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거명하며 ‘핵 버튼 전주곡’ 울린 김정은
  •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7 10:00
  • 호수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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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담대한 계획’ 대북 기조, 북한 도발 막아낼 수 있을까

7월27일 밤 평양 보통강변에 자리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휘황찬란한 조명과 축포가 연이어 터지면서 미그기 편대가 불꽃을 날리며 하늘을 갈랐다. 참전 노병과 평양 시민 등 군중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6·25전쟁 휴전협정 체결 69주년 행사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잠시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태운 메르세데스 S600 풀만 가드 세단이 도착했다. 김정은이 단상에 오르자 만세 소리와 박수가 이어졌다. 그는 먼저 하루 전 개최된 제8차 전국 노병대회 참석자들에게 감사와 예우의 말을 던졌다. 6·25전쟁을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운 승전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은 7·27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연설은 자연스레 대미 비난으로 이어졌다. 김정은은 “미국은 오늘도 우리 공화국에 대한 위험한 적대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 뒤 “미국과의 그 어떤 군사적 충돌에도 대처할 철저한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본토 타격 등 핵·미사일과 관련한 직접적인 대미 위협은 없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월27일 전승절 69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연합

北 도발의 주된 표적, 미국보다는 한국

연설 분위기는 대남 쪽으로 확 바뀌었다. 김정은은 핵을 ‘절대병기’로 표현하며 한국을 겨냥해 “핵보유국의 턱밑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적 불안감” 등의 말을 쏟아냈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수준으로 핵 공격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처음으로 거명하며 비난했다. 그동안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는 윤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조선 당국자’로 우회적으로 표현하거나 대남 비방용 인터넷 선동매체를 활용했다.

김정은의 연설에서는 다소 격앙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그는 “(남조선이) 선제적으로 우리 군사력의 일부분을 무력화시키거나 마슬(‘부수다’는 의미의 북한말)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이라고 발언하다 갑자기 “천만에!”라며 힘을 주는 단호한 어조를 드러냈다. 이 대목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연설문에 느낌표까지 그대로 담겼다. 그만큼 김정은이 윤 대통령과 새 정부에 큰 불만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정은의 연설문 행간을 들여다보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보다 윤 대통령에 대해 더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현재로서는 핵 위협의 주 타깃을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와 함께 한미 동맹과 미국 주도의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모종의 도발을 위한 명분 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은은 우리 군을 ‘군사깡패’ 등으로 폄훼하면서 “추태와 객기를 가만히 앉아서 봐줄 수만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 같은 작태를 이어간다면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는 위협도 가했다.

이런 정황 등을 종합해볼 때 북한이 조만간 7차 핵실험 등 도발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미 정보 당국은 대북 첩보위성 등 감시 장비를 동원해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주시하고 있다. 현재 물리적인 준비는 마무리됐고 김정은의 전략적 선택만 남았다는 데 한미 양측의 정보가 일치한다. 국방부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7형 미사일의 시험발사도 준비 중인 것으로 8월1일 국회 국방위에 보고했다.

북한이 핵실험에 나선다면 그 시기는 8월말과 9월초가 꼽힌다.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대한 대응 성격을 띨 수 있고, 9·9절로 불리는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넘긴 2017년 9월3일 6차 핵실험을 감행한 뒤 ‘수소탄 성공’을 주장했다. 이번에도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8월17일) 전후를 겨냥함으로써 이른바 집권 초 ‘대남 길들이기’ 차원의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직접적으로 핵 선제공격 가능성 내비쳐

앞서 지난 4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며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이 직접적으로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을 이미 보인 것이다.

물론 핵실험으로 내닫는 데는 제약 요소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치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긴장도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 도발을 강행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방패막이 역할을 해줄 경황이 있을지 불투명하다.

북한의 내부 사정도 녹록지 않다. 대북제재로 식량과 원자재 부족이 심각한 수준인 데다 4월말부터는 코로나19까지 번져 농업생산과 공장·기업소 가동 실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북한이 코로나 신규환자가 ‘0명’이라고 주장하지만 통계 조작 의혹은 여전하다. 김정은이 7·27 연설에서 “나라 사정도 어려운 데다 얼마 전에는 보건 위기까지 겪은 판국에”라고 공개적으로 토로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환경들이 김정은의 핵 버튼 작동을 제약한다면 다른 레벨의 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 최전방에 전술핵 실전배치를 명령하거나 그 완성을 선언하는 등의 움직임이다. 경우에 따라 김정은이 직접 군부대 현지지도를 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도 꾀할 수 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이런 북한의 도발적인 핵·미사일 관련 행보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전략이나 기제를 갖추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과 정부 대북부처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기조를 담은 ‘담대한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대북지원뿐 아니라 안보상 문제까지 해결해 줌으로써 북한이 핵을 가질 필요성을 없앰으로써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캘린더상에는 남북 간 돌발 악재가 가득하다. 8월22일부터 9월1일까지 일정으로 한미 연합연습인 을지프리덤실드(UFS)가 재개되는 등 북한의 신경을 곤두서게 할 이슈가 줄을 잇고 있다. 7월29일 워싱턴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합의된 외교·국방 차관급 2+2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과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TTX)이 대표적이다.

동맹 복원과 합동군사연습 재개 등 북한의 도발에 대처하는 방안은 충분해 보이지만 핵 위협이나 군사충돌로까지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좀 더 유연한 해법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나비효과가 한반도를 뒤흔드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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