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를 ‘싱거운 사과’로 해독하는 사람들 [쓴소리 곧은 소리]
  • 유지철 KBS 아나운서, 언론학 박사 (yjc@kbs.co.kr)
  • 승인 2022.08.27 14:00
  • 호수 17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불필요한 소통 장애, 사회 갈등 일어나
국민의 문해력 부족은 선진 사회 이행에 걸림돌…독서와 국어사전 찾기에 친숙해야

언어는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만든 사회적 약속이다. 예를 들어 산소와 수소의 화학적 결합물인 액체를 이르는 말을 우리나라에서는 ‘물’이라고 부르기로 함께 약속한 것에 대해 살펴보자. 사람들이 사회적 약속을 깨고 이를 임의로 ‘불’이나 ‘풀’ 등으로 달리 부르거나 혹은 ‘물’의 정의를 액체가 아닌 고체나 기체로 잘못 이해해 사용하게 되면 사회 구성원 간 의사소통이 깨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일단 단어의 표기와 발음, 뜻이 정해지면 일부 사람이 이를 임의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을뿐더러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 이러한 기본적인 언어 사용과 관련한 사회적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초래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심심(甚深)하다’를 ‘지루하다’ 혹은 ‘싱겁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벌어졌다.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한 카페의 공지 글에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며 항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트위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트위터 캡처

사흘을 4일로, 금일을 금요일로, 병역을 역병으로 오독

그뿐이 아니다. ‘광복절부터 사흘 연휴’라는 기사 제목의 ‘사흘’을 ‘사(四) 일’로 잘못 이해해 ‘3일 연휴인데 왜 사흘 연휴라고 하느냐? 뉴스 오보 아니냐?’ 등의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또한 ‘금일 자정까지 과제물을 제출하라’는 공지 글의 ‘금일’을 ‘금요일’로 잘못 이해해 과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한 학생이 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금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공지했느냐고 되레 항의했다고 한다. 코로나19에 확진된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허가하는 결석인 공결의 사유로 ‘전염성 감염 질환’을 선택해야 하는데, 군 입대를 의미하는 ‘병역’을 선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학생들은 병역을 ‘감염병’이나 ‘역병’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글쓴이의 의도를 왜곡해 받아들이거나 공지 내용을 엉뚱하게 해석해 잘못된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반복될 경우 이는 개인의 대인관계와 업무 효율에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 간 소통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정보 소통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국민들의 문해력(文解力·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부족으로 인한 소통 장애는 더 나은 선진 사회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문해력 혹은 문장해독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어휘력을 키워야 한다. ‘심심한 사과’를 ‘재미없는 사과’로 잘못 해독한 이유도 ‘심심하다’의 어휘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심심하다’에는 총 4개의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있다. 앞서 언급된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외에도 ‘음식 맛이 조금 싱겁다’ ‘깊고 깊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 4개의 ‘심심하다’ 중에 몇 개의 ‘심심하다’를 제대로 이해하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자. 만약 4개의 ‘심심하다’의 의미를 모두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제 이를 자신의 말하기와 글쓰기에 모두 사용할 수 있다면 어휘력이 대단히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심심하다’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한 가지 의미로만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어휘력이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바탕화면에 깔아놓자

어휘력은 언어의 이해 영역인 듣기와 읽기, 그리고 언어의 표현 영역인 말하기, 쓰기 모두에서 가장 기초적인 자질 역량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휘력이 풍부해야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고, 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내 생각과 감정을 말이나 글로 잘 표현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2022년 8월24일 현재 총 42만2894개의 어휘가 등재되어 있다. 42만여 개의 한국어 어휘 중에 과연 나는 몇 개의 어휘를 제대로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는지 자문해 봤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필자를 비롯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 시절에 영어 어휘 교재인 《Vocabulary 22,000》 《Vocabulary 33,000》을 구입해 영어 단어의 어원까지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정작 한국어 어휘력을 높이는 데는 소홀했던 나 자신부터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어휘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평소에 어휘의 보고(寶庫)인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 1년간 책을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연간 독서율이 매년 하락해 2021년 기준 성인의 연간 독서율이 47.5%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1년에 책을 한 권 이상 읽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국민들의 독서량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게는 미래도 없다고 했다. 문해력과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소통 능력을 높이기 위해 국민 모두 책을 읽는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학생들의 독서를 진흥하는 독서 교육을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국민들이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독서를 생활화하자. 그리고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국어사전을 찾아 단어의 뜻과 용례를 확인하자. 그렇게 사전에서 찾아본 어휘는 나중에 내가 온전히 구사할 수 있는 내 어휘가 되는 것이다. 요즘은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 국어사전 찾기도 쉬워졌다.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앱을 설치하거나 인터넷에 《표준국어대사전》 누리집(https://stdict.korean.go.kr/main/main.do)을 즐겨찾기로 설정해 놓으면 모르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 언론학 박사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