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시대 100일’ 소통 의지 무색하게 한 5가지 장면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8.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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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곁으로 다가가겠다” 용산시대 개막 100일
취지 흐려진 ‘도어스테핑’…잇단 ‘사적채용’ 의혹에 휘청
폭우 피해 속 ‘출퇴근 리스크’ 고스란히 노출
대통령실 앞 집회 논란, '국민제안'은 ‘없던 일’로
윤석열 대통령이 8월1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8월1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과 소통하며 일하는 공간을 마련하겠다. 국가의 최고 의사 결정자가 일하는 모습을 국민이 언제든 지켜볼 수 있다는 자체가 민주주의 발전을 훨씬 앞당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3월20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던 윤 대통령은 ‘용산시대 개막’이 곧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식’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뜨거운 논쟁 속 개막한 용산시대는 윤 대통령에게 ‘최초’의 수식어를 여럿 안겼다. ‘최초로’ 출퇴근을 하고, 그 출근길에 ‘최초로’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을 진행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은 이내 용산시대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용산에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새로움은 곧 리스크가 됐다. 분명 소통은 하고 있는데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취임 100일, 윤 대통령이 ‘구중궁궐’로 정의했던 과거 청와대와 비교해 무엇이 더 나아졌느냐는 물음이 나오고 있다. 용산시대 개막 100일, 당초의 소통 의지를 무색하게 한 다섯 장면을 꼽아봤다.

 

① ‘마이너스 효과’ 도어스테핑, 대폭 줄어든 출입기자 수

출근길 회견은 소통을 위한 윤 대통령의 야심찬 시도였다. 그 취지에 대해 초반 호평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출근길 회견은 곧 ‘논란 생산소’가 됐다. 취임 직후부터 총36차례 진행하는 동안 윤 대통령의 답변들은 불필요한 잡음들을 만들었다. “(김건희 여사 비선 의혹에 대해)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6월15일) “전 정권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7월5일) 등의 답변은 불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계속된 논란에 여권 내에서도 회견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때마다 윤 대통령은 지속할 의지를 내보였다. 다만 최근 지지율 하락세가 커지면서 회견의 형식과 윤 대통령 화법엔 다소 변화가 나타났다. 출입기자들의 질문 수를 줄였고, 이전보다 절제된 답변을 내놓았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취임 100일을 맞아 향후 회견 방식을 발전적으로 개편할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대통령실 출입기자수를 확연히 줄인 것도 소통 접점을 넓히겠다던 의지에 역행하는 모습으로 지적된다. 지난 5월 대통령실은 출입 기자 등록 신청을 받으면서 기자들의 재산 규모나 친교 인물 등 과도한 개인 정보를 요구해 ‘출입 문턱을 더 높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점차 출입기자 수를 늘리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아직 과거에 비해 그 규모는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② 사적채용 논란, ‘투명한 국정’ 약속 어디로

윤 대통령은 용산 집무실 이전 이유로 소통과 함께 ‘투명한 국정 운영’을 꼽았다. 그러나 대통령실 사적채용 의혹이 연이어 터지면서 당장 투명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김건희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직원을 비롯해 윤 대통령 친인척과 지인의 아들, 극우 유튜버 누나의 대통령실 채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정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채용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 부부의 스페인 순방에 인사비서관의 배우자가 민간인 신분으로 동행한 점 역시 싸늘한 비판을 받았다.

그 때마다 대통령실은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답변을 반복하는가 하면 “대통령실은 엽관제” “전 정부도 그랬다”고 반박해 더욱 여론의 반발을 샀다. 국민 눈높이가 동떨어진 대통령실의 잇단 해명에 용산 대통령실엔 더욱 구중궁궐, 불통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조만간 대통령실 사적채용 의혹들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월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 용산 이전 논쟁 재점화한 ‘폭우 재택 지시’

윤 대통령의 ‘출퇴근 리스크’는 최근 폭우 속에서 가장 극명하게 제기됐다. 재난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이 상황실이나 현장에 방문하는 대신 서초구 자택에 머물며 대응한 데 대해 SNS상에선 ‘대통령이 안 보인다’ ‘무정부상태’라는 키워드와 함께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 곁으로 더 다가가겠다’던 용산시대의 취지가 또 한 번 무색해지는 순간이라는 지적이다. 야권에선 “이러려고 멀쩡한 청와대에서 나온 것이냐”며 다시금 용산 대통령실 이전 논쟁에 불을 붙였다.

더 심각한 소통의 문제는 대통령실의 후속대응에 있었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 상황실” “비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 안 하나”는 등 대통령실 참모들의 반응은 이후 윤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용산과 국민 사이 거리감뿐 아니라 대통령실 내부의 소통 혼선까지 고스란히 드러난 지점이었다.

 

④ 대통령실 앞 집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

용산 시대 개막으로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의 자유’가 더욱 제한됐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엔 대통령실이 집회 주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담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및 시위 입체분석’이란 제목의 내부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법원이 대통령실 100m 이내 집회를 허용했음에도 경찰청이 집회 관련 소송비용을 8000만원으로 책정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를 두고 집무실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는 판례를 만들어놓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용산 이전을 추진했지만, 정작 용산 앞 목소리와는 소통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⑤ 靑 국민청원 대신해 출범한 국민제안 ‘무효화’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민청원’을 폐기하고 윤석열 정부가 새로 추진한 '국민제안' 제도는 첫 발부터 삐끗했다. ‘10대 국민 제안’ 가운데 우수 제안 3건을 뽑아 정책화하려던 계획이 투표 조작 행위 즉 ‘어뷰징’ 의혹으로 전면 무효 처리된 것이다. 이를 두고 충분히 예측가능했던 부작용도 사전에 막지 못한 대통령실의 부실한 업무 처리가 문제로 제기됐다.

나아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며 만들어진 국민제안의 전반적인 투표 절차가 '일방향적'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지적됐다. 대통령실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민제안심사위원회에서 우수제안 10개를 공정하게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심사위원들의 신상과 이력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이들이 추려 낸 10개 제안에 대해 정작 국민들이 표현할 수 있는 의사 방식은 ‘좋아요’를 누르는 것뿐이었다. 부실한 제도 설계로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대국민 소통 창구 하나는 그대로 닫힐 위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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