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라는 생애의 빛과 그림자, 《엘비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6 16:0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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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 풍미했던 뮤지션 엘비스 프레슬리를 바라보는 시선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랑과 그 무게에 버금가는 불행의 굴곡까지 함께 짊어지는 것이 슈퍼스타의 숙명인 걸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션 엘비스 프레슬리(1935~77)의 생애에는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이 가득하다. 10억 장의 앨범 판매, 로큰롤 뮤지션 최초 빌보드 차트 1위, 세계 최초 인공위성 생중계 콘서트가 가능했던 시대의 아이콘. 그러나 빛이 강렬했던 만큼 그를 둘러싼 그림자도 짙고 어두웠다. 《엘비스》는 무명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를 스타덤에 올렸고, 이후 그의 인생 전체를 움켜쥐었던 매니저 톰 파커 대령(톰 행크스)의 시선을 경유해 엘비스(오스틴 버틀러)의 무대 앞과 뒤편을 오간다.

화 《엘비스》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엘비스》 포스터ⓒ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파커의 시선을 경유해 비춰진 엘비스 프레슬리

영화는 병상에 누운 노년의 톰 파커 회고에서 출발한다. 프레슬리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고, 그와 파커의 부당한 관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책이 세상에 나온 시점이다. 파커는 시종 당당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세상을 안겨준 사람’이라고 자처한다. 동시에 ‘누군가는 내가 이 이야기의 악당이라고 할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후에 그는 신분과 출신 지역 등 모든 것이 가짜였던 사기꾼으로 밝혀졌다.

《엘비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화자로 파커를 내세운다. 이 선택은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일정 수준의 거리를 두고 그를 대상화하겠다는 태도를 공공연히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대 위에 선 프레슬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게 하는 대신, 그를 바라보는 파커의 눈을 통해 ‘팬들의 사랑에 중독된 아티스트’로 규정하는 식이다.

동시에 파커는 관중과 프레슬리 가족의 가장 집요한 관찰자이기도 하다. 그는 앞뒤로 골반을 터는 프레슬리 특유의 몸짓에 열광하면서도 ‘즐겨도 되나’ 하는 죄책감을 느끼는 팬들의 시선을 본다. 그걸 광기 어린 팬덤으로 뒤바꾸는 것은 프레슬리의 타고난 끼와 파커의 천부적인 쇼 비즈니스 감각이다. 프레슬리의 가족에게서 자신들의 사랑이 팬들의 사랑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공포를 약삭빠르게 읽어내는 사람 역시 파커다. 그는 점차 무대 위 아티스트로서의 프레슬리뿐 아니라 그의 삶까지 통제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진짜 세계는 오직 무대 위의 모습으로만 가늠하게 하려는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모든 내면과 진심 어린 열정은 영화 전체를 수놓는 여러 번의 공연 장면에 뜨겁게 투사된다. 독특한 창법과 기발한 퍼포먼스로 그를 스타덤에 올렸으며 파커와 만나는 결정적 계기가 된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하운드 독(Hound Dog)》, 군 제대 이후 발표한 발라드 《캔트 헬프 폴링 인 러브(Can’t Help Falling in Love)》 등 히트곡을 부르는 프레슬리의 무대가 빼곡하게 러닝타임을 채운다. 이 모든 장면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금까지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아이콘으로서 그에게 다시금 매료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는 곡예와 같은 현란한 편집, 만화경 같은 프레임을 통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무대를 담는다. 159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잠시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몇 가지 사건과 짧지 않은 시간 흐름이 특정 무대나 장면 하나에 압축적으로 담기는 경우는 다반사다. 프레슬리가 어린 시절 꿈꿨던 영웅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그래픽 노블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뒤바뀌는 장면도 있지만, 워낙 화려한 이미지들을 제시하는 영화의 톤 앤 매너 덕분에 별다른 이질감이 들지는 않는다.

거대한 쇼에 버금가는 화려한 연출은 감독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이 영화는 《물랑 루즈》(2001), 《위대한 개츠비》(2013) 등을 연출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작품이다. 무대와 음악이 있는 작품을 지휘할 때의 그는 차라리 영화 연출가라기보다 ‘위대한 쇼맨’에 가깝다. 영화의 최우선 가치를 화려함에 둔 듯한 연출이 매 작품에서 통하는 건 아니지만, 센세이션에 가까운 무대를 선보였던 뮤지션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담아내기에는 꽤 적합한 방식으로 보인다. 당시 프레슬리가 라스베이거스를 포함한 미국 전역을 어떻게 달궜는지, 그 열기가 스크린의 장벽을 기어이 뚫고 나오는 듯하다. 무대 바로 앞자리에서 느끼는 것 같은 그 생생한 실감은 《엘비스》의 가장 큰 강점이다.

영화 《엘비스》 스틸컷ⓒ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엘비스》 스틸컷ⓒ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던 ‘시대의 아이콘’

영화는 인물의 기원을 꽤 충실히 다룬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블루스의 발상지인 멤피스 출신이다. 영화는 흑인 음악과 문화에 심취해 있던 배경 역시 중요하게 탐색한다. 어린 프레슬리가 오순절 부흥회 텐트에서 흑인 목사의 설교와 가스펠에 매료당하던 순간을, 영화는 거의 영적인 접촉을 받은 사람의 그것으로 묘사한다. 영감을 주는 존재 외에 유의미한 화자가 되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영화는 프레슬리에게 영향을 준 흑인 예술가들과 지도자들이 그의 중요한 뿌리였음을 잊지 않는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긴 전성기가 지속되는 동안 프레슬리를 경유해 미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흘러갔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인종분리 정책을 강행하던 백인 엘리트들의 반발로 프레슬리는 ‘음란하고 저속한 흑인문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낙인찍혔다. ‘골반 엘비스(Elvis the Pelvis)’라는 별명을 앞세워 진행됐던 TV 출연 금지 청원, 프레슬리에게 건실한 미국의 청년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특유의 점프 슈트 대신 턱시도를 강제하고 군 입대를 조건으로 내세웠던 과정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프레슬리는 그 모든 제약보다 자신의 심장을 따르는 아티스트였다. 백인과 흑인의 공간을 구분한 공연장에서 《트러블(Trouble)》을 부르며 억압에 저항하는 프레슬리의 무대 재현은 이 영화의 가장 뜨거운 순간 중 하나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기한 신예 오스틴 버틀러의 열연에는 이견이 없을 작품이다. 캐스팅 발표 직후 외모가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재능과 야망이 빛났던 10대부터 인생의 쇠락기를 걷던 말년의 40대까지 무리 없이 아우르는 그는 이 영화에서 프레슬리 그 자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혼에 젊은 시절 존 트라볼타의 에너지를 더하고 동시대의 스타인 해리 스타일스의 끼를 얹은 듯한 재능이 근사하게 빛난다.

영화배우 엘비스

엘비스 프레슬리는 로버트 D 웹 감독의 《러브 미 텐더》(1956)를 시작으로 총 서른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이기도 하다. 생전 그는 제임스 딘을 동경하며 연기활동에 매우 진지했지만, 할리우드 스튜디오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결과적으로 프레슬리의 출연작 중 그가 노래 없이 연기로만 승부한 영화는 《차로》(1969)가 유일하다.

한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와 《스타 이즈 본》(1976)은 파커 대령의 반대로 프레슬리의 출연이 무산된 경우다. 그중 《스타 이즈 본》은 여주인공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직접 라스베이거스 공연장으로 찾아와 역할을 제안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일화는 《엘비스》에도 대사로 짧게 등장한다. 이후 남자 주인공 역할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에게 돌아갔고, 그는 197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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