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사각지대’ 사실혼 배우자, 제도권으로 끌어안나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9 13:00
  • 호수 17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K·롯데·SM 등 ‘두 집 살림’ 논란으로 오너 리스크 시달려
공정위 조치에 또 다른 재벌 총수 관계 드러날지도 주목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 총수의 사실혼 관계자를 친족(특수관계자) 범위에 포함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어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총수의 사실혼 관계가 명백히 밝혀진 일부 기업에는 예민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재벌 총수들의 ‘두 집 살림’은 숱한 논란과 사법 리스크로 직결됐기 때문이다. 일각에는 해당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더 많은 대기업집단 총수의 사실혼 관계가 드러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사실혼 배우자도 특수관계자 포함 ‘유력’

공정위는 일단 대기업집단 총수의 특수관계자 범위를 현행 혈족 6촌·인척 5촌에서 혈족 4촌·인척 3촌으로 축소한다. 대신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실혼 배우자를 새롭게 특수관계자 범위에 추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검토 중이다. 일부 대기업집단이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를 통해 사익편취 등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취지에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엔 상호출자 금지, 신규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제한 등의 규제를 적용한다. 재벌 총수 일가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근절하기 위해서다. 특히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는 특정 대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다른 경쟁자들의 진입을 가로막아 시장 생태계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공정위는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 역시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SK, 롯데, 삼라마이다스(SM) 등이 영향권에 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모두 총수의 두 집 살림으로 각종 구설과 오너 리스크가 불거졌던 터라 이번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시행령이 개정되면 이들 대기업집단의 총수와 그 관계인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공정위 시행령이 개정될 경우 SM그룹의 2대 주주 격인 김혜란씨와의 모든 지분과 거래 관계 등을 공시해야 한다. 우 회장과 김씨는 중혼적 사실혼 상태다. 중혼적 사실혼이란 법률혼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사실혼 관계를 맺은 것을 말한다. 두 사람 사이의 자녀가 바로 우기원 우방 전무와 우건희 삼라마이다스 사외이사다.

특히 김씨는 SM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핵심 계열사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그는 SM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라(12.31%)와 우방산업(12.3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 삼라마이다스 자회사인 동아건설산업 지분 5.68%도 함께 지녔다. 이 때문에 김씨가 아들 우기원 전무의 SM그룹 승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때 김씨의 존재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김씨가 SM그룹의 2대 주주 격이었지만, 우 회장과 법적인 부부가 아닌 탓에 특수관계자로 분류되지 않아 그가 우 회장과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었다. 또 김씨는 우방산업 감사, 삼라마이다스 이사 등 SM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이었지만, 내부에서조차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주간지 ‘일요시사’ 보도로 우 회장과 사실혼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씨는 SM그룹 임원직에서 모두 퇴임하고 돌연 자취를 감췄다. 아울러 과거 김씨가 설립한 개인 법인이 SM그룹의 위장계열사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갑작스럽게 폐업하기도 했다. 이처럼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와 그의 개인 회사, 지분 관계는 좀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롯데의 경우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서미경씨의 개인 회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2016년 공정위는 2012~15년 롯데가 대기업집단 자료를 내는 과정에서 유니플렉스, 유기개발, 유원실업, 유기인터내셔널 등 4개 계열사를 누락한 혐의로 신 명예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서미경씨가 ‘롯데 오너가 비리’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가능성 잠재 

이들 4개사는 서씨가 1대 주주, 딸 신유미씨가 2대 주주인 회사다. 당시 공정위는 서씨가 신 명예회장과 법적인 부부가 아니긴 하지만 신 명예회장이 이들 회사에 거액의 자금을 대여하는 등 사실상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만큼 계열사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유기개발이 롯데백화점에서 운영한 ‘서미경 식당’들은 그동안 재벌가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비판받아 왔다.

다만, 롯데는 총수가 현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기 때문에 서미경씨가 공정위 개정안 규제에 포함될지는 미지수다. 2020년 별세한 신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아울러 2018년 법원이 서미경씨의 회사들이 롯데 계열사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공정위가 추진한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 특수관계자 범위 포함에 제동이 걸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5년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와 불륜 사실을 고백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동안 사생활을 철저히 숨겨온 여느 재벌과 달리 최 회장은 언론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최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수년 전 여름 저와 그분과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며 “공개되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자랑스럽지 못한 개인사를 자진해서 밝히는 게 과연 옳은지, 한다면 어디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두 사람은 함께 2018년 인재 육성 장학사업을 하는 티앤씨재단(T&C)을 설립하기도 했다. 티앤씨재단은 최 회장의 이름 태원(Taw Won)의 T, 김 대표의 영어 이름 클로이(Chloe)의 C를 합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티앤씨재단 설립 당시 2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사실상 개인 재단법인이나 다름없다. 아울러 매년 현금 20억~30억원을 기부하면서 김 대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SK와 롯데, SM은 이번 공정위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별다른 입장은 없다고 밝히면서도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와 그룹사의 관계에 대해서는 강하게 선을 그었다. SK 관계자는 “아직 해당 내용과 관련해서 입장이 없다”며 “티앤씨재단은 공익재단법인이기 때문에 시행령이 개정되더라도 계열사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 관계자는 “지금 총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롯데 쪽에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SM 관계자 역시 “관련해서 검토하는 내용은 없지만, 향후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실혼 배우자와 관련된 내용을 신고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사실혼 관계자가 특수관계인에 포함될 경우 총수에게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 입장에서 사실혼 관계자의 개인 회사와 지분 및 거래 관계까지 모두 공시해야 하며, 심지어 사실혼 관계자 친족까지도 특수관계인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또 이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계열사 명단 자료 허위 제출’ 등으로 총수가 고발 조치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해당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더 많은 대기업집단 총수의 사실혼 관계가 드러나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때문에 공정위도 역시 사실혼 배우자 특수관계자 포함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재계의 우려를 의식한 듯 공정위는 이번 규제 관련 용역 보고서도 비공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사실혼 관계자를 전부 포함하는 게 아니라 자녀 유무, 지분 보유 등을 감안하는 세부 기준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왼쪽)최태원 SK그룹 회장, 우오현 SM그룹 회장ⓒ연합뉴스

간단치 않은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 문제

이처럼 사실혼 관계자를 규제에 포함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사실혼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하는 게 쉽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법률상 가족 관계가 아닌 상황에서 자칫 정부가 사실혼 관계를 규정할 경우 사적인 영역에 대한 지나친 공적 개입이 될 수 있어서다. 또 민법상 상속권의 경우 피상속자가 상속 대상자를 사실혼 대상자로 지정하면 상속할 수 있다는 판례가 있긴 하지만 사례마다 각기 달라 명확한 기준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번 규제 관련 용역 보고서를 작성한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재벌 총수들의 사실혼 배우자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개인 가정사에 개입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사실혼 배우자도 가족과 친인척처럼 똑같이 특수관계자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사실혼 친족 포함은 공정위 시행령만 개정해도 충분하다. 사실혼 배우자 사이에 자녀가 있다면 법률혼이 아니더라도 가족으로 인정해야 하며, 규제 취지에 초점을 맞춰 특수관계자 범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법률혼에서 발생한 각종 사익편취 문제는 사실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이걸 방치하면 일부 기업은 불투명성이 강화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