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밋거리로 소비되는 거제 포로수용소 비극의 역사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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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됐던 거제 포로수용소
오락 요소 위주로 채워진 유적 공원에 관광객들 아쉬움 토로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 입구에 조성돼 있는 UN분수광장 ⓒ김지나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 입구에 조성돼 있는 UN분수광장 ⓒ김지나

남해안 한려해상공원의 시작점에 있는 아름다운 섬 거제도. 육지와 상당히 가까이 붙어 있어 지도로만 봐서는 섬이라는 인상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거제대교, 거가대교 등의 연륙교가 건설되고 조선 산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성장한 거제도는 어엿한 도시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인근의 대도시 부산에서도 2시간 정도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십 수 년 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시절만 해도 거제도는 배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외진 섬이었다. 덕분에 전쟁 당시에는 거제도가 최후방으로서 가장 안전한 지역으로 남을 수 있기도 했다. 전국에서 거제도로 피란민들이 몰려왔고, 한때는 전쟁 포로들과 UN군까지 4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유명한 ‘흥남철수작전’의 마지막 목적지 또한 이 거제도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 야외에는 흥남철수작전에서 활약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조형물과, 흥남철수작전을 모티브로 만든 음악 연못이 있다 ⓒ김지나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 야외에는 흥남철수작전에서 활약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조형물과, 흥남철수작전을 모티브로 만든 음악 연못이 있다 ⓒ김지나

전쟁의 역사 다이내믹하게 품고 있는 수용소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이런 역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1999년 관련된 기록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기념 조형물과 과거 모습을 재현한 전시시설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조성됐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전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거제 포로수용소 관련 문서와 사진들을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기도 했었다. 비록 당시 건물의 원형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한국전쟁을 치르며 생겨났던 포로수용소라는 공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가장 많은 피란민을 태우고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던 미국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스토리, 전쟁 포로들의 일상생활 모습, 포로수용소 내에서 벌어졌던 이념 갈등과 그 최정점에서 벌어졌던 사령관 납치 사건 등, 거제 포로수용소의 역사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다이내믹했다. 그동안 DMZ라는, 보이는 경계에 집중해 남북한 간 갈등 혹은 화해를 주제로 다양한 안보관광, 평화관광이란 이름의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한편 한국전쟁이 한반도 전역을 할퀴고 간 비극이었으며 전국 곳곳에 그 상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 것이 사실이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지는 이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켜주며 우리나라 근현대사 교육의 빈 곳을 메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올바른 역사교육과 진정성 있는 아카이빙 보다는 흥미와 체험 위주로 콘텐츠로 채워나가고 있는 점은 안타까웠다. 동전을 던져 넣으면 흥남철수작전을 주제로 한 음악이 나오는 장치부터 시작해서 ‘포로 석방’을 모티브로 만든 짚라인과 VR 체험관까지, 마치 시대별 관광지 어트랙션의 박람회를 보는 듯했다. 특히 흥남철수작전의 영웅이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를 한 배(Greatest rescue operation by a single ship)’로 기네스북에 기록되기까지 했으나, 이곳 유적공원에 조악하게 만들어진 기념 조형물로는 그 감동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볼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실망했다고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어느 방문객의 푸념이, 단지 시설물이 오래됐거나 한번 봤던 것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 포로수용소 건물의 원형이 남아 있는 '잔존 유적지' ⓒ김지나
실제 포로수용소 건물의 원형이 남아 있는 '잔존 유적지' ⓒ김지나

유적지 보존 노력 보이지 않아 아쉬워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유적공원을 나오려던 차에 우연히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잔존유적지’였다. 무려 17만 명의 포로 수용이 가능했던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용소였으며 건물이 60여 동이나 있었던 이곳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원형의 흔적이었다. 안내도에서도 크게 부각되지 않고 주된 전시장에서도 다소 떨어져 방치돼 있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아무리 70년 전 건물 폐허라고 하지만 보존의 노력이 너무 없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1953년 7월 휴전과 함께 소임을 다하게 된 수용소 건물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민들의 무관심과 개발붐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가고 말았던 것이다.

군데군데 안쓰럽게 남아 있는 이 돌무더기들은 1983년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의 시작이자 근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을 들르지 않고 곧장 출구로 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작지 않은 규모로 ‘유적공원’이란 것을 만든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 그저 ‘한국전쟁 포로의 삶’이란 자극적인 주제로 테마파크를 만들어 한철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었을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노릴 정도로 거제 포로수용소 역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사람들의 경험은 한낱 오락거리에 그치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방향인지, 한번쯤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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