처럼 쌓여 있는 건물 잔해와 앙상한 철근 뭉치 등 사고 당시 참혹했던 광경을 매일 보고 있다”며 “재개발 공사가 올 스톱되면서 건물 붕괴의 트라우마 속에 기약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다”고 토로했다.

지난 3월 말 학동4구역에 내려졌던 공사 중지 명령은 해제됐다. 하지만, 시공사가 광주의 또 다른 건설현장에서 대형 사고를 낸 시공사가 철거를 재개하기 위한 관련 서류 제출을 하지 않아 공사 재개 시기가 불투명하다. 재개발조합 내에서도 현 집행부 퇴진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 11월 오후 3시 47분쯤 외벽이 무너져 내린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현대아이파크 201동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 1월 11월 오후 3시 47분쯤 외벽이 무너져 내린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현대아이파크 201동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안전 불감증이 빚은 人災…여전히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학동 참사는 안전 불감증이 빚은 인재(人災)였다. 검경의 수사 결과 관할 관청인 동구청에 제출한 건축물 해체계획서와 안전 지침을 따르지 않은 불법 철거 공사가 참사 직접 원인으로 지목됐다. 애초 24만원에 발주한 철거공사가 최종적으로 4만원에 둔갑하는 ‘꼬리 물기식’ 불법 재하도급도 사고 발생에 한몫했다.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 맞춰졌다. 광주시의회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광주시민들이 ‘학동 참사’의 최종 책임을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에 있다고 답했다. 국내 굴지의 대형건설사라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었다. 

현대산업개발은 학동 참사 이후 7개월 만에 광주 화정동 아파트 건축현장에서 또다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는 건물 붕괴사고를 일으켰다. 또 북구 운암3단지 재건축사업 현장에서도 학동참사 때와 똑같은 ‘밑동 파기’식 철거공사가 적발됐다. 이후 ‘현대산업개발 보이콧’ 여론이 퍼졌고 현산이 운암3단지 재건축사업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광주에서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난 건 학동과 화정동뿐만이 아니다. 현재도 크고 작은 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남구 장미아파트 철거 과정에서 건축물 잔해가 떨어지면서 가설 울타리가 기우는 사고도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행하지 않았지만, 해체계획서 순서를 지키지 않고 철거를 감행했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이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는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과 불법 재하청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지난 1년 동안 지켜본바, 전혀 바뀐 게 없다. 버스 정류장이 복구된 게 그나마 유일하다”며 “이후에도 건설 참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강력한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고 감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며 “더 관심을 두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무고한 시민 17명이 사망하고 다친 학동 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 24일 오전 11시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참사 현장 안전 펜스 앞 나무와 전봇대에는 1주기 추모식을 알리는 현수막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안전한 광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무고한 시민 17명이 사망하고 다친 학동 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 24일 오전 11시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참사 현장 안전 펜스 앞 나무와 전봇대에는 1주기 추모식을 알리는 현수막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안전한 광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사고 책임자 처벌 위한 재판 지지 부진, 책임 공방
운림54번 시내버스 보존·추모공간 조성 등 난항

학동 참사 책임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고, 추모공간 조성과 운림54번 버스 보존 계획 등은 난항을 겪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학동 재개발 정비 4구역 시공업체, 하청·재하청 업체 관계자와 감리 등 7명과 업체 3곳에 대한 1심 재판은 진행 중이다. 학동 참사 책임자들은 지난 2021년 8월부터 11개월째 이어진 재판에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1심 선고는 7월 말로 예상된다.

광주시는 매년 6월 9일을 철거건물 붕괴참사 추모일로 지정하거나 참사 현장에 추모공간 조성과 건물 잔해에 깔린 운림54번 버스를 영구보존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시는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지원 조례를 개정했다. 개정안에는 사회적 재난의 추모일 지정과 추모 공간 조성에 대한 법제화 근거도 담았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유가족 및 시민사회 대책위 측과 의견이 엇갈리면서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운림54번 버스는 지난해 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 검사를 마치고 북구 각화동 정수장에 임시로 보관한 상태다. 추모공간에 대해서는 유가족 측은 사고 현장에 마련해 줄 것을 희망하고 있지만, 재개발조합 측과의 논의가 쉽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참사 이후 추모공간 및 기록물 관리 사안에 대해 광주시, 동구, 시민사회 등으로 민관 공동 TF팀을 꾸려 회의를 이어갔다”며 “현재 의견이 엇갈린 상황에서 구체적인 안건이 없어 회의는 중단된 상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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