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떠올린 신림동 참사에 반지하 없앤다?…현실성 따져보니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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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되니 공간 비운다?…사람 염두에 없는 발상” 지적도
영화 '기생충' 장면 캡처
영화 '기생충' 장면 캡처 ⓒCJ ENM

중부 지방 집중 호우로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반지하로 대표되는 주거 취약 지역이다. 특히 신림동 일가족 참사는 주요 외신들을 통해 전세계로 전해졌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의 피해가 빈부 격차를 다룬 영화 '기생충'을 떠올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서울시는 앞으로 반지하 주택 건축허가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초강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당장 반지하 거주민들이 처한 위험을 줄이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10일 지하·반지하 건축물에 10∼20년의 유예 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주거용 지하·반지하 건축물을 없애는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침수 가능성을 불문하고 지하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번만큼은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고, 주거 안정에 필요한 근본 대책을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에는 2020년 기준 전체 가구의 5% 수준인 약 20만 호의 지하·반지하가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는 우선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하기 위해 정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법 개정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번 주 중으로 건축허가 시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각 자치구에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선언적 대책'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3년 전 영화 '기생충'으로 반지하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때에도 정부가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추진된 것은 없다. 20만 호 반지하 거주민들이 옮겨갈 대체 주거지 마련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주거권 보장을 위해 주거용 반지하를 없애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실현까지는 고려해야할 요소가 많다고 제언한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인구 급증으로 주거가 턱없이 부족해 반지하 공간을 사용했지만,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니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반지하가 주거로 사용돼선 안된다"면서 "기본적인 주거환경 제공을 위해 반지하를 없애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연합뉴스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연합뉴스

반지하 퇴출 대책이 '침수 불안'에 떨던 반지하 거주민들에게 '주거 불안'을 느끼게 하는 선언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거주민들이 살 수 있는 대안적인 주거, 그들의 주거 상향을 위한 전략을 내놓지 않고, 침수가 된다는 걱정만으로 물리적으로 공간을 비우겠다는 것은 적합한 방안이 아니다. 건물을 염두한 접근이지, 그곳에 사는 사람을 염두에 둔 접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현재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면,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서 그 공간을 비울 것인지, 임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지원을 해줄 것인지 등 꼼꼼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거 상향 사업의 풀을 늘리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서울시가 상습침수구역의 주거 상향 규모를 늘린다던지 전수조사를 한다던지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면서 "당장 없애겠다는 선언을 하면 반지하 거주민들이 거주 불안에 떨게 된다"고 말했다. 

20만 호 반지하 거주민들을 위한 대안 주거 마련을 위해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참사사건으로) 나온 방안이어서 사유재산을 못쓰게 할 때 발생하는 비용 등 실현 가능한 안으로 만들기 위해 따져봐야할 것이 많다"라면서 "도심 내 저렴한 주거공간으로 오랫동안 활용돼 왔는데 점진적으로 없애는 정책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위험성이 높은 지역의 거주민들에게 우선적으로 대안적인 주거를 제공하는 등 단기적, 장기적 정책을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 또한 당장 반지하 거주민들의 침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지상에서 1.5m 이하로 노출돼 있는 반지하는 도로 레벨보다 낮아 차수 기능이 안 돼 있다"면서 "도로에 물이 넘치면 바로 타고 들어가는데, 당장 위험을 줄이기 위해 차수 기능 지원 등 시급한 지역부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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