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빅스텝’ 가능성에 금융권 건전성 ‘빨간불’
  • 김희진 시사저널e. 기자 (heehee@sisajournal-e.com)
  • 승인 2022.06.26 10:00
  • 호수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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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에 빨라지는 금리 인상 시계…불어난 가계·기업 대출, 부실 뇌관 될 수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8년 만에 기준금리를 단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최근 단행했다.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국내외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중은행뿐 아니라 제2금융권 등 금융권 전반에서 건전성 및 유동성 관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오는 7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 연준이 6월14~15일(현지시간) 개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 목표 범위를 0.75~1.00%에서 1.50~1.75%로 0.75%포인트 대폭 인상하는 등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 운용 의지를 밝히면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6월21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간담회에서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해서 확대되는 국면에선 가파른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에 맞춰 한국도 ‘빅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금융권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에 맞춰 한국도 ‘빅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금융권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연합뉴스

“7·8월 연속 금리 인상 가능성도”

소비자물가는 올해 들어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3%대를 나타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 중 4%를 웃돈 데 이어 5월엔 5.4%를 기록했다. 이는 2008년 8월 5.6% 이후 근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진 데다 한은이 당분간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면서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더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5월 금통위에서 ‘당분간’, 다시 말해 수개월 동안 물가에 방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는 한국은행의 강한 의지가 명확하게 드러난 만큼 7월과 8월 연속 인상을 전망한다”면서 “10월 금통위 이전에 발표될 9월 물가상승률이 한국은행의 전망 경로에 부합하거나 소폭 하회한다면 10월 금통위에선 동결 후 11월 추가 인상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외 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되면서 은행권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격히 불어난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의 부실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5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6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4000억원 증가했다.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5월말 기준 기업의 은행 원화대출 잔액은 1119조2000억원으로 한 달 새 13조1000억원 급증했다. 5월 기준으로 2009년 6월 통계가 시작된 이후 두 번째로 큰 증가 폭이다. 중소기업 대출이 개인사업자 대출 2조원을 포함해 8조9000억원 늘었고, 대기업 대출도 4조3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증소기업 대출 증가액(8조9000억원)은 5월 기준으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시장 전망대로 한은이 빅스텝에 나설 경우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취약차주 및 한계기업들을 중심으로 연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은행들은 건전성 등 위험 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말 기준 국내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0.23%(잠정치)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등 금융지원 조치로 인한 착시효과이니만큼 낙관할 수 없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3%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대출금리 상승세도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대출금리가 오르면 차주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져 연체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대손충당금 적립 등 건전성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발표 이후 뉴욕증권거래소 모습ⓒAP 연합
미국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발표 이후 뉴욕증권거래소 모습ⓒAP 연합

카드·보험 업계 자금조달 부담도 늘어

기준금리 인상으로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것은 은행권만이 아니다. 카드사와 보험사도 금리 인상 여파로 자금조달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먼저 카드 업계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카드채 금리가 올라가면서 유동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AA+’ 등급 카드채 3년물 금리는 6월21일 기준 4.473%로 지난해 말(2.372%) 대비 2%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카드사의 경우 수신 기능이 없어 운영자금 대부분을 회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다.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 금리 상승은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카드사들은 수익성·유동성 관리에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채권 금리도 계속 오름세를 나타내는 추세”라며 “채권 금리가 올라가면 카드채 의존도가 높은 카드사들의 자금조달 구조 특성상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도 자금조달 부담이 늘어나긴 마찬가지다. 보험사들은 최근 급락한 RBC(지급여력) 비율 관리 및 내년부터 도입될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에 대비해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다. 금리가 올라가게 되면 보험사들이 자본확충을 위해 발행하는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 등 자본성 증권의 발행 금리가 올라 보험사의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 한 보험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최근 RBC 비율 관리와 IFRS17 도입에 대비해 자본성 증권을 적극적으로 발행하고 있다”며 “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되면 자본성 증권의 금리도 함께 오르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자본확충 과정에서 이자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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