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상도 두려워한 마약중독...'딱 한 번'에 빠져든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8 10:00
  • 호수 17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약 상습투여자 54만 명 시대, 극복 방안은?…이미 손댔다면 초기에 인정하고 치료보호 신청해야

인도계 캐나다인 고파(Gopa·33)는 마약상이었다. 그가 유통한 마약은 코카인. 흔히 영화 속에서 면도날로 잘게 부숴 코로 들이마시는 흰색 가루가 바로 그것이다. 흡입하자마자 즉시 각성감과 함께 큰 힘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어릴 때 무척 가난했던 고파는 중학생 때부터 마약 유통에 발을 들였다고 한다. 이후 10년 가까이 마약상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고파는 단 한 번도 코카인을 해본 적이 없다. “흡입하는 순간 절대 끊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고파는 기자가 2013년 호주 교환학생 시절 만난 학생이다. 그는 갱단이 마약을 강탈하려고 자신의 집을 습격했을 당시의 언론기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마약중독의 무서움을 강조했다. 마약은 단 한 번의 투약만으로도 중독 증세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이에 동의한다. 2018년 워싱턴주립대 중독연구센터는 “한 번의 코카인 흡입이 중독과 연관된 뇌세포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최은상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마약은 혈류를 따라 뇌로 들어간다”며 “뇌에 도달한 마약은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에 전기적·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중독자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락을 준다”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뇌 구조 바꿔버리는 마약…“한 번 흡입하면 절대 못 끊어”

여기서 ‘중독’이란 보통 의존 상태로 받아들여진다. 의학적으로는 좀 더 구체적이다.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국제질병분류(ICD)는 중독에 대해 “투여 물질에 의해 일시적인 의식수준, 인지, 지각 또는 행태와 정신생리적 기능 및 반응의 장애가 초래된 상태”로 정의한다. 이 상태에서는 마약에 대한 내성과 금단 증상, 강박적 집착 등이 나타난다. 단순히 의존 상태 이상의 후과를 낳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결과는 한 번의 마약 흡입만으로 초래될 수 있다.

일단 마약중독에 빠지면 헤어나오기는 무척 어렵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마약중독의 치료 가능 여부에 대해 “가능하지만 간단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행동신경학자인 주디스 그리셀 미국 벅넬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제 마약중독자였다. 20년 넘게 대마는 물론 코카인, LSD, 메스암페타민 등 각종 마약에 절어 살았다. 그는 《중독에 빠진 뇌과학자》란 책을 통해 마약중독이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한 약학 전문가는 “마약중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처음부터 마약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늦은 감이 있다. 대검찰청 통계와 한국경찰연구학회 연구 등을 종합해 추산하면, 2020년 기준 국내의 마약 상습투여 인구는 54만 명에 이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같은 해 마약사범 수(1만2209명)의 약 44배다.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란 말도 옛날 얘기다. 유엔(UN)은 마약사범이 인구 10만 명당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지정하는데, 국내 마약사범은 2016년 25.2명으로 이미 기준을 초과했다. 마약중독자와 유통책이 산재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약 입수 경로를 원천 차단해 중독자를 구제하는 방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국 사후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중독 인정이 최우선 방법이자 가장 힘든 단계”

강남을지대병원 브레인모듈레이션센터에 따르면, 마약중독도 일반 질병과 마찬가지로 초기부터 말기까지 시간에 따라 증세의 강도가 다르다고 한다. 말기 중독에 다가갈수록 증세는 심해지고 치료는 힘들어진다. 회복 가능성을 떠나 초기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대다수 중독자는 자신이 마약에 중독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따라서 일단 마약에 손을 댔다면 빨리 이를 인정하는 게 첫 번째 순서다. 글로벌 정신건강 지원 비영리단체 헬프가이드(HelpGuide)는 “중독을 인정하는 게 회복으로 가는 최우선 방법이자 가장 힘든 단계”라고 했다.

마약중독을 인정하지 않다가 수사망에 걸리면 기소 대상이다. 마약류관리법에 의해 대마나 항정신성의약품을 사용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초범이고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면 검찰이 기소유예를 조건으로 치료보호 적용 여부를 판단한다. 마약사범의 기소유예율은 2015년 17.9%에서 2019년 19.5%로 소폭 상승했다.

만약 마약 투약 사실을 인정하고 직접 치료보호를 신청하면 검찰의 판단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 치료보호기관은 신청자의 마약중독 여부를 검사한다. 이후 치료보호심사위원회를 열어 치료보호 필요성이나 치료 기간을 결정한다. 치료보호기관은 최장 12개월까지 무료로 치료보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건복지부가 마약중독 치료보호기관으로 지정한 의료시설은 현재 전국에 총 21곳이 있다. 서울과 경기에는 △서울특별시은평병원 △국립정신건강센터 △경기도의정부의료원 △용인정신병원 △계요병원 등 5곳이 있다.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지정병상 100곳을 갖춘 경남 국립부곡병원이다.

단 맹점이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개 치료보호기관 중 최근 5년 동안 10건 이상의 실적이 있는 곳은 경남 국립부곡병원과 인천 참사랑병원 등 단 2곳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총 치료보호 건수는 2017년 330건에서 지난해 280건으로 줄어들었다. 마약중독 실태에 비해 치료보호 조치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치료보호 지정병상 수는 5년 전보다 38개 줄어든 292개로 조사됐다.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도 38명 감소한 132명이 남아있다. 의료 인프라마저 부실한 상황이다. 마약중독자 입장에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길이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태 의원은 “마약사범 검거보다 재발 방지가 더욱 중요한데도 국가 차원의 재활치료 인프라는 뒷전”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예산 확충과 컨트롤타워 설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마약중독에 따른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장기적인 대책이다. 자신이 중독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치료보호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 문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약중독에 대한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중독재활센터를 서울과 부산에서 운영하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